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강레오 쉐프를 위한 충고-런던에서 한복을 배우면 안되나요?

패션 큐레이터 2015. 6. 26. 01:56




캐린 질송 Carine Gilson의 블랙 실크 시폰 기모노


강 레오 셰프에게


안녕하세요 레오님, 저는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입니다. 오늘 인터넷에서 강레오 쉐프가 실검 순위에 뜨더군요. 패션사를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른 관심사가 없는 저이지만 이번에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라도 한 마디 하고 싶었습니다. 강셰프님께서 최근 방송에서 인기를 끄는 최현석 쉐프를 '디스'하는 발언을 했다며 사람들 사이에 말이 많습니다. 한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요리사가 방송에 너무 많이 나오는 건 역효과"라고 하셨고 "음식을 정말 잘해서 방송에 나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 출연하게 되면 요리사는 다 저렇게 소금만 뿌리면 웃겨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죠. 본인은 추후 해명을 통해 특정인을 말한게 아니라고 발뺌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이미, 강셰프님이 지적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는 눈치더군요. 그런데 강셰프님의 한 마디가 오늘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서양음식을 공부하면 런던에서 한식을 배우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까 본인들이 커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자꾸 옆으로 튀는 거다. 분자 요리에 도전하기도 하고" 라고 말씀하셨더군요. 이제서야 누군가를 지칭하는지 확실하게 알겠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강쉐프의 이 표현, 참 기분이 나빴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좀 해야겠어요. 오늘 블로그에 올린 한 벌의 옷을 보세요. 패션 디자이너 캐린 질송의 작품이죠. 그런데 사실 이 옷의 디자인을 자세히 보시면 일본의 기모노를 변형한 것이란 걸 '옷을 조금 깊게 아는 분들'은 다 압니다. 긴 소매와 허리부분을 감싸는 벨트 부분은 일본의 오비를 본딴 것이거든요. 일본풍 영감을 받았지만, 현재의 외국의 소비자들이 사입는 옷입니다. 꽤 비싼 쿠튀르 란제리에요. 


서구, 특히 유럽과 미국은 유독 일본의 기모노에 빠져들었죠. 인상주의 시대 화가들이 기모노를 그린 그림이 등장하는 건 그 이유입니다. 역사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고요, 이후 유럽인들은 바로 이 기모노를 단순하게 흉내내기 보다, 강쉐프님이 비난하셨던 바로 '분자요리'의 수준으로 옷을 분석하게 됩니다. 분자요리란게 음식의 질감이나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 새롭게 변형하는 것이라면서요? 옷도 이 과정이 필요합니다. 런던에서 기모노 제작법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 현지에서 배우는 것 같은 정교함과 미학을 익히기는 어렵겠지만요. 중요한 건 전통방식 그대로, 장인 누구의 방식 그대로 답습하기 보다 넘어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만큼 응용을 초점에 두고 가르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맨날 응용을 위해 원본을 철저히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죠. 맞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원 아이디어에서 뽑아온 응용화된 '강조점'에 더 초점을 두고 있죠. 그렇게 변해가고 있고. 


그러고보니 강 셰프님 지난번 텔레비전에서 보니 검도 실력자시던데요. 검을 배우는 분들에겐 원칙이 있다면서요. 수, 파, 리라는 배움의 원칙 말입니다. 수란 스승의 가르침을 본받아 그대로 변형없이 수용하는 것을 말하고, 파란 이렇게 얻은 배움을 스스로 깨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기존에 수용했던 지식과 원리들을 스스로 깨뜨리고 발전시키는 것이고, 리란 바로 작별입니다. 지금껏 배운 것과 헤어져서 자신만의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단계라고 하죠. 아마도 최현석 쉐프의 분자요리란 건, 비록 유학파도 아니고(강쉐프의 기준에선) 국내에서 배운 서양요리의 전문가지만, 나름대로 지금껏 익혀온 자신의 틀을 깨기위한 하나의 방법론은 아닐까요? 


우리사회는 이게 참 없어요. 인문학을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사회과학을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 미국의 식민지 지식인으로 신규 지식을 그저 번역해서 퍼뜨리는 역할만 하셨지, 그 위로 올라서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못했죠. 저는 경영학을 했는데, 맨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하면 지금도 먹힌답니다. 제가 강 셰프님의 말에 화가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물론 강쉐프님이 세계적인 요리장인 고든램지의 제자인것도, 걸출한 분인것도 알지만, 계속 그 분의 제자로, 평생을 그 분의 그림자로 사실건 아니잖아요? 


음식의 역사를 지도를 그려보면, 같은 국수지만 각국에 따라 그 재료와 방식, 질감이 달라지듯, 사실 서양요리의 본질이라 해도 그것이 지역적 경계를 넘는 순간 변용과 조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새로운게 나오지요. 아차....마지막으로 서구의 패션학교에선 동양복식의 재단법들을 배웁니다. 그러니 런던에서 한복을 배운다는 말은 틀린게 아닌거죠. 또 한가지, 진짜 마지막으로, 강쉐프님은 왜 검색을 해보면 소속이 연예기획사가 나오나요? 쉐프로서의 정체성을 잃으셨나요? 묻고 싶습니다. 최현석 쉐프는 그래도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이름이 뜨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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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나서 많은 반응을 봤습니다. 


한복과 기모노를 런던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한 것은 타자의 것을 잘 섭취하는 서양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물론 일본과 한국 현지에서 정교하게 사숙하며 기모노의 염색과 바느질, 한복의 정신을 배우는 것에 비할 수 없겠죠. 서구인들에게 중요한 건 응용이었으니까요. 저는 언제까지나 Origin을 보고살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패션이든 음식이든, 건축이든, 사회학 공부건 서구문화와 지식의 틀에서 나온 산물을 익혀 경쟁하는 우리들에겐 서구의 극복은 요원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내적 역량이 누적되면, 굳이 Origin을 따라하지 않아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변용한 것들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내적역량이란게 바로 Origin 을 깊게 몸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명에서 두명으로 수십, 수백명으로 늘면, Origin의 서구를 넘어 제 3의 것을 낼 확률이 높아지죠. 브랜딩에선 Divergence 발산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런 Origin을 공부했다고 자부하는 인간들의 숫자는 늘고 세월도 쌓여감에도 오히려 지식의 종속, 경험의 종속이 될 때, 이건 문제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하려면 국내의 연구 역량이 누적되며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겠지요. 어떻게 이 말을 Origin을 안배워도 된다라고 독해하는 분들은 당췌 누구신지. 어디 하루아침에 해결될까요? 우리가 서구의 정신적 틀과 에피스테메를 제대로 익히되 우리의 것으로 할 때 가능하지요. 그런 점에서 강 쉐프의 발언을 문제삼았던 거고요. 글을 쓰면서 수, 파, 리에 대한 원칙에 초점을 두어 이해시켜보려고 노력했는데, 제 글의 방점은 수파리에 있었건만, 제 글쓰기가 부족했나봅니다. 그래도 이번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탓에, 유학파와 토종파 요리사 분들간의 시각, 파인 다이닝에 대한 관점들, 옷과 음식이라는 '쌍'으로 묶여야 하는 문화상품의 논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시간들을 갖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