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의 거장 아제딘 알라이아-몸에 맞는 옷이 아름다운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5. 3. 27. 19:37



아제딘 알라이라가 서울에 온다고 해서 서둘러 10 꼬르소꼬모에 갔습니다. 바이어 초청으로 가게된 행사였어요. 알라이아의 옷을 차분히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조금 빨리 도착하길 잘했다 싶더라구요. 튀지니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는 패션계에선 THE KING OF CLING이라고 해서 몸에 밀착된 옷을 잘 표현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져있죠. 몸에 딱 달라붙어서 신체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표현한다고 해서, 다른 말로 '신체를 의식하는' 이란 뜻의 '바디 컨셔스' 라인이란 표현도 씁니다만, 아무튼 2013년 파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 속 옷을 일부라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습니다. 



위의 사진은 파리 의상박물관의 재개관을 기념하는 오프닝 전시로서 열린 아제딘 알라이아의 전시입니다.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던 그의 주요한 작업들이 이번 꼬르소꼬모 전시에도 상당부분 와서 볼 수 있는 기쁨이 컸습니다. 1979년 자신의 친구이자 동지인 티에리 뮈글러의 격려에 힘입어 첫 컬렉션을 선 보인 이후, 신축성 있는 소재와 저지로 인간의 몸을 밀착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신체의 선을 조형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져있죠. 파리 에콜 드 보자르에서 조각을 전공했던 디자이너 답게 그는 유독 패션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인간의 몸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인간의 몸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고 안아주는 옷은 '오랜동안 견디며' '유행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던 디자이너입니다. 참 놀라운 건 그의 고집스러움은 지금껏 패스트 패션으로 온통 패션산업이 시간 경쟁을 하고 일년에 5번이 넘는 패션쇼 경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꿋꿋이 지켜지고 있고 상업적인 결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그의 옷이 그저 한 계절을 버티는 사물로서의 옷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게 된 건 1985년 파리에서 현대예술 작가인 댄 플라빈과 함께 상을 타고 이후 그의 작업들이 줄리앙 슈나벨, 안셀름 키퍼, 장 미셀 바스키아와 같은 작가들의 작업과 함께 병치, 전시된 점을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고집은 언제봐도 놀랍습니다. 기본적인 그의 패션철학과 의상은 30년 넘게 변하질 않았으니까요. 그저 계절마다 변주와 세부적인 디테일을 정교하게 표현한 것 이외에는 정신의 토대를 흐려놓지 않았습니다.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참 놀랍지요. 



조각을 공부한 후 디올 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디올의 옷을 카피하며 이후 디올 하우스로 입성,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딱 5일 일하고 그만두고 말지요. 때는 1954년부터 62년까지 이어진 알제리 전쟁 시절이었습니다. 북 아프리카 출신인 그는 외교상 기피인물로 찍혀버리고 말았죠. 



한 벌의 옷이 유행의 힘을 너머 존재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게 해준 전시였습니다. 



알라이아의 작업을 지켜봐온 외국의 평론가들이나 이론가들은 그를 분류할 때, 항상 장인으로서의 디자이너로 소개합니다. 



알라이아가 들어왔네요. 이 날 좋은 카메라를 들고 갔어야 했는데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깔끔하게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는 마오 수트를 일종의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입고 다닙니다. 한국에서 잇따라 패션전시들이 열리고 있어서 고무적입니다. 저도 작년 8월 한국의 패션디자이너들과 현대미술작가들을 규합해 대형 패션전시를 기획했었는데요. 외국의 패션전시를 라이센스를 주고 사오는 전시에만 치중하게 될까 걱정도 됩니다. 디자이너를 '우리만의 시선'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이미 만들어진 틀을 그대로 수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꼬르소꼬모에서 알라이아의 옷을 대거 전시의 형식으로 보인다는 것, 옷이란 사물에 대해 또 다른 깊이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