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기쁨을 아는 몸
문학계가 시끄럽다. 작가 신경숙의 표절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들이 속속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신경숙의 표절을 공론화한 이응준 작가에게도 고맙다. 솔직히 신경숙의 표절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었지않나. 지속적인 문제지적이 해결의 장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문제의 테두리만 겉돌다가 소멸하고 말았던 것 아닌가 말이다.
자성과 자위 사이, 베끼기가 있었다
표절은 엄연한 범죄다. 법으로 평가되어야 옳다. 이응준 작가에게도 묻고 싶다. 언론 인터뷰에서 '문학계의 자정활동'이 우선이라며 검찰수사를 표적수사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물론 현택수 사회문제연구원장에게도 문제는 있다. '사기'혐의라기 보단 차라리 일본의 저작권자에게 연락을 해서 처리해야 옳다. 직접적 권리관계의 침해가 아닌 3자가 끼어드는 건 법적 다툼의 기본을 모르는 행위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계가 그 자체로 '면책특권'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인가? 인지수사와 표적 수사의 의미 정도는 알고 써줬으면 좋겠다.이응준씨 주장대로라면 사회법을 위반한 목사들에게, 세상이 비판의 칼날을 세울 때, "하나님의 일로 인한 문제는 교회 내부에서 치리하게 해야지, 외부로 가져가면 안된다며" 교계 전반의 자정과 자율적 치리를 운운하는 그들의 논리와 뭐가 다른가? 표절의 문제를 가장 먼저 지적하고 해결했어야 할 문학계 내부의 중재자인 평론가들이, 앞다투어 표절의 치리를 '문학의 몫'으로 돌리자 한다. 사태가 이 정도되면 이건 정신의 중증 자위질에 가깝다.
신경숙을 부탁해
스스로를 법의 범위 외부에서 '스스로를 자성할 수 있는 존재'로 격상시키려는 것인가? 문학계가 신경숙의 표절을 둘러싼 현안을 처리하는 모습은 사회정서와 다른 거리감만 표출하고 있다. 작가회의에선 긴급토론회를 연다지. 토론회를 열면 해결이 되는건가? 말의 성찬만 오가고 실제 해결방안들이 구체적 행동계획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기대는 해보지만, 뭐 항상 그렇듯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다'라는 결론일까 두렵다. 어떤 출판인은 신문 인터뷰에서 '자기 검열이 세지면 창작열이 꺽인다'란 식으로 말하던데, 곤란하다. 작가가 작품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에 대한 주석처리를 확실하게 하는 문제를" 자기검열(Self Monitoring)과 연결짓는 건 문학창작이 일련의 예술창작 행위과정과 비교해서 더 많은 '특권'을 타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검열과 탈고 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떠들고 있다. 패션 디자인의 경우 표절 사례들이 법정에 선다. 표절한 옷은 시장에서 바로 철수 및 소각되며, 업체에게 손해배상해야 한다. 문학만 창작이라고 믿는 것인가? 창작자가 영감을 끌어오며 '빚'을 진 이의 생각에 감사의 표현 하나 없이 눙치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무엇인가?
아몰랑, 그냥 눙치며 살래
침묵하는 신경숙과 어정쩡한 태도로 관망세로 접어든 창비, 양쪽 다 문제해결을 위한 갈급함이 있는지 묻고 싶다. 문학이 자기계발서보다 판매가 안되는 시대, 그 시대는 자본의 중층적 힘에 문학이 매몰되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문학이 '이야기의 힘'으로 시대의 진실을 포획하고 발화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비평가의 해석이, 융숭깊게 생산된 의미의 망을 던지지 못하는 시대, 언어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길 포기한 자들이 어디서 문학가의 자존과 위엄을 지켜달라고 앙앙대는가? 스낵컬쳐가 어떻고 어줍잕은 문화평론 늘어놓지 말라. 문학적 상상력이 무엇인가? 문학의 렌즈로 삶의 의제를 만들어갈 힘 아닌가? 장수 프로그램은 항상 첫마음을 잃지 않기에 소비자가 함께 한다. 소비자들이 당신들을 선택하지 않는 건, 당신들의 첫 마음에 허연 석태가 끼었기 때문이다. 표절은 이제 당신들이 사회를 향해 던져야 할 의제다. 문제 해결책을 도출하기 보다 전칭명제로 '우리만 그런가 남도 그런데'라고 말하지 말라. 언어로 의제를 만들고, 스스로 자신의 언어를 통해 세상에 검증을 받기 싫어하는 자가 무슨 문학인이라고 말하는가? 신경숙은 이제 그만 그 침묵의 혓바닥을 드러내라. 표절 킬러로 소문난 그녀의 남편에게도 반드시 변을 듣는 시간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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