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아버지 세대의 종말을 고하라-당신은 안녕하신가요?

패션 큐레이터 2013. 12. 13. 23:04


아랍에서 돌아와 밀린 잠을 잤습니다. 15시간이나 잤어요. 그만큼 피로가 

누적되어서일겁니다. 컴퓨터를 켰는데 눈에 쏙 들어온 표제어가 있습니다. 바로 

고려대의 한 학생이 붙였다는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대자보가 각 대학과 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소식입니다.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그들의 사진을 봤습니다. 우리는

흔히 네이버 컴색창을 만들어놓고, 우리 스스로 알고 싶은 질의내용을 표제어로 빈칸에

써놓곤 하죠. 그들의 웃음에서, 프랑스의 68혁명의 표정을 읽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대통령 선거시절, 그녀가 했던 모든 약속들을 하나씩 

폐기하고 있습니다. 민영화를 비롯해 철도 노조들을 처절하게 직위해제하고 

밀양에선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우리는 기득권들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에서 살기를

거부합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는 이 나라

의 민족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 나라만큼 기득권들의 욕망이 강한 나라를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실제로 왕조가 바뀐 것이 별로 되지

않는 건 이런 이유입니다. 밟히고 밟히고서야, 그제서야 목소리를 조금 내는

우리들이,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같은 괴물집단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 근대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툭하면 강력한 리더십이란

미명하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장되고, 그저 옛추억 속의 군사 독재자를 종교적 

광기에 가까운 믿음으로 추종하며 사는 세력들이 뻔뻔스레 큰 소리치고 반대 의견을 내기만 

하면 여전히 종북과 빨갱이란 해묵은 단어를 내뱉는 이들이 자신들의 의견이 여론이라며 몰아붙이고

있는 동안 청년들의 마음은 황폐의 수준을 넘어 이제는 교육된 무기력과 패배감으로 가득합니다

아마도 기득권들은 간절히 바라는 세상일 것입니다. 학습된 무기력 만큼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정치적 의제는 사라지는 세상은 곧 다음 세대들에겐 아버지 세대의

강력한 법과 그들만의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 테죠. 세상은 항상 

자칭 '아버지 세대의 죽음'을 선포하면서 새롭게 변해왔습니다.



진영논리에 갖혀있는 이들도 어리석긴 마찬가지입니다. 선거 결과를 가지고

툭하면 모든 걸 청년세대들에게 뒤집어씌우는 동안, 자칭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떠든 

중년들, 바로 당신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왜 학생들에게 모든 걸 전가합니까? 그래놓고 우리 세대는

변화를 위해 싸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래서, 당신이 영웅이 되면 마음이 시원합니까?

운동을 치열하게 하지 않은 자들일수록 술자리에서의 해후와 목소리만 큰 법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극심하게 침해되는 동안, 여전히 보수언론들은 정권의 철저한

옹위부대가 되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보호막도 영원

할 수는 없지요. 지금 현 정권은 부정선거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와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후속

조치를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선공약으로 국민들을 기망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요.

우리 아버지 세대를 심하게 신화로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밤잠 안자고 일을 하고 제대로 먹지

못했고, 어쩌고 하는 식의 세대들. 그렇게 이뤄놓은 산업화의 모든 결과가 다 자기들 

때문이라는 환상에 빠져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건 솔직히 고백해야죠.

그 산업화는 당신들만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되지요. 



재갈물린 언론과 가장 지저분할 정도로 변해버린 기득권 집단인 교수집단을 

비롯. 진영논리에 상관없이 자기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종부리듯 하는 것이 당연한듯

아는 그런 아버지 세대의 교수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의 교수라고 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만큼 이 나라에서 기형적 확장을 거듭해온 대학들은 오늘날 학생들의 청춘을 담보 삼아 외형적 성장만

추구해왔을 뿐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서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극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자칭 어르신이라 불리는 자들이 '어른'의 역할을 못해온

지금 그 아버지 세대에 대한 종말을 선포하고 일어나야 할 때가 맞습니다. 


역사 속 새로운 예술의 논리들은 바로 저 아버지 세대의 방식과 결별

하고 아버지 세대의 논리를 뒤엎고, 새로운 시대의 정서를 결합시킨 이들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각 국의 영화들은 바로 이런 표본입니다.

아버지 세대의 영화에 대한 종말과 더불어 새로운 영상언어를 만들었지요. 이것은 비단 영화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 세대와의 결별이란, 더 이상 변해가는 시대를 담보할 수 없는

구태스러움과의 결별이며, 세상을 전유하는 언어를 만들어갈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재확인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지지합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참 우리는 길들여져 있습니다. 상호간의 

경쟁의 틀이 엇비슷하고, 열등감의 무늬도 참 비슷하죠. 그렇게 살아가는게 

삶이려니 스스로 포기하고 살지요. 학습된 삶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저는 지금 '안녕들하십니까'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저 청년들에게서 미래의 

단초를 보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저들을 응원하겠습니다. 


저도 제 자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