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태교를 큐레이팅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루느니라-김병진의 철조각을 보며

패션 큐레이터 2015. 1. 5. 19:24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의 사랑장은 종교를 떠나 사랑받는 글입니다. 사랑의 본질을 말하는 부분이지요.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폐하고 지식도 폐하리라" 나이가 들수록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아마도 성경은 이 한장의 설득을 위해 쓰여진 텍스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의 속성들, 그 변덕스러움과 상처줄 수 있는 힘들, 그것을 수용하고 견디는 지혜, 세상은 온통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넘치고, 그것을 획득할수 있는 지적 기술로 넘쳐납니다. 


우리의 사랑은 철보다 견고하다


아내의 태교를 위해 전시장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음악을 고르고, 첼로를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손끝으로나마 아이에게 현의 떨림을 통해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오늘 고른 작가는 김병진이란 작가입니다. 그는 조각가입니다. 철을 재료로 사용하죠. 견고함의 정점에 서 있는 저 철의 단단함을 작품을 만들기 위한 선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선을 엮어내죠. 그런데 그 선을 자세히보면 글자가 쓰여있습니다. LOVE 사랑이란 뜻의 네 스펠링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스펠링 사이, 공간을 껴안고 있는 여백 사이로, 따스한 인간의 호흡이 흐릅니다. 그의 손에서 사랑이란 두 음절의 단어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들어내는 실이 됩니다. 동물과 과일, 하트, 영화 주인공에 이르기까지요. 



사랑, 세상을 빗는 기적의 힘


저는 사랑장을 읽을 때마다 소름이 돋습니다. 특히 사랑장의 후반부를 읽을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들이 매우 부분적이라는 것, 그런데 그 부분의 조각들을 짜맞추며, 자신의 조립법이 옳다고 말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이걸 비난하기도 어렵습니다. 조립법이 곧 세계관이니까요. 교회를 다녀도 다른 건 없었습니다. 자신만의 조립법이 옳다고, 그것이 진정 세상을 재구성하는 방법이라고, 그것이 도덕이고 의라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온전하지 못하다는 점을 말입니다. 사랑이 이뤄질 때, 우리는 조각들을 제대로 맞춰 실상을 보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곧 아이와 함께 재구성해 갈 세상의 재료들을 빚는 시간입니다. 철이라는 꽤나 이질적인 물성에 대해 두렵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아이가 태어나 살아가야 할 세상 자체가 철 같은 세상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철이 공간에 어떻게 놓여지고 어떤 생각을 품는가에 따라, 세상의 다양한 특성들을 교차시켜 안아낼 수 있다는 것, 그런 관점들을 아이와 함께 나누는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며칠 전 몇달 동안 계속된 교회 내 성경공부 시간에 목사님께서 부부들에게 각자에게 쓸 편지를 써오라고 하셨지요. 다른 분들이 너무나도 멋지고 구성지게 편지를 쓰는 동안, 드라마 <미생>을 함께 봤던 우리 부부는 드라마 속 대사를 빌어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과 나의 시간을 하나로 묶는 힘

-사랑은 모든 것을 이루느리라


제가 쓴 구절은 장백기의 대사였습니다. "장그레씨, 내가 보낸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그레씨.....내일 봅시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격절된 섬으로 살다가, 섬 사이에 다리를 놓아 부부가 되고 엄마, 아빠가 될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우리가 만나기까지, 각자가 살아온 시간의 격자무늬들은 달랐을 것입니다. 그 이질적인 경험의 체계, 사고, 세계관, 이 모든 것이 아이로 인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찌보면 아이는 두 사람의 삶을 용접하는 아교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앞으로 살아가며, 아이를 키우면서도 서로가 살아온 시간에 부여한, 각자의 경험이 더 옳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게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아이가 살아가야 할 시간은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이 아닙니다. 제 3의 시간이죠. 저는 이 대사가 좋아요. '내일 봅시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매일 매일 보고 부대끼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김병진의 조각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만들어냅니다. 지금껏 없던, 체험하지 못했던 삶의 기적들을요. 사랑은 모든 것을 이루나 봅니다.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