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태교를 큐레이팅하다

꿰매지 못할 상처는 없다-마음 치유를 위한 조각작품

패션 큐레이터 2014. 12. 31. 03:01


치유하다-빨간 리본, 스테인레스 스틸, 우레탄 도장, 사암, 알루미늄 와이어, 2014


한 해가 흘러갑니다. 그렇게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됩니다. 

송구영신을 영어로  Throw out the Old Ring, Bring in new one이라

합니다. 오래된 반지를 벗어던지는 것, 새롭게 시작되어 굴러갈 새로운 반지를 

끼고 가열차게 다가오는 한 해를 맞으라는 뜻일 듯 합니다. 역시 삶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여기에서도 반지는 윤회전생과 반복과 누적의 의미를 그대로 띠게 되겠군요. 오늘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미술작품은 박성하 작가의 조각품입니다. 마치 헝겁을 기워만든 것 같은 곰인형이

조각이라니 놀랍지요? 그만큼 수만번 세밀하게 쪼아 봉제인형의 질감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게다가 초록색 실로 꿰맨 흔적까지 명징하게 드러냈죠. 



치유하다-피에타 스테인레스 스틸, 우레탄 도장, 사암, 알루미늄 와이어, 2014


봉제인형하면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던 테디베어가 떠오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항시 안고 다니는 인형을 어디를 가든 함께 가지고 가죠.

단순히 분신이라 말하기엔, 인형은 그 소유자인 아이들의 내면, 말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속내를 투사시키는 사물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형과 같은 사물을 심리학에서는 

유아에서 어른으로 전환되는 시기까지 함께 하는 물건이라 해서 Transitional Object

라고 명명하지요. 굵은 봉제선으로 두 개의 대리석을 봉합시켜놓은 듯한 

작품 앞에서, 올 한 해 아픈 마음들을 이렇게 꿰매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 스테인레스 스틸, 우레탄 도장, 사암, 오석, 알루미늄 와이어, 2014


올 한해 제겐 많은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결혼이라는 선물과 함께 

가정이라는 소중한 테우리가 생겼고, 이 테우리가 긋는 생의 나선 아래로 

함께 손잡고 주유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또 태어날 아기가 동시에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런 생의 환절기를 건너며 받은 선물은 동시에 부담도 되지만, 그만큼 

강력한 긴장감을 제 삶에 불어넣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가정을 갖는게 자연스러운 삶을 

능숙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좋은 삶이란 게 결국 장자적

으로 표현하면 자생적으로,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연애와 사랑, 결혼에

이르는 과정들,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은 참 자연스레 발생된 사건들이

었습니다. 저는 그 자연스러움이 좋습니다. 우리가 흔히 자연스레

발생한 것을 Spontaneity 자생성이라고 하죠. 



치유하다-녹색리본 스테인레스 스틸, 우레탄 도장, 사암, 알루미늄 와이어, 2014


이 자생성Spontaneity 은 그저 충동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냉정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생적 행동이란 상황의 필요에 따른 행동입니다. 이 과정에서 과도

하게 나를 옮아매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몸을 이완하며, 이름 부르기에 의해 습관적으로 

고정된 범주의 고리를 풀고, 유연하게 차이와 통합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돌이켜보며 

나는 얼마나 내 삶을 둘러싼 차이와 통합을 이루며 유연한 생각을 지니려고 했는지 반성합니다.

저 거대한 대리석의 조각을 쪼개고 쪼개어, 봉제인형의 질감으로 만드는 조각가의 

땀이라면, 우리의 생을 자생적으로 보이게끔 조형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저는 적어도 그렇게 믿으려고요. 맨날 상처받았다고 누군가에게

감정을 투사하기 보단, 꿰매지 못할 상처는 없다고 

제 자신에게 주술을 걸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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