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태교를 큐레이팅하다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행복은 삶을 담은 칵테일이다

패션 큐레이터 2015. 1. 4. 06:07



행복아.....넌 어디에 있는거냐


아내가 임신한지 18주에 접어듭니다. 태교를 위해 책을 읽거나 연극을 함께 보고, 전시회도 가보지만, 결국 집에 있을 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매체는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관에서 봐야 그 맛이 제대로지만요. 언제부터인가 힐링이란 단어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명시적 단어가 되었습니다. 힐링(Healing)이란건 결국 치유의 주체가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감성자극하는 코드 몇가지, 혹은 우리 안에 담아놓은 해묵은 부채의식을 살살 긁어놓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현재의 힐링트랜드는 참 밥맛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2009년 마음치유를 위한 <하하미술관>을 내놓고 8쇄를 넘게 찍는 동안, 여전히 사람들은 힐링에 끌리는 건, 그만큼 이 사회에 행복의 조건에 대해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정신과 의사로 나오는 헥터에게서 '우리자신'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담이란 행위를 통해 환자들의 정신적 상태를 검토하고 평가하며 대안까지 제공해주어야 하는 정신과 전문의인 헥터에게, 정작 행복의 의미는 중요했을겁니다. 프로작같은 인위적인 약물들이 나오는 시대에, 행복도 그저 호르몬의 변화로 감지되는 것이라고 폄하하기엔, 인간이란 동물에게 행복은 너무나 중요한 화두니까요. 중요하지만, 습관이 될 때, 우리를 둘러싼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반응은 기계적이 되기 쉽습니다. 한 마디로 웃음과 활력이 잉태하는 자연스러움을 상실하게 되죠. 관성에 빠진 삶만큼, 우리 자신을 축소시키는 것도 없죠.



여행, 세상이란 캔버스를 재구성하는 붓


글을 쓰면서 언제든 힘들때면 여행을 떠났습니다. 결혼 후 이런 자유로운 일인여행의 행복은 끝났지만, 사실 부부가 되어 떠나는 여행도 즐거웠습니다. 해외를 워낙 많이 다녔던터라, 언제부터인가 해외여행이라고 해도 설레임보단, 더 많은 걸 짧은 시간안에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어느 한곳, 제 마음이 이끌리는 곳에서 무작정 터를 잡고 쉬고 자세히 일상의 풍경을 보는 재미를 느껴왔습니다. 곧 태어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될진 모르지만, 꿈꾸는 여행의 형태는 많습니다. 


결국 여행은 인간을 만나는 또 다른 방식이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은, 인간을 탐색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내 안에 숨겨진, 혹은 내가 보지 못했던 저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몽테뉴가 말했듯, 여행이란 건 좁은 대지에 묶여있는 인간에겐 딱 그만큼의 고민꺼리와 해결책밖엔 생겨나지 않기에, 그 지경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결국 여행은 우리의 관점을 재조정하는 계기가 되고, 이로 인해 세상을 재구성할 새로운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행은 다림질이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몇 가지를 확인합니다. 행복의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과 그 단순은 SImple 이 아니라 Unconplicated 를 번역한 단순함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Simple이라고 하면 다소 직선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Uncomplicated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어떤 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여러개이고 그것이 칵테일처럼 뒤섞여있다는 뜻인거 같아요. 왜냐하면 단어의 중심에 들어가는 Pli란 말이 주름이란 뜻이니까요. 주름잡힌 것 없이 쫙 펴져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게 결핍되어서 불행한게 아니라, 지금 이미 내 안에 들어차있는 것들이 다림질없이 마구 구겨진 상태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닐까 싶네요. 



소명에 응답하는 삶, 우리가 인간으로 지음받은 이유


저는 아프리카로 떠난 헥터가 그곳에서 진료봉사를 하는 친구와 함께 한때를 보내며 '소명'이란 단어에 눈뜨게 될 때가 참 인상깊었습니다. C.S 루이스가 참 멋진 말을 했더군요. "우리에게 이 지상의 것이 채워줄 수 없는 열망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다른 세상을 위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요. 물론 여기서 다른 세상을 꼭 기독교적 새하늘과 새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자신에게만 얽매어있는 관점에서 벗어나, 타인을 볼 때 우리는 우리안의 새로운 땅을 개척하게 됩니다.


영화 속 헥터가 만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는 부자나, 아프리카의 마약상이나, 언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죽으려는 뇌종양 환자나, 그들에겐 삶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분명 삶의 목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요즘 세태가 이 목적론적 사고, 삶의 종착점을 하나같이 흐릿하게 표현하고, 공격하는 통에 목적부재의 삶의 형식이 더욱 강해지고 지지받고 있습니다. 


행복은 칵테일이다. 


우리가 행복함을 느끼는 수준을 뇌과학을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하죠.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 헥터의 뇌를 단층활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행복과 불행, 불쾌와 같은 감정들에 색을 부여해서 뇌가 어떤 색으로 채워지나 보는 것이었죠.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특정한 하나의 감정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란 거죠. 다양한 경험과 사건, 때로는 위험을 느끼고 거기에서 해방되기도 하고, 내 안의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를 대면하기도 하고, 부부간의 불화와 통합을 막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행복을 향해 간다는 것. 그래서 결국 행복은 칵테일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