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태교를 큐레이팅하다

내 마음에 사포질이 필요할 때-에른스트 감펠의 그릇 앞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4. 12. 29. 14:59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한 권의 책을 썼고, 또 한 권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다가오는 한 해에는 예전의 베스트셀러 한 권을 복간하고, 두 권의 패션 에세이를 씁니다.

원고를 부탁하는 이들이 늘어가지만, 함부로 매체에 싣기보다, 꾹 저장해놓고 한 권의 책에 정리해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큽니다. 그렇게 마음을 누르고, 또 발산시키며, 한결같이 보낸 한 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여전히 마음에 새기는 단어는 '구속되지 않은 나'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가는 독일의 목공예 작가인 에른스트 감펠Ernest Gamperl 입니다. 

1965년생,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17세부터 목공일을 시작했고 나무의 질감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다지요. 20대 중반, 자신의 이름을 건 독립 공방을 열고 현재까지 작가로 열심히 작업 중

입니다. 제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비대칭의 형상이 주는 긴장감과 여백, 세밀하게 깍아낸듯한 표면의

결이 주는 마음의 안정 때문입니다. 머릿결, 피부결, 마음결, 한결 같은......저 결이라는 단음의 

단어가 주는 넉넉함과 그것을 만들기 위해 누적되어야 하는 마음의 시간이 더 좋습니다.



압구정동 3번 출구를 다니다보면 코에 붕대를 붙이고 걸어다니는

중국 아가씨들을 자주 봅니다. 하긴 성형이란 것도 우리의 얼굴에 대칭의 형식을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지요. 대칭은 참 아름다운 요소를 만들어냅니다. 질서와 비례

등등, 우리가 화장을 하면서 마음이 기뻐지는 건 바로 여기에서 나오죠.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이 비례와 대칭에서 벗어난 것들이 꽤 많죠. 



결국 우리만의 독특한 매력을 찾기 위해선 표면과 재질감을 찾아야 

합니다. 패션도 바로 그런 재질감을 부여하는 환상의 기술일 뿐이죠. 나무가 본래 지니고 있는 개성을 

담아내려면 함부로 표면을 깍거나 사포질해서는 안됩니다. 흡집과 잔가지가 자라며 생긴 

흔적, 옹이의 그늘이야말로 나무 자체의 고유한 개성이기 때문입니다. 



감펠은 자신의 작업 초기, 희귀하고 이국적인 재료들을 사용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신의 일상,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단풍나무나 너도 밤나무, 이탈리안 올리브나무 등

을 사용한다고 하죠. 게다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나무를 베어 작품에 쓰는 것이 아니라,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나무들을 이용해 자신의 손길로 리사이클링 합니다. 그가 만든 작품의 표면들을 보니

자연스레 누적된 시간의 흐름이 마치 지문처럼 새겨져있는 것이 좋더군요. 



사물의 얼굴도 인간의 얼굴과 그리 다를바가 없나 봅니다.

인간의 관상이라 하는 것도 오랜 시간, 자신의 누적된 습관의 각인이듯

사물도 그것이 만들어진 당시에서, 사용자에게로 옮겨져, 어떻게 사용되는 가에 

따라 또 다른 맛과 풍취를 내게 되니까요. 



마음에 사포질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고마운 마음은 돋을새김하고, 아프고 추하고

쓰리고, 분노하고, 질투나는 마음들은 사포과 대패질로 곱게 갈아내면 좋겠어요.

사물 앞에서의 작은 묵상이, 이런 행동으로 이어지면 더욱 좋겠습니다. 하긴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행복한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