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태교를 큐레이팅하다

출산에 관한 모든 것 영화 <해피 이벤트>-잃어버린 별을 찾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14. 10. 30. 14:48

 

태교를 위한 영화를 찾다가


최근 출산을 테마로 한 영화를 찾아보고 있는데요. 좋은 영화가 있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2011년 프랑스 영화 <해피 이벤트>입니다. 아이를 갖는 과정과 이후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영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특히 출산과 관련해서는요. 영화 해피 이벤트는 출산과정과 그 이후 산모에게 발생하는 문제들, 남편과의 문제와 같은 출산 이면의 현실을 따스한 시선으로 살펴봅니다. 영화의 시작이 참 예쁩니다.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바바라와 영화감독을 꿈꾸는 니콜라스는 DVD 대여점에서 처음 만납니다. 세상의 모든 별들이 빛나기 위해 누군가의 빛을 요구하듯, 서로의 빛에 끌립니다. 영화의 제목으로 썸을 타는 장면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마지막으로, 둘은 하나가 됩니다.


 

썸타는 장면 하나하나도 진부하지 않게 깔끔하게 만들어내는 연출력과 감성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연애의 끝이 결혼과 출산은 아니겠지만, 결국 사랑에 빠지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니콜라스의 바람대로, 바바라는 아이를 갖게 됩니다. 영화감독의 꿈을 접고 좋은 직장도 잡고 아빠 준비를 하죠. 


 

초보엄마, 레비나스를 읽다.

 

철학도로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논리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하루 아침에 뒤죽박죽이 된 일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산모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마구하고, 자기의 욕망대로 따라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철학자 레비나스의 글들을 읽는 그녀의 모습은 참 곱습니다. 이 영화에서 왜 철학도를 등장시켰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네요. 영화에는 타자성의 철학을 발전시킨 레비나스의 텍스트가 자주 등장합니다. 사랑의 결과로 맺어지는 한 아이의 탄생과 그 성장과정을 지키는 일은,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게 됩니다.

 

사랑은 어떤 점에서 보면 나의 자기됨과 내 존재가 확장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일을 요구하지요. 나는 당신에게 줌으로써 '비로소 살게되는' 이타적 실존의 세계입니다. 비록 이 과정의 뇌과학자들의 표현대로 호르몬의 작동 기간 동안 이라는 한정된 시간의 틀 속에 있다고 해도 말이에요.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 나란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퍼주는 것이기에 결손되는 경험을 할 수 밖에 없고, 나는 시들어가는 것이며, 또한 (누군가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짓이지만 이 사랑을 통해 우리는 나란 존재의 단면을 넘어서는 탁월함과 숭고를 성취하게 됩니다. 아이가 과연 우리를 탁월하게 만들어줄까요? 영화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우리는 그 아이를 환대해야 하고, 무한책임을 저야 합니다. 출산까지의 과정도 힘들기만 합니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입덧과 신체의 반응들은, 사실은 타자가 내 몸안에 들어옴으로써 발생하는 경험입니다. 초보엄마의 입장에선 이질적인 것들이 몸에서 자라다보니, 초기에 신체는 저항하고 입맛을 잃고, 토하고요. 어디 이뿐인가요? 그나마 초기의 과정 3개월을 넘어서면 아기는 엄마가 섭취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먹고 지방만 토해냅니다.

 

힘들게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됩니다. 시어머니과 친 어머니는 꽤나 만만찮은 적이 됩니다. 서로가 아이를 키운 방식들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영화 속 여주인공 바바라의 엄마는 굉장한 자유방임주의자였고, 페미니스트였습니다. 마약을 한 채 아이를 고아원에 갖다주려고까지 한 걸로 나오죠. 이에 반해 시어머니는 남편이 5살이 될때까지 모유를 먹였다며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꽤 꽨찮은 대조를 이루지요? 


 

모유와 분유를 넘어......

 

아이가 태어나면서 바바라의 일상, 적어도 논문 마지막 심사학기를 남겨둔 초보엄마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하이데거를 읽고 야스퍼스를 읽으면 뭐하나요? 그들의 사변은 밀린 살림과 앞으로 좀처럼 진행되지 못하는 논문 작성에 별 도움이 못됩니다. 게다가 산후 우울증까지 겹쳤습니다.

 

유년시절 엄마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딸 바바라는 모유수유 같은 건 애시당초 던져버린 자신의 엄마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며 모유수유클럽에 나가기까지 합니다. 아이에 대한 지나친 헌신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 아이에 대한 헌신은 좋은데 또 다른 문제가 터지죠. 바로 남편과의 관계입니다. 우울증과 출산 후 변화된 몸 상태로 부부관계도 예전같지 않고, 아이는 수시로 울어대는 통에 사랑만들기는 매번 실패! 



모성애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곰삭여주기 위해 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철학자들의 치열한 사유가 우리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어떤 힘을 그렇게도 주었던가요? 영화 속 남편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을겁니다. 사랑을 통해 아이라는 타자를 갖는 순간, 그 아이로 인해 두 사람만의 관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균열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고, 어떤 상황이 닥치기만 하면 그저 내 몸속에 마치 프로그래밍이라도 된 것처럼 쏟아질 것 같던 모성애란 것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험난한 과정을 견뎌야만 얻을 수 있는 인간의 미덕이며 탁월성이란 걸 말이에요. 


 

영화는 우리에게 아이를 키우는 환희, 마냥 해맑은 아이의 미소로 모든 걸 퉁치자는 식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그 현장에 놓여진 우리들의 숙제 앞에서, 떨지 않고 싸우다보면 우리에게 얻게 되는 것이 있음을 확신시키죠. 


 

잃어버린 우리 안의 별을 찾게 되리라

 

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그 과정에서 놓치게 되는 것 많습니다. 내려 놓아야 할 것들도 많고요. 저도 하루에 몇 번이고 되뇌입니다.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오던 토요일 아침. 행복과 교차하는 감정들이 마음을 엄습합니다. 아이가 천국에서 배달되는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요즘, 내 곁으로 올 별을 기다리며, 오히려 아이란 타자를 통해 내가 잃어버렸던 별, L'etoile Manquante 을 찾게 되리라고 믿어봅니다. 우리 각자가 별의 먼지로 태어나, 별로 성장하듯 또 다른 별을 품는 시간을 멋지게 기다려보리라고, 그 이후의 과정도 잘 견뎌내보리라고 결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