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그를 생각하는 시간
오늘 제가 좋아하던 기자님의 발인날입니다. 그는 19년을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특기는 건축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구본준입니다. 한국의 유일한 건축 전문기자로서 집의 철학을 넘어 거리를 구성하는 다양한 표지판들, 건축물까지, 그가 건축을 사유하는 생각의 범위는 넓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스트리트 퍼니쳐라고 했습니다. 요즘 제대로 된 기자 하나 보기 어려운 세상이라 하지만, 그래도 구본준 기자만큼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기자도 없습니다. 그의 글은 항상 최신의 예화와 논평, 배울 거리들로 풍성했지요. 이렇던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취재 중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날 전남에서 강의를 마치고 밤차로 서울로 오는 길이었지요. 오보이길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제가 구본준 기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글을 잘 쓰는 기자였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지요. 그를 만난 것은 홍대의 상상마당이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중시대의 글쓰기란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저도 연사로 참여했습니다. 블로그가 인기를 날리던 시절이라, 그는 저의 블로그를 보며 '대중의 코드와 짚어내는 부분을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셨죠. 그 칭찬은 참 오랜동안 저의 정신의 지축이 되었습니다. 원래 글쓰는 사람들이 똑같이 글쓰는 사람에게 평가할 때 짠편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는 사업가에서 블로거로, 대중을 향해 패션의 역사를 쓰는 저자가 된 저에게 힘을 주고, 또한 따끔한 일침도 날렸죠. 만족하지 말고 정진하라고. 계속 지치지 않고 책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중박을 넘어 좋은 평가를 받게 될거라며 격려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종종 구본준 기자님을 뵈었습니다. 신간이 나오면 보냈고, 성곡미술관 옆 작은 커피집에서 만나 '평생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학위도 시작했다'며 포부를 늘어놓는 그를 보며 부럽기만 했습니다. 그는 제게 패션과 건축을 소재로 하는 책을 써보라고 격려했고, 저는 함께 쓰자고 제안드렸죠. 복식사와 패션미학을 공부하는 제겐 패션과 건축이란 화두는 새롭진 않지만 국내에는 연구서 한 권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한 권 있긴 했는데 학위 논문을 책으로 만든 것이어서 대중이 이해하기엔 힘들겠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패션과 건축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강의 첫 시작에 구본준 기자님의 이름을 이야기 했는데 그건 이 강의의 실제 시작은 기자님의 격려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던 터였죠. 강의 후 건축 하시는 분들도 실제로 뵙고 그들의 정서를 익히고 알게 될 기회를 얻게 된 것도 구본준 기자님 때문이었고요. 그는 글쓰기의 미학을 아는 기자였습니다. 직장인들에게도 제대로 된 글쓰기를 강의했고 글쓰기가 세상의 문을 여는 힘임을 알렸죠. 누구나 사회관계망으로 글을 쓰고 생산하고 있다고 믿지만, 여전히 글쓰기의 정도가 있음을, 그 방법과 실천론을 제대로 가르쳐주었던 그가 곁을 떠났다는게 아쉽습니다.
패션과 건축은 참 닮았습니다. 건축이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PLACE)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거대한 옷이듯, 인간의 패션은 사회의 정서를 바탕으로 그 위에 옷을 입히죠. 결국은 거주하는 두 개의 자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구본준 기자님과 쓰고 싶던 패션과 건축은 뒤로 잠시 미뤄두지만, 꼭 책은 내려고 합니다. 언론이 욕먹는 시대라고 하지만, 꼭 정치적 비판정신을 넘어, 문화의 힘을 믿고 그 힘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밀어부치는 에너지로 썼던 사람. 구본준 기자님을 이렇게 보냅니다. 글쓰기는 그가 지금 있는 하늘에서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를 기억하는 순간이 향이 될 때, 그 향은 천국에서 하나의 실이 되어 그를 위한 옷이 될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곁을 떠날때마다 먹먹합니다. 그러나 힘을 내야겠죠. 구본준 기자님, 잘가요. 우리 다시 뵐 때는 더 많은 수다거리, 제가 공부해서 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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