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가 안종연 선생님의 스튜디오에 다녀왔습니다.
양평에 자리한 선생님의 스튜디오는 지금껏 발표하신 작품과 더불어
현재 주목받고 있는 신규 작업까지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더구너 안 선생님을 사랑하는 컬렉터 분들과의 작은 모임도 함께 추진되어서 파티도
열었는데요. 제겐 생각지 않게 얻은 세렌디피티였습니다.
양평 스튜디오의 모습이고요. 눈이 많이 내린 뒤라,
소음이 사라져서 그런지,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다른 컬렉터 분들을 기다리며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블로그에 올릴 사진 한컷을 찍겠다며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답니다. 선생님이
얼굴 다 나오는 건 싫다고, 이런 포즈를 취해주시네요. 은근 재미있으시죠.
안 작가님의 작품을 제대로 본 건 3년 전이었습니다. 대산문화재단에서
기획한 <문학과 미술의 만남>전에서, 소설가 박범신 선생님의 <주름>과 <고산자>
작품을 시각언어로 풀어낼 작가로 작품을 내놓으셨지요. 이 당시 전시제목이 참 좋았습니다.
<시간의 주름>전이었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며 생로병사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내면과 외면에는 자연스레 주름이 생길 수 밖에 없지요. 늙어가는게 두려운 세상, 주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함께 풀어낸 전시라 더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름은 생명의 본질이자
탄성력으로 인해, 언제든 부활할 수 있는 우리 내 생의 스프링과 같은 것이죠.
스튜디오의 다른 작품들도 봤습니다. 제가 시간의 흐름에
대해 관심이 많다보니, 요즘은 목재를 이용해, 나무의 결 위에 그려낸
풍경들이 좋더라구요. 선생님 작업실에 이를 담아낸 작품이 있어서 한참을 봤습니다.
많은 언론과 미술 평론가들이 안종연 선생님을 가리켜서
빛을 다루는 작가라고 규정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눈을 편하게 하는
조명을 직접 조율해서, 특허를 낼 만큼 빛의 운용과 이를 통해 주변과 인간의
내면을 함께 움직이는 작품들을 만들어오셨는데요. 강하면 왕창리에 둥지를 틀고 복잡한
서울을 떠나 양평으로 오게 된 것도,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투영되는 빛의 끌림
때문이었다고 하죠. 경남 밀양이 고향인 작가는 자신의 삶의 유년시절을 보낸 유천강가를 떠올리고선
강가의 작은 모래알 같은 우주를 생각했답니다. 모래 하나에 우주가 담긴다면, 그 우주의
얼개를 드러내는 것은 빛이 될 것입니다. 이 때의 빛은 단순히 사물을 비추는 주체가
아닌 그 속에 살아가는 모든 물상의 내면과 뼈대를 함께 아우르는 빛이 되지요.
컬렉터분들을 모아놓고, 지금껏 방송과 언론, 혹은 소개된
매체들의 이야기도 함께 듣고 최근에 작업하신 미디어 작업도 봤습니다.
영롱한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작품입니다. 안종연 선생님의
작품들은 워낙 유명한 곳에 속속 자리합니다. 서울 국립암센터, 삼성생명 종로타워
휘닉스 아일랜드의 마리오 보타와 함께 만든 광풍제월도 기억하는 분들이 많죠. 여기에 교보문고
에 설치한 1760개의 유리구슬과 LED를 통해 만든 작품이 있습니다. 특히 교보문고의 천장을 장식한 작품은
LED를 직접 보면 눈이 피곤하기에 유리구슬 안에 기포를 넣어 눈을 편안하게 했다는 점, 일일이
불어서 만든 작품이란 점도 눈에 띄지요. 빛을 조형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 겁니다.
유리를 입으로 불어 만든 기포 위로 진분홍 빛이 흘러갑니다. 작가는
"좋은 작품이란 예술과 철학과 과학이 삼박자를 이룰 때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작가는 그 어느때보다 인문학적인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빛은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결국 그 빛은 우리 각자가 가진 빛들의 총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작년 한해 작가의 활동 상황들을 듣고 난 후
간단하게 저녁을 먹기 위해 연습실로 갑니다. 선생님께서 부산오뎅을
주문하셔서 끓여주셨습니다. 최근에 왼쪽 팔을 다치셨는데, 일을 하실 수가 없다
보니 이렇게 작은 파티라도 열어서, 지금껏 해오신 작업들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네요
어찌보면 작가를 믿고 후원하는 컬렉터들에게 대한 예의기도 하지만, 사실 이렇게
조밀하게 챙기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그만큼의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중간에 계신 남자분이, 이날 뵈었던 (주)서린 바이오 사이언스의
황을문 회장님입니다. 26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바이오장비 업체인데 사실
이 분은 CEO들을 상대로 인문학적인 강의를 잘 하시기로 소문난 분이죠. 저도 말씀만
듣고 있다가 살고 계신 곳이 저와 같이 워커힐쪽이라, 양평으로 함께 갔습니다.
이동 중에 나눈 수많은 따끈한 이야기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중소기업 CEO 들 중에는, 의외로 딱 그 규모만큼의 사유를 하는
분이 많습니다. 탓할 이유도 못되죠. 우리 사회가 큰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회사들을 누르거나, 대기업이 진입장벽을 높여서 막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린 바이오사이언스가 왜 잘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요.
회장님과의 미팅은, 적어도 대화 속에서 이 분이 보여주신 인문학적인
풍성한 통찰력은 회사의 기반을 말해주고도 남았습니다.
안종연 선생님 뵈면서 참 부러운 것이, 작가를 지키는 좋은 후원자들과
컬렉터층이 두텁다는 것일 겁니다. 작가의 작업이 사람들을 치유하고 희망을
주기 때문이겠죠. 저 또한 단순하게 공공미술가로서 기억하고 있다가, 직접 뵙고 작품
에 대한 미학적인 가치를 다시 묻게 되고, 미술이 우리시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웅진재단 신현웅 이사장님도 이날 함께 하셨는데요. 전 문화부 차관
이시기도 했죠. 예전부터 미술정책에 많은 관심을 쏟아주셨고, 패션쇼도 최초로
열어주셨던 분인데, 이렇게 우연한 자리에서 뵙고 이야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 이사장님이 앉아계신 자리에 걸린 그림이 바이칼 호수를 그린 그림이군요.
박범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를 그려낸 것이죠. 문학과 동일한
재질감과 감성을 돋을새김 해낸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안 작가님의 스튜디오 방문은 생각지 않은 힐링 캠프가 되었습니다.
남자의 자격에 나오는 '청춘합창단'의 단장을 맡고 계신 전웅 대표님이 멋지게
기타연주로 노래까지 들려주셨습니다. 이번 모임에 우연하게 동참하면서 느끼게 된게
한 가지 있습니다. 50대 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요. 삶의 선배들 중에 참 괜찮은 분들이 많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선배라는 건, 적어도 경험이란 차원에서 뒤를 잇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죠. 적어도 50대 남성분들이 생활문화에 회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는데, 자생적으로 변화해가는, 건강한 모습에 행복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변해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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