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인스퍼레이션

패션계의 영원한 앙팡테리블-임선옥 디자이너에 대한 단상

패션 큐레이터 2012. 11. 13. 06:00

 

 

나는 디자이너 임선옥 선생님을 좋아한다. 이분과 대화를 하고나면

항상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가슴 한 곳이 시원해진다. 서울패션위크 때 선생님이

발표하시는 날 안타깝게도 대구 가톨릭대학교 특강과 대학패션위크 심사가 걸려 컬렉션을

볼 수 없게 된 것. 컬렉션을 미리 보자는 마음으로 부암동에 있는 파츠파츠 매장으로 연락 후 찾아갔다.


 

새로 발표할 컬렉션 의상들과 소품을 들고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사진작업에 여념없는 매장에서 나 또한 준비작업을 보고 있자니 느낌이 새롭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상이란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라는 생각이랄까.



임선옥 선생님의 컬렉션과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지난 번 블로그에서

어느 정도는 언급했다. 나는 글을 쓸때 미리 내가 써놓고, 디자이너에게 그 글을

보고 반증이나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달라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옷을 크리틱 하는 나는, 옷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발견할 수도 있고, 내가 미처 읽지 못했던

의도를 명확하게 디자이너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컬렉션의

테마는 물고기의 유영이다. 그래서인지 비늘 모양의 모티프들이 액세서리

전반에 쫙 깔렸다. '이제 물고기처럼 회향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 파츠파츠 컬렉션에 대해서 파츠파츠가 집이란 건축물을

구성하는 한장의 벽돌이라고 말을 했는데, 디자이너의 설명으로는 PartsParts

에 ART가 두개가 들어간다는 말을 하신다. 그런데 영어 스펠링 P를 Play와 Performance로

읽어보면 어떻겠다는 페이스북 지인의 말씀을 생각해보니, 그럴듯 했다. 무용평론을

하시는 분답게 패션이란 아트를 연출하고 연행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보라고

하신 듯 했다. 곰삭여 생각해볼 만한 말이었다. 실제 디자이너의 면모를

고려해 볼 때 더 타당성이 느껴지는 해석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임선옥쌤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항상 벗지 않으시는 선글래스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일상에서 대화하실 때도 벗는 일이 없다. 그래서 좋다.


 

이번 컬렉션 테마는 피쉬우먼이다. 왜 그녀는 물고기 여인이 되고자

했을까? 앞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디자이너로서 이제 중견의 위치를 넘어간다.

패션의 세계를 한 권의 책에 비유한다면, 그녀는 항상 주류라는 가독성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일을 즐겨왔다. 가히 앙팡테리블, 무서운 아이들

이란 수사를 붙여도 될만큼, 임선옥 선생님의 작업은 새롭고 무섭다.


 

언제부터인가 패션에도 지속가능성 개념이 불어닥치면서 업계와

디자이너 모두, 버려지는 천조각의 양을 줄이면서, 봉제와 재단 전반에 대한

성찰을 시작했다. 봉제 대신 압축성형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낭비들을 줄이고 쓸모없는

에너지들을 뺀 것. 이번 임선옥 컬렉션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가방이며 소품들이

선보였다. 2011년부터 시작한 파츠파츠의 기본 노선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정교해지는 느낌이다. 공손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멋졌다.


 

지난해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도시를 유영하는 에르메스적

사유를 선보였다. 도시 속 디지털로 무장하고 자신의 캐리어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위한 패션이었다. 2013년 그녀가 보여주는 실루엣의 특징은 철저하게 튜브와

직선 라인이다. 세상을 향해 항상 돌직구를 던져왔던 그녀의 마음이 투영된걸까.


 

사실 최근 한국의 패션계는 위기담론이 팽배하다. 유럽 브랜드의

한국시장공략은 더욱 정교해가고, 그 가운데 디자이너의 캐릭터 브랜드는

하나같이 대기업의 촉수 아래 넘어가고 있다. 80-90년대를 음미하던 디자이너의 시대가

정말 끝나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손길과 창의성을 철저하게 무시

하는 대자본의 속성들이다. 유럽 브랜드 수입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보니, 정작 그 나라에선

한물간 브랜드를 비싼 가격에 들여와서 프리미엄 기간 동안 피를 조금 빼먹다가

버리는 형국인데, 이건 자국패션시장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무엇보다 자국의 패션을 자국의 언어로 풀어낼 여력을 잃어버린다.

이는 장기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실수 중 하나가

오세훈 시장이 벌여놓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사업이다. 자하 하디드는 세계적으로 명성높은

건축가이긴 하지만, 그녀가 도대체 동대문을 둘러싼 우리역사를 얼마나 속열을 앓으며

치열하게 해석하려 했는가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그래서 정작 지어지는 건물

의 실제 공간은 좁디 좁아, 내구성은 차치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건물이

되어버렸다. 건축가들의 비판을 오세훈이 뭉갠 결과다.


 

어디 건축만의 문제일까? 토건족들의 사회에서, 그들을 위한 국민의

혈세가 그들의 잔치에 사용될 수록, 실제 자국의 손과 언어로 빚어진 디자인은

설 자리를 놓치고 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그래도 잘 버텨주는 디자이너들이 참 고맙다.

그녀의 메종이 있는 부암동도 점점 입소문을 타면서 땅 값만 오르고 있다고 한다. 디자이너들과

창의 계층이 만들어낸 핫 플레이스를 만든 이후 자본에 빼앗긴 곳이 한 두 군데인가? 가로수길이 그랬고

세로수길을 넘어 경리단도 그 궤적을 걷고 있다. 부암동에 들어온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일종의 한숨. 그럼에도

'그러면 뭐 또 딴데 알아봐야죠. 저 잘 뚫어요' 라고 웃으신다. 이런 그녀의 용기가 나는 좋다. 맞다. 

그녀는 진정 한국 패션계의 무서운 아이, 앙팡테리블이다. 이 정도 깡다구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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