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빼놓지 않고 읽는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미술과 패션을 연계해서 풀어내려면, 결국 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동반해야 하기에 참 오랜 세월 빼놓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한 작품, 오브제 하나, 한 장의 그림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학자들의 인내심이랄까요. 저는 이런 인성이 좋습니다. 패션을 연구하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패션의 인문학이란 영역을 한국에서 소개하며, 사람들에게 강의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저 인문학이 철학이나 혹은 특정 영역의 전문가들의 말을 재인용하고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패션사와 미학, 이론들을 공부하다보면 정작 패션 디자이너를 만나는 것 보다, 패션이란 하나의 체계를 함께 색다른 시선으로 풀어갈 과학자, 화학자, 정보기술전문가, 인류학자, 건축가, 무용가, 이런 다양한 분들을 만나는게 오히려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더라구요.
우리사회는 요즘 융합과 하이브리드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어떤 지식의 대상자들을 만나면 특유의 밥그릇 싸움문화가 만든 폐쇄적 회로가 그대로 작동합니다. 물론 이런 이들은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그 좌표를 찾지 못하고 쇠락하고 말지요. 큐레이터는 어떤 점에서 보면 싸움꾼의 기질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자신들만이 대학이란 미명의 힘 속에서 만든 '작은 지식의 조각'이 권력을 가져다주는 시대가 지났건만, 여전히 환상에 젖어 사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 땅의 대학은 너무나도 반성할게 많아요.
웨어러블에 대해 최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보기술이 결합된 패션전시 기획과 연결하여 공부하고 있지요. 의상학 관련 전문가들은 안타깝게도 별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너무많고, 일반 철학이나 인문학자들은 그저 패션에서 '자신들의 생각'만을 공고하게 할 틀을 만드는데만 유념하니, 의외로 대화가 생산적이지 못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교수님들이 문제가 아니고, 어떤 사물, 어떤 사건, 어떤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는 우리사회 내부의 역량의 실제적 모습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패션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접학문들과의 마찰'이 필요합니다. 그걸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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