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멋진 꽃할배로 사는 법-그레이 마켓의 힘은 세다

패션 큐레이터 2014. 6. 17. 00:17

 

 

 

안티 에이징 따윈 필요없어

 

최근 방송에는 멋진 노년을 보내는 꽃할배/할매들의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미디어 매체가 속속 이전에는 다루지 않던 노년의 이미지를 이상화하고 자연스런 삶의 방식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오늘 패션 팟캐스트 13회에선 <나이 앞에 장사있다>란 제목으로 패션과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이 논의들을 이끌면서 제가 읽었던 책은 영국 켄트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줄리아 트위그가 쓴 『FASHION AND AGE』입니다. 


한국도 2010년을 기점으로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일본도 단카이 세대, 1947-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본격적인 노년들을 위한 시장, 그레이 마켓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예전 실버세대를 운운하며 시작된 실버마켓의 마케팅이 철저하게 실패하면서 일본은 진정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을 위한 시장을 만들려고 안달하고 있죠. 이른바 시니어 쉬프트라고 하는, 노년계층을 표적으로 한 물적 경제조건의 변화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이 책은 솔직히 재미있는 책은 아닙니다. 동어반복도 너무 많고 패션과 연령간의 상호관계와 매체가 노년을 다루는 방식 등, 서구에서 시작된 문화 노년학(Cultural Gerontology)의 관점을 반복하고 있는데요. 결국 중요한 것은 노년의 가처분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들의 신체와 외양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장식의 욕구들을 토해내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합니다. 


문화 속 노화의 문제, 노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삶 속에서 패션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잡지들이 1940년대 오히려 중장년 여성들을 모델로 쓰던 관례를 깨고 왜 젊은 여성들만을 이상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담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주장 중 가장 와닿는것은, 노인들을 개별시장의 주체로 읽어야 한다는 것과 특히 패션시장과 연결하여 보면 현재 Youth 시장에 매몰되어 있는 수요들과 이에 부응하기 위한 시장전략들, 옷의 형태와 색감, 실루엣들이 점차 이들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는 형태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노년층 인구를 위해 패션 시스템, 패션기업들이 제작관행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짚어보는데, 매우 피상적인 설명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보기엔 이런 학자들의 논문집 모음보다 일본의 현장 전문가이자 노년학의 전문가인 무라타 히로유키가 쓴 <그레이 마켓이 온다>가 오히려 더 와닿더군요.


패션에 대한 이론, 혹은 접근들은 사실 지나치게 학제성만을 띠는 경우가 많아 답답합니다. 저는 경영학을 기반으로 인문학과 미술사, 인류학, 디자인 연구들을 해왔었는데요, 결국 언어를 위한 다른 언어의 설명으로 끝나는, 한 마디로 박학다식은 하지만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식만을 누적하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상품기획자로 삶을 살아왔던 제 자신의 한계점이기도 하겠지만요. 히로유키가 말하는 노년을 위한 상품기획의 3가지 원칙 3E가 눈길을 끌었어요.


이것은 노년시장이 가진 특성인 불안 불만, 불편이란 제약요인을 제거하고 Excited, Engaged, Encouraged 하는 3E 철학을 상품에 도입하는 것입니다. 말 장난 같지만 사실 상기의 세 가지 요소를 상품기획에 넣으려면 철저하게 새롭게 등장한 노년 시장의 프로필과 그들의 감성구조, 행동에 촉발을 일으킬 수 있는 동기부여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쓴 것도 다른게 아니라, 패션 시장이야 말로 이런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젊음을 이상화하고 아름다움의 갱신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시즌이 지난 것들을 진부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계획적 진부화>의 논리 위에 선 패션은, 이제 한국 전체 소비자 시장의 8퍼센트를 차지하는 노년시장을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노년시장을 기존의 매스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욕망을 뭉뚱그린 덩어리로 읽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버 산업과 가열차게 시작된 다양한 산업들이 빛을 잃었던거죠. 세분화니 표적화니 위상화니 하는 마케팅의 논리도 솔직히 30년대에 등장한 이론들 아닙니까? 어느 시대나 당대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볼 관점들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 같아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기존의 마케팅 기법으론 그들을 읽어내기가 불가하다는 것이겠지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작업은 이래서 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