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크지슈토프 펜데레츠키 내한공연에 다녀와서

패션 큐레이터 2013. 12. 21. 06:33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습니다. 폴란드가 낳은 현대음악의 거장 크지슈토프 펜데레츠키가

한국에서 최초 내한공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너무나도 가슴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클래식에서 현대음악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그의 노정은 말 그대로 현대음악의 존재론, 혹은 특성

이 어디에 있는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천재입니다. 

서울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열린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을 보게된건 행운입니다.



폴란드 태생이지만 유대교와 유태문화와의 친숙한 환경 속에서 자랐던 작곡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 전쟁과 테러라는 거대한 인간의 광폭함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폴란드의 남부도시 뎅비카에서 태어난 그는 동내에 유대교 회당이 5개가 

있는 탓에 유대교의 환경속에 자연스레 젖어들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많은

유태인들은 자치적으로 레지스탕스를 만들어 저항했지요. 수많은 이들이 공개처형을 당합니다. 

외삼촌 2명을 그렇게 전쟁 속에서 잃습니다. 작곡가에게 전쟁과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들이었지요. 이후 음악공부를 시작한 작곡가는 음악에 대한 기존의 

사유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음과 소음 사이에서 음향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빛의 굴절처럼 다양한 면모를 갖고 다가오는 

음향의 내적인 다른 세계에 천착하게 됩니다. 



오늘날 폴란드가 낳은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그가 음향주의의 선구자로서 

당대의 모더니즘 음악에 남긴 반향은 컸습니다. 당시 고전주의 음악의 규범에 갖혀

숨이 막히던 청년세대에게 그의 음악은 슈톡하우젠이나 피에르 불레즈와 같은 현대음악가

들과 더불어 해방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고전과 현대가 싸우는 것은 사실 음악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발레에도 고전발레와 현대발레가 있는 건, 기법상의 문제를 넘어서 오랜 관습 속에서 자연

스레 굳어버린 사유의 결이 인간의 삶을 의외로 제한하고 힘겹게 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전통을 사유하고 부수고, 재창조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질 않기 때문이죠



오늘 그가 지휘로 들었던 <예루살렘의 7개의 문>은 3천년을 맞이한 신의 도시 

예루살렘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입니다. 시립합창단과 5명의 솔리스트가 가세해 거룩하고

강력한, 그러나 이전의 고전주의 오라토리오에서 느낄 수 있는 절제와 균형,질서와 같은 기존의 

감정을 넘어, 음악을 구성하는 음 자체의 본질, 그것들이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토해해는 교성을 들었

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공연은 저에겐 음반으로만 들었던 그의 음악을, 그의 표정과, 움직임, 무엇보다 음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그의 호흡에 따라, 함께 산책할 수 있었던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공연에 와주신 폴란드

대사님과 공연을 함께 본 지인들의 모습을 담습니다. 구미에서 지역예술운동을 위해 열심히 오케스트라를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도호기 단장님, 예술가들을 위해 항상 좋은 후원자가 되어주시는 파버 카스텔

의 이봉기 대표님, 그리고 건축가이자 저술가이신 정태남 선생님이 이번 공연에 함께 했습니다.



제겐 유독 시니어층의 분들이 친구로 포진합니다. 제 운명인건지 이상하게 저는 

동갑내기 친구들에겐 그다지 인기가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저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같은 고향이라고, 같은 군번이라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옮아매는 

인간관계의 방식에서 항상 자유로우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미 이 시대는 취미와 성향, 정체성의 빛깔

에 따라 사람들의 모임이 이뤄지는 시대죠. 하긴 요즘도 패션계 올드 보이분들 보니 경기고등학교 이야기 하는 

분들도 있긴 하던데요. 저는 이런 식의 관계들도 이제 그 세대의 마지막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파버카스텔의 이봉기 대표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연세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늙지않는 생각의 

체계, 행동의 방식을 가진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이만 젊었지 정신이 늙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저에게 조언도 잘해주셔서 항상 따르고 있습니다. 덕분에

멋진 공연도 보고, 나눔의 시간도 갖습니다. 겨울이 따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