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피아노 리사이틀-건반 위의 철인을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4. 2. 25. 02:51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의 피아노 연주에 다녀왔습니다. 일요일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린 그녀의 연주는 한 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오랜만에 정신과 몸이 집중한 상태로 음 하나 하나를 누르는 상황과 느낌을 몸으로 안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1985년생 모스크바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슈베르트와 리스트, 쇼핑의 곡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청중들을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슈베르트의 세개의 피아노 조곡 D.946에서는 명상적인 2악장의 연주를 들으며 겨울의 호숫가를 연상했습니다. 음이 환기시키는 정신의 풍경은 적어도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지요.

 

두번째로 이어진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는 리스트가 단테의 연옥편을 읽으며 느낀 것들을 표현한 곡인데요.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들으며 제겐 명쾌하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저는 단테의 신곡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테에 대한 인문학적인 탐색을 해보려고 관련된 서적들을 사놓고선 산적해있는 글쓰기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고전은 그런거 같습니다. 항상 마음의 숙제로 남는것, 그러나 언젠가는......이라는 시간의 지연 속에서 긴장감과 설렘을 만드는 것. 물론 제 자신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겠지만요.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의 연주는 속도감과 힘을 넘어, 지적통찰에 근거해 철저하게 선율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검정색 수트와 바지차림의 연주가는 견고하고 단아하게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하나하나를, 작은 호흡에서, 거친 호흡으로, 다시 유장한 호흡으로 돌아와 자신이 넘어가는 산의 실루엣들을 보여줍니다. 음악의 역사는 음악의 힘과 유혹에 대한 증언일 것입니다. 물론 음악도 누군가의 손을 통해, 또 다른 연주자에게 혼이 넘어가는 것이니, 여기엔 늙고 낡은 정신의 껍질들이 기록되기도 하죠.

 

작품의 성격과 소리, 기교, 전제, 구조 등 각각의 정보를 읽고 해석으로 몸과 건반이 하나로 묶여 토해내는 소리는, 그래서 그 자체로 연속적 사고의 체계가 됩니다. 연주를 들을 때 마냥 몸에 음을 맡기는 것 만으로는 안되는 이유겠지요. 그나저나,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정말 젊은 예비 연주자들의 우상이라도 되는 거 같습니다. 끝나고 나서 너무 긴 줄이 서 있어서 연주자 얼굴을 한번이라도볼 생각은 포기하고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