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세익스피어 인 클래식-문학과 함께 듣는 클래식

패션 큐레이터 2013. 9. 2. 12:33

 


지난 토요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 다녀왔습니다. 세익스피어 인 클래식이란 프로그램을 봤는데, 꽤나 인상깊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 클래식이 대중을 포섭하기 위해 틀을 깨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지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문학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크로스오버 공연을 기획하고 보여준 것입니다.


테너 김재형씨와 피아니스트 윤홍천씨의 연주로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십이야,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요 부분들을 해설들과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 17번 작품 31은 세익스피어의 말년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해설과 함께 들으니 그 의미와 연주의 진폭이 어렵지 않게 읽혀져서 좋았습니다. 이런 시도가 대중들에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클래식을 소화할 역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클래식이라 포장된 유럽의 고전 음악을 이해할 계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이제서야 나오고 있으니까요.



이날 변리사인 김문경씨의 해설은 흥미로왔습니다. 해박한 교양과 능숙한 피아노 솜씨로, 클래식 음악이 원형이 된 팝 음악의 명곡까지 잡아내 설명해내는 모습은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단 세익스피어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옷에 대한 설명을 하시던데, 설명하는 부분이 다소 미진한 모습도 있었지만, 그건 제가 해야 할 몫인거 같고요. 김문경씨의 해석 덕분에, 스페인 출신의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소녀와 나이팅게일>이란 곡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아노로 연주되는 밤의 새 나이팅게일의 울음이,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타까운 사랑을 잘 말해주는 듯 했죠. 


세익스피어의 <십이야>는 남장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쉬즈 더 맨>, 인기몰이했던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등에서 여전히 세익스피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저로서는 남장여인의 패션, 흔히 크로스 드레싱이란 주제로 꽤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생각했었던 작품이라, 제겐 음악이 더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던게 사실입니다. 



8월의 마지막 밤, 저녁이 되자 예술의 전당 분수대로 사람들이 하나씩 모입니다. 대학시절부터 거의 매일 다니다시피 한 공간이지만, 여전히 정겹습니다. 대학시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때, 그저 이곳의 도서관에 가서 실황공연대신, 녹화된 비디오를 실컷 봤었습니다. 이때 알게된 아티스트들이 아마 인생을 끌어오는데 함께 해준 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피나 바우쉬로 작은 소논문을 쓰던 1996년 겨울도 이곳에서 거의 보내곤 했네요. 저녁이 되니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가 서늘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가을이란 시간이 너무나 짧게 오가는 통에, 그 순간을 몸으로 만끽하기가 쉽지 않네요. 이럴수록 더 많이 나가서 느끼고 즐겨야겠습니다. 



파버 카스텔 코리아의 이봉기 대표님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반원익 상임고문님도 함께 했습니다. 두분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이 땅의 많은 기업인들의 기존의 관행, 혹은 경영자로서의 살아왔던 방식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과 감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봉기 대표님의 경우엔, 전시와 공연을 위해 언제든 지방까지 내려가시고 지방의 작은 오케스트라단도 소리없이 후원하고 아껴주시는 모습이 놀라왔습니다. 이 대표님을 뵈면 뵐수록, 이 땅의 멋진 시니어 경영자를 보게 되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흡족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자주 모여 공연을 보는 친구들과 함께 차 한잔 하러 갔습니다. 프랑스 친구인 세바츠찬과 오늘 공연에 새롭게 합류한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전현숙 팀장님, 공연 후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각자가 얻은 공연의 의미와 느낌이 달라 서로의 목소리를 통해 그날의 경험을 정리할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세바스천은 저와 영화와 공연, 미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취향이 비슷해서 선정하는 아티스트들이 겹치고요. 그렇다보니 항상 이야기하는게 더 즐겁습니다. 


어찌보면 공연을 핑계로, 사람이 그리운 제가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우리가 세익스피어를 읽는 것도, 그의 문사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생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재확인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죠. 그것이 정녕 고전이 갖는 강력한 힘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가을엔 자주 만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