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책 읽기의 황홀

기네스 펠트로의 자연주의 식탁-그녀의 레시피를 배우다

패션 큐레이터 2013. 7. 3. 09:00

 


배우, 기네스 펠트로를 생각함


저는 배우 기네스 펠트로를 좋아합니다. 저와 동갑내기인 그녀에게 빠져든 건 아주 오래전 영화 <엠마>에서였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문학을 좋아하는 제겐 그녀의 영화들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보았죠. 1998년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그녀가 보여준 호연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세계 최고의 수트를 입은 백만장자 아이언맨의 상대역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요. 


중요한 건, 그녀가 연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캐릭터에 대해 과하게 살을 붙이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같은 해 영화 <슬라이딩 도어스>에서 보여주었던 청순함은 이제 찾기 어렵지만 배우는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이란 법칙을 그녀는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좋아요.



녀가 쓴 아빠의 딸(My Father's Daughter)이 번역되어 나왔더라구요. 냉큼 집어들었습니다. 그녀의 요리책을 원서로 사서 이미 들고 있었거든요. 이 책이 나올거라 생각못했었는데 놀라왔습니다. 요리책을 쓰는 연예인들은 꽤 됩니다. 한국도 이런 분들 많지요. 이 책은 연출가이자 극작가, 영화 제작자였던 그녀의 아버지 브루스 펠트로를 생각하며 쓴 책입니다. 최고의 식도락가였던 아버지 덕에 어린시절부터 먹는 것에 대한 감각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배운 듯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식도암에 걸린 후, 그녀는 매크로 바이오틱에 눈을 돌립니다.



매크로바이오틱이란 '오래'란 뜻의 매크로와 '생명의'란 뜻의 바이오틱이 합쳐진 말로 장수식 또는 자연식 식이요법을 말합니다. 동양의 자연사상과 음양 원리에 뿌리를 두고, 가까운 지역에서 수확한 로컬 푸드, 육식 및 인공감미료 자제, 현미나 통밀 등 유기농 곡류와 채식을 추구하는 식이요법입니다. 이후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매크로바이오틱의 신봉자가 되죠. 이 아빠의 딸이란 요리책은 바로 그녀의 식이요법에 따른 각종 요리법들이 요리가 연기 다음으로 좋다는 그녀의 달콤한 문체로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었습니다. 


저도 연기와 패션, 그리고 요리를 좋아하니 당연히 이 책을 사서 봤죠. 참 깔끔하게 디자인을 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요리 종류에 따라 아주 예쁜 아이콘들을 배치해서 달아놓았다는 점입니다.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요리, 30분 내외로 조리할 수 있는 요리, 채식주의자를 위한 요리 엄격한 채식인을 위한 요리, 냄비 하나로 뚝딱 끝내는 요리 등등.



저는 그녀가 자신을 스스로 아마추어 요리사라고 소개하지만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 하나만큼은 정말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장 살아야 하는 문제에 부딛치게 되니 그렇죠. 한국사회나 외국 모두, 요리 블로거들은 인기가 많죠. 조회수도 높구요. 서로 잘나간다 하면서 한때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고, 그 중에는 공동구매를 한다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착복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네스펠트로의 글을 읽으며 그녀가 프로라고 생각하는 건, 자신이 소개하는 요리에 대해 정확하게 레퍼런스를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크로 바이오틱을 배우는 과정,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 어떤 영감을 얻고 어떤 훈련을 받았고, 누구를 만나 사사를 받았는가까지 밝힙니다. 왜 내용에 대해 감탄하는 줄 아세요? 우리 나라의 상당히 많은 저자들이 자기의 지식체계나 영감이 그저 오로지 자기 몫인 양 자랑하고 다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글 내용의 정직함을 떠나, 한 인간이 경험하고 익힌 것들의 역사를 정리해주는 것,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아서 저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 나라같으면 다 자신이 개발하고 만들었고, 어쩌고....이러죠. 정말 그런지 의심가는 내용이 한둘이 아니지만.


가령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기네스 펠트로의 요리 책 서술방식은 하나같이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아이비 레스토랑에서 먹은 유명한 채소 그릴 샐러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에요. 혹은 "1987년 이탈리아 출신의, 지금은 뉴욕에서 어떤 가게를 하는 쉐프가 쓴 어떤 책에서 본" 이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는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의 영감에 대해, 자신이 얻게 된 방식과 그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 말이에요. 이 나라의 요리 블로거라면, 꼭 누구라고 꼭 집어서 말할 필요도 없죠. 하나같이 다 자기가 만들었고, 자기가 개발했고, 자기가 요리의 주인이라고 써대고 있는 이들을 보면요.



기네스 펠트로의 너무 예쁜 글을 옮겨 적어봅니다. 칠면조 볼로네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전 아줌마는 제 평생 가장 즐겨먹는 칠면조 소시지와 미트볼로 만든 파스타를 가르쳐준 가정식 요리의 달인이랍니다. 수전 아줌마는 이 파스타를 이탈리아 분이셨던 시 할머니에게서 배웠고 레시피는 집단의 극비사항이에요. 수전아줌마의 레시피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제 방법대로 하면 아줌마의 요리와 비슷한 맛이 나요" 우리는 글을 쓸 때, 자칭 전문가라는 것이 내가 독단적으로 모든 걸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힘을 실어 준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니죠. 내가 배워왔던 과정, 내게 가르침을 준 사람들, 만남, 그를 통해 성장해온 몫이 더 중요한거 아닐까 싶습니다. 자칭 전문가가 쓴 책인데, 에디터가 뺐는지 참고문헌 완전 무시하거나, 혹은 중요 문헌만 기재하는 그런 책들도 자주 봤습니다. 아주 나쁜 관행이죠. 이런 관행들이 고쳐져서 책을 만들 때 함께 했고 수고한 이들에 대한 Acknowledgement 문화가 책을 만드는 과정에 깔끔하게 녹아내렸으면 합니다. 이외에도, 전시를 비롯한 문화생산 결과물에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마음에 들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