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 리뷰-사랑이 맛있어지는 시간

패션 큐레이터 2013. 6. 3. 00:20


혜화동에 나갔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을 보러가기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 감독인 리처드 링클레이터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자기 성찰적이고, 시대의 한 단면들을 나름의 시선을 가지고 꽤나 집요하게 재단하는

매력이 있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길 위에서 서 있고, 여행 중이다. 1991년 그의 생의

두번째 장편 극영화였던 슬래커(Slacker)는 무기력하고 목적성없이 거리를 떠도는 한 청년의 하루를 

보여준다. 그의 영화가 한국에서 본격적인 팬덤을 갖게 된 건 1995년 <비포 선 라이즈>때문이다. 이 영화 때문에

오스트리아 빈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하루의 로맨스를 즐기는 법이란 숙제가 생길 정도였다고. 하긴 

나만 해도 3년전 빈에서 머물던 40일간, 영화 속 놀이동산에 가서 횡하니 걸었으니 말 다했다.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 세월이 흘러 영화 속 주인공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 전처 사이에 있던 큰 아들 문제로 머리가 아픈 일상의 아빠가 된다.



영화에 대해선 그리 주절주절 하고 싶진 않다. 시리즈물로 지금껏 비포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생각하고 봤다. 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 어찌보면 하루를 장식하는 태양의

움직임이겠지만, 이 하루가 인간의 온 생을 담는 그릇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영화의 시작일 것이다. 

첫 만남, 설레임, 떨림, 뭐 이런 호르몬 작용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촉매들의 약빨이 떨어질 때

비포 선라이즈의 멋진 남자도, 정작 사랑하는 여자와의 섹스는 기계적이 되어갈 때

옆지기보단, 아이들과의 치닥거리와 그들을 양육하는 문제와 자신의 꿈이 

자꾸 엇갈리고 비대칭을 향할 때, 오히려 이때 사랑에 대한 진정한

정의가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오늘 본 영화 미드나잇은.



영화를 보면서 왜 자꾸 눈물이 나던지.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나이여서일까

대화 속 묻어나는 애증, 피곤함, 좌절된 꿈의 상처, 정서적인 부대낌의 무늬는 참 비슷

하다. 그럼에도 남자 주인공이 '중년이 된다는 건 12살 때 보다 조금 힘들뿐이라고' 란 대사를 

듣자마다 울컥해버렸다. 생의 과제들은 여전히 즐비하고, 풀리지 않은 채로 방치된 것들이 많기에 그렇다. 

그래도 좋았다. 생을 온 하루에 비유할  수 있다면 난 여전히 미드나잇 보단 한낮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시간

에도 결국 밤은 찾아올 것이다. 지는 해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들이 Still There 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해가 지는 것은, 곧 자신이 보내온 삶의 한 조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잃고 싶지 않은게 많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봤다. 영화는 대사로 가득차있다. 스크립트를 쓸 때, 두 배우가 

함께 참여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실제 나이대의 배우가 보여주는 경험의 몫과 

생각의 방식, 풀어가는 해법이 대사로 넉넉하게 녹아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좋았다. 풀어간다는 것은 지금껏 변해가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테니. 배나온 에단호크가 싫다고 말하는 여자분들의 댓글도 봤지만, 그건

아니올시다다. 누구보다 영화 속 인물에 몰입도를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연기는 그 자체로 볼 

거리다. 수많은 협상과 대화, 끊어지는 걸 이어가는 사랑의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현실의

사랑이 갖고 있는, 결코 진부하지않은 진실을 가지고. 많은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적어도

지금 사랑에 빠져있는 이들, 혹은 꽤 긴 시간 사랑을 지속하는 이들까지, 그리고 데먼데먼

해진 오랜 만남의 연인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환상이 깨어진 이후, 서로에게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무엇일까? 적어도 영화는 내게 그런 생각의 물꼬를 튼다. 



영화보고 밥먹고 들렀던 카페. 이 카페 앞 극장에서 작년 연극<서정가>를 

제작해서 올렸다. 그때 언론매체나 주요 손님들이 오시면 함께 갔던 카페. 사흘. 이 

카페의 부제가 참 좋다. 커피가 맛있어지는 시간. 로스팅 후 3일이 지나야 향이 우러난단다. 

편하게 코스타리카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온통 오늘 본 영화 <비포 미드나잇> 이야기. 

커피가 숙성하는데 걸리는 시간 3일. 연애와 결혼을 통해 사랑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간 3년, 소개팅을 

하고 고스톱을 결정하는 미팅의 평균횟수 3회. 못다한 밀린 이야기를 푼다고 할때 쓰는 수사 

'사흘 밤낮을 다 써도' 이렇게 우리에겐 3이란 숫자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다가온다. 

사랑도 그럴것이고. 영화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만큼 쉽지 않아서겠지. 



사랑도 커피처럼 로스팅을 한 후 삼일이 지날 때, 가장 진한 향과 맛이 나듯, 맛있어지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건 언제일까? 그걸 계산해내는, 아니 통계적으로 추론해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사랑이 맛있어지는 시간은 장기지속과 순간의 환희, 믿음의 중복되며 만들어내는

것일 거란 생각을 해본다. 석유시추공에서 영화감독이 된 남자, 링클레이터,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도 

홀로 떨어진 시추공사장에서 책과 영화를 보다 그렇게 되었다던데, 사랑도 결국은 텍스트로

어느 정도는 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후 치열하게 찾아야 한다는 뜻일까? 머리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