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나의 PS 파트너-현실의 섹스는 항상 밀려있다

패션 큐레이터 2013. 2. 19. 06:00

 


영화를 보는 것, 밀린 섹스의 추억


이번 주말엔 밀린 영화들을 보고 리뷰를 썼다. 다양한 공연들을 봤다. 음악회 2번, 대형 미술전시회 3번, 이외에도 작은 소품 연극을 소화하는 꽤나 부산한 일정이었다. 너무 패션 이야기만 쓰다보니, 다양한 문화영역에 대한 언어를 상실해간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패션 자체에 대한 생각과 사유를 푸는 것도 좋지만, 뫼비우스의 띠 같이 순환하는 생각의 외연, 외부 속으로 나가볼 때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패션 이외의 다른 영역을 탐색하고 그 언어를 다시 읽고, 내 안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주요 영화들의 리뷰를 한참을 미뤘다가 쓰는 일은, 마치 파트너와의 밀린 섹스를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의 PS 파트너, 다소 진부하지만 나름대로 섹시코드를 가미한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지키려고 애썼다. 물론 애를 너무 썼던 탓일까? 섹시한 신음 위에서 서야 할 그것(?)이 서지 못하고 죽어버린 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국사회 내부의 성적 담론을 솔직하게 드러내려는 꽤나 순수한 노력을 한다. 최근 세번째 단행본을 쓰면서, 상당 수 섹스리스 커플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섹스리스를 만드는 사회, 그 속에서의 우리들의 성도 발기력을 지속하지 못하고 더욱 약해져간다. 정신적인 이유든, 신체적인 이유든, 두 사람의 강력한 성적 유인체계가 무너져버린 이후의 세계는 의외로 황폐하다. 



영화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점점 망가져간 현승과 멋진 외모를 가졌음에도 남자 친구의 애정을 목말라하며 초라해져가는 여자 윤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우연히 걸려온 폰 섹스 전화 한번에 그들은 소통의 기회를 갖게 되고, 필연을 가장한 우연을 통해 서로의 맘을 터놓게 된다. 지성과 김아중이란 배우 외에,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한다. 안타깝게 딱히 눈에 들어오는 배우는 없다. 석운 역의 김성오의 연기를 놓고 칭찬하는 이들도 있던데, 나로서는 별로였다. 


언제부터인가 조연 역할을 할 때 항상 영화 속 비슷한 톤의 조연들이 판을 친다. 송강호의 넘버 3에서 보여준 연기방식, 여기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비스무레한 연기들이 판을 친다. 송강호의 연기는 코믹하되 절제된 양상을 갖지만, 이후 그의 연기를 노모스로 받아들인 다른 조연들의 연기는 감정의 과잉과 슬랩스틱 코미디류의 몸짓만 재생산할 뿐, 눈에 들어오는 절제감이 없다. 



란제리를 디자인하는 여자, 남자친구와 회사에서 만나 잘나갈 수 있는 기회도 스스로 버리고 결혼에 목매다는 윤정. 바람피는 남자친구의 모습도 속앓이를 하며 넘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왔다. 실제로 섹스리스 커플들 중엔 강력한 의무감에 상대방의 외도에 눈을 감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랑이란 공식을 누군가의 대체에 의해 채워가는 것이란 생각을 '통화'를 통해 서로에게 건낸다. 영화 속 폰 섹스의 형태를 빌린 그들의 성은, 모든게 서로에게 노출되어 있는 세계에서 여전히 내밀한 측면을 유지해야 하는 섹스의 현상학을 조금씩은 보여준다. 자칭 개방적이란 단어에 섞인 이중성을 꽤나 많이 봤다. 



난 살아가면서 상당히 역겹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성에 대해 보수적이다. 물론 다른 영역에선 개방적이다'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은 만나보면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말해야 하는, 혹은 말할 수 밖에 없는 성의 개방이란, 혼교가 아닌 소통의 개방이다. 서로의 욕망에 대한 충실한 이해이고 배려가 되어야 한다. 이걸 혼동하는 얼뜨기들이 꽤나 많다. 세상엔. 이 영화의 작은 미덕은 바로 그 개방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짚어주는 데 있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된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에 눈뜬다는 뜻이고, 타인의 욕망을 이해하려는 출발점에 적극적으로 서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흔들린다. 사랑만큼 그 자체가 견고하기 보다 언제든 외부의 위협과 변화에 노출되는 순간 반대영역으로 쏠리기 쉬운 감정도 없다. 영화 속 각 커플들은 한번씩의 헤어짐과 만남을 겪는다. 란제리 디자이너 답게 '오늘 무슨 팬티 입었어?'란 질문에 대한 답변도 나로서는 별 새로울게 없었다. 이 대사는 예전 나같은 70년대 산 아저씨들의 우상이었던, 소피 마르소의 <라붐 2>에서 만화가인 엄마가 일에 지친 아빠에게 사랑을 확인하며 매일 묻는 질문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김아중의 매력은 예전 <미녀는 괴로워>의 상당히 못 미친다. 무엇보다 화나는 건 더욱 섹시하고 발랄할 수 있었던 화면들을 다소 무겁게 비벼버린 것이다. 한국은 무언가를 말하는 것, 혹은 성적인 것을 드러내는 일에 도덕적 담론을 함께 삽입하려는 우를 자주 범한다. 조금은 더 가벼웠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하지 않았어도, 훨씬 더 재미있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 싶다. 그럼에도 그냥 가볍게, 그러나 가볍지 않은 우리 안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나의 PS 파트너>. 업그레이드 된 섹시 코미디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