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촌마게 푸딩-푸딩처럼 달콤한 멘토가 되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12. 6. 21. 06:00

 

 

 

푸딩같은 추억을 위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단 걸 즐긴다. 글 쓰는 일에 상당시간을 매진하게 되면서 생겨난 정신의 습속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양한 스위트를 찾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어먹는 주전부리가 바로 푸딩이다. 기본적으로 우유와 기반으로 한 디저트이기에, 유제품을 좋아하는 내 성향에 가장 잘 맞다. 달콤하고 싱싱한 커스터드 크림을 빵과 쿠키에 발라먹으면 하루의 피로가 다 가신다. 자그마한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Botellius가 프랑스로 건너가 Boudin이 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푸딩으로 진화했다. 일상을 살고,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매출과 실적 때문에 고위층에 불려가 혼이 난 오늘 같은 날엔, 부드럽게 혀끝을 감싸주는 푸딩이 제격이다. 그저 디저트로서의 역할이 아닌, 상처받은 날 텁텁한 입속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지켜주는 사무라이 무사같다.

 

 

오늘 소개할 영화 <촌마게 푸딩>은 바로 이런 푸딩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따스한 가족영화다. 2010년 상영된 이후로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일본 현지에선 소규모 개봉관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원래 아라키 켄의 동명소설이었는데 영화화 되었다. 한국에도 번역되었고 영화와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이번에 속편까지 나왔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요즘 인기리에 상영중인 드라마 닥터진도 타임슬립이란 논리를 통해 현대에서 조선말기 환절의 시간으로 점프하듯, 이번에는 에도시대의 사무라이가 현대로 타임슬립을 통해 도쿄 한 복판으로 떨어진다.

 

 

촌마게란 일본 성인 남자의 전통적인 헤어스타일이다. 한국식으로 굳이 표현하면 일종의 상투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속알머리는 빡빡 밀고 주변머리는 남겨 뒤로 상투를 틀어서 올린 독특한 모양이다. 점이라는 뜻의 촌과 상투라는 뜻의 마게가 결합해 머리숱이 적은 노인들이 겨우 틀어올릴 정도의 작은 상투, 점같은 상투를 한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영화 이야기는 놔두고 갑자기 당시의 헤어스타일로 이야기가 빠졌다. 하여튼 복식사를 미친 듯 좋아하는 마음의 습관은 무엇을 보건 해당하는 지식을 이용해 풀어보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

 

 

에도시대의 사무라이인 기지마 야스베는 180년전의 에도시대에서 현대로 타임슬립한다. 그는 도쿄에서 싱글맘으로, 매출관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IT 관련 회사원으로 6살난 아들 도모야와 함께 살아가는 히로코를 만난다. 갈곳 없는 그는 그녀의 집에서 머물게 되고 신세를 갚기 위해 가정부가 된다. 25살의 무사는 현대로 와서 6살 아이의 멘토가 되어준다. 처음엔 모든게 생소하다. 도모야는 회사일로 바쁜 엄마덕에 한번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다. 항상 그를 기다리는 건 전자렌지를 이용하는 간편식 뿐. 이런 일상에 사무라이는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까?

 

 

회사생활은 버겁고, 언제나 야근을 밥먹듯 하는 회사에서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던 히로코에겐 그의 존재는 고맙기만 하다. 25살 청년에게 그렇게 33살의 싱글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런 식의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솔솔한 인기를 끌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엔 하나같이 연상연하가 대세인양, 시대의 코드인데 이 드라마도 이런 방식을 차용해 따라간다. 가정부로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며 요리를 익히고 도모야가 좋아하는 푸딩을 만들어주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동네 사람들에게도 실력이 아깝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뛰어난 파티시에로 성장한다.

 

가정을 지키는 사무라이로, 도모야에겐 아빠의 부재를 대신해 예절과 남자다움의 표준을 가르친다. 식당에서 그저 마음껏 뛰어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도 '우리 아이 기죽이지 않는다'는 식의 안하무인들이 많은 세상, 그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일터. 그저 적게 낳고 애타게 키우다보니, 타자와의 관계보단 우리 아이의 자존감이 우선인 자들이 만드는 현대가 사무라이에겐 딱히 마뜩치 않을 것이다.

 

 

그는 도모야와 함께 "아빠와 함께 만드는 케익' 대회에 나가 당당하게 일등을 거둔다. 가정부에서 정식 제과점의 인기만점 파티시에로 성장한 야스베. 예전같이 도모야를 위해 챙겨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이 영화의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야스베를 일종의 대리아빠겸 가정부 정도로 생각하며 '회사에서의 자신의 꿈'만을 향해 쫒아가던 히로코는 다시 어려움에 봉착한다. 180년전 에도시대에서 온 남자에게 일을 관두고 살림을 맡아달라 할 수도 없는 일. 가뜩이나 야스베는 최하급 무사로서, 자신의 일을 받기 위해 지장보살에게 기도하는 순간 타임슬립을 하게 된 사정. 그러니 그에게도 일과 직위는 소중하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건 일과 가정을 병립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과, 후기 산업사회의 일본 또한 이러한 어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일거다. 일부 기업 내에 탁아시설을 만들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서비스를 하긴 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고, 여성단체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실 모든 기업들이 선의로 이 모든 설비를 갖추기도 쉽진 않다. 설령 갖춘들 뭐하겠는가. 일상에서 직무자체에 소요되는 시간 자체가 길다. 특히 프로젝트 단위의 일을 하게 되는 팀 스타일의 직무에서, 단독으로 움직이기도 쉽지 않고 말이다. 직무시간을 대폭 줄이지 않고서는 '저녁을 함께하는 삶'은 여전히 버거운 것이다.

 

아빠에게 변화를 촉구한다손 변화가 일어날리 만무다. 시스템 자체가 너무 버겁다. 그러니 결국 히로코도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결국은 거의 반 방치한 상태로 두게 되는게 아니겠는가. 그걸 누군가 헌신적으로 매워준다손, 그에게도 꿈이 있을 터이니. 결국 가사는 모든 이들의 노력을 통해 조금씩 매워가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따스하면서도 한편으론 답답한 마음이 느껴진 영화 <촌마게 푸딩> 이 영화를 보며 회사에서 히로코 처럼 하루 힘들게 보낼 생각하니 스트레스부터 생긴다. 왜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달콤한 푸딩과 아이스크림, 초컬릿이 생각나는 걸까?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Stressed 를 뒤집어 보니 Desserts다. 놀랍다. 언어 속에 이미 운명이 담겨 있다니. 그래 오늘 점심은 커스터드 크림을 바른 와플과 커피다.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