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배찬효의 독특한 사진-역사를 코스프레하다

패션 큐레이터 2013. 1. 17. 06:00


오늘은 배찬효란 작가의 작품을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작가를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입니다. 영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방인의

삶과 소수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 정서의 간극과 상처,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영국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깊이 침윤되어 들어갑니다. 단순히 문화를 익히기보다

그들의 문화적 환상이 가장 잘 배어나오는 패션, 바로 의상의 문제를 들고 이를 사진으로

담기 시작하지요. 이 과정에서 서양문화가 가진 의식의 저변을 탐험합니다. 



그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를 넘어 로코코까지, 서구의 근대가 형성된

시대의 복식들을 입은 모델을 사진 속에 등장시킵니다. 작가 본인도 그 모델 중 

한명으로 분하죠. 누군가가 되어 본다는 것, 혹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뜻으로 

우리가 If I were in your shoes, 당신의 신발을 신어본다면 이란 뜻의 영어표현을 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타인의 옷과 관련된 아이템을 쓰고 입는 다는 것은 그가

처한 입장을 가장 극명하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보이는 코스프레도 사실 이러한 심리적 저변의 산물이죠.

마냥 만화 속 주인공들을 숭배하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가 배찬효의 꿈은 원래 예술보다는 저널리즘에 가까왔다고 합니다.

한국의 대학원에서 사진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실제로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저널리즘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건거납니다. 그런데 

자신이 소속된 영역과 땅을 넘어 가면, 또 다른 것들을 보고 인식하고 깨닫게 되는 계기를 만나게

되는 법이죠. 슬레이드 미술학교 석사과정에서 그는 정체성이란 단어와 치열하게 조우하고 싸우게 됩니다. 

이는 중요한 관점이죠. 어떤 것을 피사체로 포착하고 담는 행위, 그것을 렌즈를 통해 재해석하는 

과정이 사진이라면, 적어도 사진을 찍는 주체의 '정체성 Identity'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그가 사진을 통해 잡아내는

모든 사물들이 그의 생각 속에서 걸러지고 앙금으로 남은 것임을 뜻합니다.



패션 큐레이터로서, 배찬효 작가의 작업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단순히

그가 시대의 의상을 찍었다는 점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패션이야 말로 

서구의 근대를 형성한 힘이며, 인간이 제2의 환영의 몸을 만들며 성장해 온 과정을 

가장 적극적이고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물이자 기호임을 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죠.

패션은 단순하게 한 벌의 옷이 아니라, 그 시대가 인간에게 '힘을 캐어 빚어내도록' 강압하는

육체를 만드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매우 정교하여 우리는 기꺼이 따라가지만, 그 

속에서 받는 상처나, 마음의 앓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요. 옷이 인간을

입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가 역의 경우보다 더 많다는 거죠. 



제가 외국 미술 잡지의 코너에서 그를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을 빙자한 

행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7년 그는 자신의 첫 프로젝트를 발표합니다. 그는 당시 

Existing In Costume이란 제목의 연작 사진 작품들을 내놓습니다. 사진 속에서 그는 본래의 성인

남성을 벗어던지고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저 또한 유학생활을 거쳤습니다만, 여전히 서구의 백인남성이

표준적 인간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동양인 남자는 유독 이중의 상처를 얻습니다. 서구와 동양 사이에

놓여진 이분법적인 인식 때문이지요. 동양남자는 뭘해도 약해 보인다는 것, 여기에 정체모를 

편견까지 겹쳐져, 사회 내부의 성원으로 편입되기가 쉽지 않는 것. 그것은 저 또한 경험

했던 문제입니다. 그의 코스프레 작업이 예술의 단계로 승화될 수 있는 이유는 

남성/여성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인식을 비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의상들은 대부분 중세 고딕에서 

19세기 유럽복식입니다. 그들의 옷을 입음으로써, 서양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작가는 교묘할 정도로 동양적 모티브가 들어간 소품을 

배치하거나 자신의 피부색을 들어냄으로써, 동양인이란 점을 명시합니다. 



사진 속 작가가 입은 옷들은 빈티지 숍에서 구매하거나 혹은 오랜 시간을 

들여 본인이 제작해야 합니다. 이는 하위문화의 일환인 코스프레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옷을 제작한다는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기성의 가치관이 들어간 옷을 구매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작가가 사유하는 대상이 된

영국사회의 13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서구가 타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며 치유 하는 노력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뜻도 포함이 되겠지요. 

이 남자의 역사 코스프레, 여러분에겐 어떻게 다가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