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리는 <패션은 현대미술과 어떻게 만나는가>라는 제목의
포스팅은 어찌보면 해묵은 주제일수도 있고, 익숙하게 들리는 화두일 수도
있다. 그만큼 지난 2008년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저술한 이후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패션과 미술의 결합과 만남이란 소재로 많은 글을 써서 유통시켰고
이를 주제로 한 작은 시도들이 국지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지금껏 패션계와 보그와 같은 매거진들, 그리고
패션이란 테마를 전시의 요소로 받아들이고 패션전시의 영역 속에 끌어당긴
힘은 의외로 왜소하다. 말만 무성했고, 이를 풀어내는 노력들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브랜드와 아티스트 간의 협업 이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이로 인해 '리미티드 이디션'이란 단어를 유행시킨
콜라보레이션이란 용어만 꽤나 쉬크하게 등장했을 뿐이다. 이렇게
하나의 생각을 발아시키고, 예술과 패션계 두 세계를 오가며 그것의 옷을
입히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후 패션 큐레이터란 용어를 자칭 패션계에서 힙한
단어처럼 소비하기도 했지만, 기껐해야 스타일리스트들의 한담거리로 전락될까 참 두렵
기도 했다. 실제로 말끝마다 큐레이터란 용어를 써서 자신들을 포장하기만 했지
무엇하나 가시적으로 눈에 보여진게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션 큐레이터로서 다양한 방송매체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왔다.
생각을 풀어가기 위해 필요한 이들을 만나왔고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올해 5월 하순에 새로운 패션 전시에 도전을 한다. 핸드백을 소재로 하는 전시
를 선보이려고 디자이너와 규방공예의 장인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단순한 콜라보
레이션을 넘어, 우리가 전통을 패션을 통해 어떻게 풀어내는 것이 매력적인 답이 될 것인가에
대한 시도다. 전통은 그저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있던 것을 현대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많은 전통이 현재 사라진 것은, 그 전통이 전승
가능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현대에도 가치가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하반기를 목표로 현대미술과 패션을
소재로 한 규모가 큰 전시도 기획 중이다. 내겐 패션 큐레이션을 알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컨텐츠를 풀어내는 시선과 방식이다.
지금껏 보여준 전시들이 하나같이 콜라보레이션 위주의 전시여서 다소 맥빠진 것들이
많았다는 점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항상 패션 이야기를 한다면서, 제대로
패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그건 전시를 기획하는 자들이 한번도
패션에 대해 깊은 담론과 사유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현대미술작가와 패션계의 작가들을 선별하는 작업은 이래서
쉽지 않았다. 유명전시일수록 당대 이미 이름이 난 이들만을 찾기 마련
이고 이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방식과 수사는 의외로 진부할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가며, 지금껏 한국 내의 패션 전시가 보여
주지 못한 것들을 작은 예산으로 꾸려가며 펼쳐내 보는 것,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를 맡아 커미셔너를 해보기로 결심한 것은
전시를 통해 패션을 읽고 해석하는 일종의 틀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그 중에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있지만, 이탈리에서 당시 로마의 지방시로 불리며
건축적인 선과 조형감각을 옷에 도입해 인기를 끌었던 디자이너 로베르토 카푸치가 있다.
2011년 나는 그의 작품을 Art Into Fashion 전에서 보았다. 2009년 로마에서 열린 그의 또 다른 전시
<로베르토 카푸치의 직물조형전>에서 그의 놀라운 세미한수공예적 쿠튀르와 건축적 견고함
반했다. 오늘날 파리를 비롯한 이탈리아가 패션의 선두에 서게 된 것은 카푸치같은
디자이너들의 국제적인 노력도 한 몫을 한다. 그의 전시가 놀라왔던 건,
옷이란 오브제 자체의 찬연함을 드러내는 방식 때문이었다.
옷으로 세상을 본 다는 것, 혹은 패션의 얼개를 드러낸다는 것은
마냥 현대미술 작가와의 콜라보 작업이나 협업을 통해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옷이란 사물을 깊게 사유하고, 실제 그 세계의 이면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의 풍경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그 길에서 지금껏 자기가 자신의 신체를
꾸며온 역사가 소중한 시간들의 누적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패션 전시는 패션 자체 만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패션과 더불어 진화해온 기술과 감성, 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 이런
전시들은 정말 '돈'이 많이 든다. 대형 전시에 대한 예산을 타내는게 힘겨운 나라에서
이런 꿈을 꾸는 건 쉽지 않다. 다만 나 자신 또한 주어진 한계에서 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는 입장이고, 이것은 이전의 다른 전시와는 색다른
방식의 제시가 될 것이다. 두 손을 모으며 달려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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