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클러치를 보고 있다. 비잔틴 문명의 주요 모티브를 따서 컬렉션을 보여주었던 샤넬. 사람들은 샤넬을 가르켜 근대성의 상징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만큼 과거와 전통을 통해 자신의 패션을 대변해온 이도 많지 않다. 스트라빈스키와의 교류를 넘어, 그녀는 당대 러시아 발레에 푹 빠지면서 그는 다양한 발레 의상을 맡았다. 물론 미천한 출신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한 그녀가 당대 유력자들의 사회에 발을 담구기 위한 전략적인 방식이었지만 말이다. 샤넬의 클러치는 러시아의 마트로슈카 인형을 통해 그녀가 러시아 문화에 대해 느낀 바를 담아낸 것이다.
여기에 홍옥과 금세공을 투각기법으로 처리해 더욱 빛을 발한다. 러시아를 여행하던 시절, 나는 디자인 박물관 내부의 미술학교를 들른 적이 있다. 학생들은 박물관 외벽과 내벽을 그리며 댓상을 공부하고, 건물 내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 줄기차게 도안하고 그리며 저학년의 시간을 보낸다. 최근 친하게 된 지인에게서 연필과 필통, 연필깍이를 선물받았다. 물론 세계적인 명품이라 불리는 필기구이고 화구다. 오랜만에 연필을 만지는 느낌이 참 좋다. 종이 위에 드로잉이라고 하고 싶다. 인간은 그림을 통해, 내 안의 벽에 균열을 내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무엇을 그린다는 행위는 단순히 사물의 윤곽선만을 빼어놓는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원래부터 만나야 할 사물과 나의만남, 그 축복의 시간을 기억하려는 '꼬물거리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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