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이 나라의 문화행정이 건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패션 큐레이터 2012. 12. 6. 06:00

 

 

 


눈오는 날, 버스 안에서

 

3시 30분, 경기문화재단 특강이 있는 시간입니다. 점심을 후딱 먹고서 이른 출발을 한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부터 내린 눈은 점점 굵어지고 처음엔 싸리비인줄 안심하고 있었는데, 눈깜짝할 사이, 온 대지가 온통 하얀색입니다. 사무실 옆 화단에도 솜털구름같은 눈이 금방 싸였네요. 2 시간 정도면 되겠지 싶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발을 했는데요. 사당에서 7001번 버스 타고 원래대로 라면 4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2시간 가까이 가야 했습니다. 정말 많이 막히더군요. 강의 시간인 3시 30분을 훨씬 넘어, 4시 20분이 되어서야 경기문화재단에 도착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 앞의 강사님도 2시간이 늦는 바람에 제가 도착할 때쯤 강의가 막 끝나는 와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심에 또 안심을 했지요. 눈에 맞아서 얼굴을 발그레하고, 손에 입김 불어가며 강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따스한 차 한잔 마실 여유가 없었지요.

 


오늘 강의는 대부분 문화계 현장에서 일하는 중간 관리자들을 위한 강의였습니다. 추상적이고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실제적인 부분들을 다루고 싶었죠. 그래서 패션전시의 프론티어란 제목으로 패션전시의 다양한 유형들을 분류해보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화두가 되는 것들을 패션을 통해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들 경청해 주셔서 강의하는 내내 힘이 되었네요. 한국의 박물관과 전시산업은 요즘 상당히 힘이 듭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눈을 끌만한 화두도 많지 않고요. 또한 외국처럼 근사하게 풀어내기엔 그럴만한 여력이나 자본도 부족합니다. 결국은 아이디어 싸움인데요. 아이디어도 쉽게 풀어내기가 어렵죠.

 

결국 전시를 위한 펀딩(Funding)의 문제를 다뤄야 하고 이에 대한 실제적 방법론도 이야기 했습니다. 대학 교수들이 개입되는 전시들은 이런 고민이 없죠. 협회나 학회를 내세워서 문광부나 관련 부처에 도움을 받습니다. 특히 의상관련 학회분들이 하는 전시는 하나 같이 정확한 개념의 옷을 입히지 못하고 , 자기네들 스스로가 뭘 하는지 모르는 전시가 많죠. 왜 이렇게 창의력이 없는지, 없으면 제대로 베끼기라도 하던지,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전시를 후원 아래 낯 두껍게 하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문화행정이 고쳐야 할 것들

 

제가 활동하면서 이런 식의 관행을 조금씩 고치고 있습니다.  대학 교수라고 몰아주기식 행정을 하던 부분도 이제 조금씩 반성의 기미가 보이고 있죠. 노력의 결과입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의 문화재단은 특히나 재단을 이끄는 사무관과 수장이 더욱 투명한 처신을 해야 합니다. 자신과 지인 관계에 있는 업체들 끌어들여서 일감 몰아주거나, 공증되지 못한 단체나 인물에게 공적 기관의 프로젝트를 맡기는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정권교체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런 부분은 상시 감찰제를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세부적인 것들이 투명해질 때, 한 나라의 문화행정은 힘을 갖게 됩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은 대학교수들의 쓸모없고 효과없는 개입을 일정부분 막아도 상당부분 발전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강의 끝나고 부근 식당에서 연포탕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최근 기업은 그저 누구의 라인을 타고 들어온다고 납품을 하거나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식의 구태들은 많이 없어졌죠. 저부터 당장 그 예전에 바이어시절부터 누가 업체를 소개해 줄 순 있어도 강제로 이 업체와 계약을 하라거나 하는 식의 강압은 없었습니다. 바이어조직 자체가 실무진의 정점이고, 자기의 업적평가로 판단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작 공무를 담당하는 곳에서 이런 마인드가 없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에 걸쳐 투명성도 조직의 유효성도 만들어진다고 믿는 쪽입니다. 누군가가 대통령이 된다고 한번에 해결되지 않죠. 우리 안의 모순을 보고 고치는 것. 조금씩 결과물이 보이고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는 것, 그것 하나로도 저는 이 땅에서 패션을 둘러싼 관과 민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입니다. 오늘 너무 춥더군요. 내일 군산대에서 명사특강이 있는데, 걱정입니다. 저는 12월이 되면 그 달에 하는 모든 강의료를 모아 기부합니다. 이번달 강의가 적진 않네요. 사실 몸은 힘든데 더 뛰는 것입니다. 희망을 저버리는 이들이 없도록, 제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돕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