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우리시대의 멘토링과 힐링, 그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패션 큐레이터 2012. 9. 28. 23:25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추석연휴입니다. 온라인에서는 귀향길 교통속보가 실시간으로 나타나고요. 서울에 본진을 두고 살아가는 삶인지라, 추석에도 내려갈 고향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입니다. 난 자리와 든 자리, 인간이 자신의 고향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맺계된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표정과 제스쳐가 '집으로 가는 길' 그 위에 조금씩 퍼져가겠지요. 그들이 떠난 자리, 점심을 넘어가는 서울 워커힐 호텔은 적요하기까지 합니다.

 

 

 

한예종 자유예술캠프를 통해 알게 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명이 얼굴을 보러 온다고 해서 오늘 하루는 이 녀석한테 맞춰야겠다 싶었죠. 처음엔 피자힐을 갈까 했는데, 밥을 먹고 싶다는 제자 녀석에게 맞추어 명월관에서 내놓은 가을특선메뉴를 한번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가을가이세키 정식도 눈에 들어오긴 했는데요, 며칠 전 생각지 않게 송이버섯을 포식한터라, 깔끔한 한식을 먹어야지 했답니다.

 

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진 않습니다. 물론 특강 차원에서 여러 대학원의 디자인 전공자들을 위해 강의에 나선 적은 있습니다만, 사실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 하는 건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현재로선 기업체를 비롯하여 전문가 집단과 함께 협업을 하거나 구상하는 것을 주로 하다보니,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패션 큐레이션이란 과정도 영국과 미국처럼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경우도 아닌데다, 기존의 미술사 전공자들이 포진한 미술시장에서 패션이란 영역만을 특화해서 상업과 순수예술의 두 세계를 혼종해가는 논리를 만드는 이 영역이 워낙 국소적이고 작습니다. 그러나 보니 아이들을 만나기가 더더욱 어렵죠.

 

대중을 만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 부터 2년 전, 한예종에서 시작된 자유예술캠프에서였습니다. 이 또한 패션 큐레이션이란 영역보다는 패션이란 분야와 인문학의 결합이라는 주제 하에, 많은 이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목표를 두었었지요. 그때 들었던 아이들 중에는 지금도 만나서 좀 거창하긴 하지만 '멘토링'의 리스트에 오른 아이들이 있습니다. 뭐 그래봐야 같이 밥 먹으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고개나 끄덕여주는 수준이지요.

 

저를 찾아온 나래는 한양대에서 광고홍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이나 경영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경험을 쌓았고, 현재도 제가 풀어가는 모든 문제들의 기저에는 이 영역이 겹치다 보니, 아이들의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오늘 점심에는 유독 굵은 비가 내렸습니다. 어찌나 세찬 바람과 비가 내리던지, 저는 태풍이 추석 연휴에 다시 오는 줄 알았지 뭐에요. 오늘 오전부터 귀향길에 오르신 분들은 굵은 마디의 빗방울에 걱정도 하셨을 거 같더군요.

 

밥을 먹고 싶다는 나래와 함께 들어간 명월관에서 고른 메뉴는 십근채연잎돌솥밥과 한우불고기 세트입니다. 점심 특선인데요. 깔끔하게 선전하고 있는 아이템이라 그냥 골라봤어요. 연잎으로 싸서 쪄낸 각종 구근과 채, 흑미와 서리태가 섞인 영양식입니다.

 

 

음식을 시켜좋고 한컷. 매우 보이시한 매력이 있는 아이죠. 그래도 패션매거진에서 디렉터를 도와 일도 하고,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한우 불고기 사진이고요. 육질은 좋습니다. 육수에 부어 전골처럼 먹는 것이라 전채개념처럼 먹는 것이었고요

 

 

오히려 저의 미각을 사로잡은 건 바로 이 연잎밥입니다. 홍콩에 갈 때마다 호텔에서 이 연잎밥을 자주 시켜먹었습니다. 워낙 스트레스를 스스로 자초하는 성격인지, 페어에 나가서 상담을 마치고 나면 항상 몸에 화기가 돌았죠. 그걸 식혀주기 위해서 건강식인 연잎밥을 자주 먹었는데요. 이번 연잎밥도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 차려진 터라, 밥만 꼭꼭 씹어도 입에 단물이 돌았어요.

 

 

함께 나오는 꽃게 된장지게입니다. 끝맛이 깔끔합니다. 추천할 정도는 아니고요

 

 

시원한 오미자 차로 마무리를 합니다. 사실 저는 오미자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예전 대학졸업반때, 우연하게 한 장의 판화를 산 것이 계기가 되어 미술품을 사기 시작할 때, 주로 들렀던 곳이 경인미술관이었습니다. 요즘도 오미자 화채가 있긴 합니다만, 예전 마시던 딸기가 가득 담겨있던 오미자 화채를 생각하면 그 느낌이 덜합니다. 그때는 화채 한 그릇 먹고 힘을 내서 여름날에도 왕성하게 갤러리 마실을 다녔었지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비가 그쳤습니다. 여름 한철의 열기가 가신 포도 위로 쏟아지는 가을기운이 찹니다. 비에 젖은 도로의 빛깔은 한층 절제된 느낌을 토하는터라, 그 위를 터벅터벅 아이와 이야기 하며 걷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더블유 호텔의 키친에 도착해서 달콤한 스위트를 먹기로 합니다.

 

 

요즘 레스토랑에 가면 이 분의 작업이 참 많습니다. 이재효 작가님의 작품은 지난 해 뉴욕에서 한국미술을 알리기 위해 마케팅을 하면서 더욱 깊게 알게 되긴 했지만, 솔직히 소장처가 너무 많아지니, 작가적 특색이 조금씩 지워져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요즘은 왜 이렇게 몸이 단걸 원하는지, 짙은 다크 초컬릿의 브라우니와 거피빛깔의 아이스크림, 그리고 견과류들이 소담하게 담겨진 접시를 받습니다.

 

 

취업율로 수렴되는 이 땅의 효율성 지표 위에서, 대학졸업 후 자신의 꿈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대학입학율이 20퍼센트 조금 넘는 스위스의 국가 경쟁력은 5위 권 안에 들죠. 그래서 이들을 스위스 패러독스라고 말합니다. 반면 89퍼센트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대학입학율을 가진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30위권이죠. 교욱의 지표와 그 효과가 사회 전반의 경쟁력으로 연결되지 못해서입니다. 이 가운데 취업은 더 어려워지고, 스펙놀음에 아이들을 몰아세운터라, 인문학적인 기초토대를 쌓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런 경향이 강해지면 기계적 학습에 몰입되기 쉽고, 문제를 다면으로 풀어내는 융합적 사고의 아이들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죠.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니 뭐니해도, 정작 현실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그걸 가르치고 있는 제가 보는 입장은 매우 암담합니다. 그냥 교양수업인거죠. 에이포 한장 반으로 요약된, 잘난척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떠먹여주기 식 인문학입니다. 철학을 둘러싼 단행본의 성격을 보면 드러나죠. 한쪽에선 아프니까 청춘이고, 뒤로 물러서면 보인다는 식의 자칭 힐링논리가 판을 칩니다.

 

그러나 김난도의 힐링은 철저하게 SKY를 위한 힐링이었고, 혜민의 종교색 짙은 말들은 추상적인 갈무리에 그치고 맙니다. 저는 이렇게 무책임한 멘토링의 방식을 싫어합니다. 40대 초반에서 중반을 살아가는 세대는 철저하게 아이들에게 현업의 세계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세계 속을 주유하는 실증된 논리와 방법론에 기초한 길잡이가 되야죠.

 

 

너도나도 선생이고 싶은 이들은 많고, '쌤'자를 듣고 싶어하는 욕망에 가득한 이들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내어놓는 힐링이란 게 근본을 보지 못하는 대증요법인것이 저는 정말 짜증나고 화납니다. 그저 우아하고 멋진 말만 내뱉으면 멘토가 되는 것일까요? 우리시대의 길잡이, 멘토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더욱 복잡계를 닮아가는 세상의 얼개를, 조금이라도 먼저 경험한 이로서, 자신의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는 이가 아닐까 합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먼저 살아간 삶, 그 생의 누적된 무늬가 만들어내는 호칭입니다. 그 무늬는 다름아닌 경험이지요. 경험이란 라틴어원으로 봐도 위험을 먼저 겪어낸 자란 뜻이 있습니다. 구체화된 말들이 테이블 위에 오를 때가 되었습니다. 수다를 끝내고 내려오는 길, 예쁜 달이 떴네요. 이번 추석, 친지들과 함께 하는 자리, 그들의 말을 듣고 새기고 마음의 종지 위에 달보드레하게 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마음의 종지를 키워 타인을 안는 시간, 아이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이 발효시킨 마음입니다.

 

그저 행복한 추석 맞이하세요. 오가는 길 조심스레 운전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