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큐레이터가 패션계와 싸우는 이유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월간 좋은 생각에 기고를 했다.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 즐겨보는 간행물이다. 따뜻한 내용도 좋다. 예전 글을 보내고선 오랜 만에 새해 첫 호에 글을 싣고 싶어서 2013년 1월호에 기고를 했다. <좋은생각>의 모든 글에는 글의 하단에 경구나 좋은 말을 함께 배치한다. 내 글 하단에 올려진 이탈리아 작가 오그 만디노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아카바의 비밀>이란 제목의 책에서 인용한듯 보인다. "나는 빛을 사랑할 것이다. 빛이 내게 길을 보여 주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어둠도 참아낼 것이다. 어둠이 내게 별을 보여줄 테니까" 빛과 어둠의 하나의 몸을 가진 세계다. 어느 세계 속에 한없이 머물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지금은 패션을 선택해서 글을 쓰지만 또 내 열정은 다른 세계를 향해 갈지도 모른다. 취미로 패션을 택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강의를 하면서 참 행복했다. 지켜야 할 선만 지키며 살기로 한다.   패션계의 이면......따로 또 같이   최근 페이스북으로 만난 패션계 지인들과의 모임을 결성했다가 여기에서 탈퇴했다. 어찌보면 임의탈퇴인데,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어디를 가든 모임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자칭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자들이 끼리끼리의 모임을 잘 만든다. 물론 이 모임에는 패션기업의 전무란 이도 포함이었다. 처음에는 문제될게 없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이력을 늘어놓고, 자신의 인맥을 자랑했으며, 그런 영향력을 통해 패션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대의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실제 속내를 끝내 펼치지 않고 꼭꼭 숨겨두었다. 내가 발굴한 두 명의 디자이너를 자신의 회사의 프로젝트를 위해 빼가고 싶어했던 것. 이 내용을 문자로 물어보자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나도 해외영업을 하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지만, 기업에서 자칭 영업을 하고 사는 이들의 삶을 믿질 못하겠다. 그래서 탈퇴했다.   무엇보다 무지개란 회의 이름에 맞지 않게, '자신의 목소리로만' 회를 끌어갈께 뻔한 오지랍넓은 노인의 말을 믿지 못해서였다. 나는 큐레이터로서 작가들을 지키고 디자이너들을 지킨다. 그는 입으로는 대의를 말해놓고, 페북으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발굴한 탈랜트들을 가로채 는데만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회장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프로젝트, 성사여부나 과정을 지켜보니 어느것 하나 제대로 된 축이 없다. 영업을 해온 전무의 태도는 하나같이, '자기가 모든 걸 다 이끌어간다'라는 식인데, 실제로는 그 아래 이사님들의 노고도 나는 봤다. 한 마디로 모든 공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려는 '노심'의 발로다. 난 이런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똑같다. 문제는 이런 자의 곁에 붙어있는 이들일 것이다. 패션저널리스트에서 부터 시작해서 시간강사까지. 요즘은 대학이 취업률을 강조하는 탓인지, 별 듣보잡 대학 시간강사에서 교수들까지 모임에 끌어들이는 모습이 좋아 보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를 걷다   세월이 흐르며 패션계와의 정서적인 교류가 잦아졌다. 어느 패션 저널리스트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패션계가 똥밭이다, 들어가지마라'였다. 한편으론 곱씹어볼 말이긴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전제가 잘못되었다. 그녀가 본 패션계가 똥밭인 것이다. 아니 그녀 스스로 똥밭을 구르듯 활동하고 남의 말을 옮기고, 함부로 비난하고 펀딩을 위해 간 쓸개 다 내어줄 것처럼, 친한척 하며 살아온 인생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개념적 동의일 것이다. 지난 금요일 패션디자이너 협회 주관 파티에 갔다. 어디를 가도 튀는 사람, 조용한 사람, 얼굴을 내밀진 않지만 자신의 작업을 열심히 하는 사람, 작업보단 언론에 얼굴을 내미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 거다. 이건 어디나 다 똑같다. 중요한 건 그/그녀가 보여주는 작업의 퀄리티이지 도덕성은 아니다. 그런데 대체로 옷은 잘 만들지만 나서지 않는 이들은 세상에 알려지기 어렵다. 그래서 이들을 발굴하고 세상의 표면에 올려놓는 이들이 필요한 것일거다.   나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에 탈랜트를 가진 디자이너는 의외로 소수다. 그런 소수의 재능을 지켜내줄 줄 알아야 한다. 그저 입으로는 패션계의 대의와 후배들을 위해, 어쩌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회사의 이득을 위해 소수의 재능을 빼먹으려 하는 이들이 많은 곳도 이곳이기에. 글을 쓰다보면, 사회적인 영향력을 얻다보면 빛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잠재된 어둠도 함께 만난다. 어둠이 있기에 기존의 패션계가 시도하지도 않았던, 혹은 가지 않았던 길을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영역에서 활동해도 마찬가지다.빛과 어둠을 함께 껴안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 나는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좋다. 누구의 제자도 아니고,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다. 그래서 독특할 수 있고, 내 자신의 오롯한 개성을 다 실어낼 수 있어 좋다. 내년 4월쯤 멋진 가방 전시를 할 거 같다. 힘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