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인큐베이터

패션비평의 본령을 묻다-SADI 졸업발표회 후기

패션 큐레이터 2011. 11. 21. 20:32

 

 

패션의 역사, 그 방점을 찍는 인간의 땀

 

지난 주, 삼성 아트 앤 디자인 인스티튜트(SADI)의 패션 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졸업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졸업은 설레임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3년제 3학기 세계적인 디자인 스쿨을 표방하며 SADI가 95년에 돛을 내리고 다양한 실험을 시작된지도 이제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의 탄생과 국내 교육을 통해서도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나올 수 있다는 믿음,

이번 졸업작품전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SADI 학생들의 졸업발표회는 유독 다른 의상학과 관련 기관들의 방식과 조금 다른 성격을 띱니다. Fashion Critic Award Show란 형태를 띠는데요. 다시 말해 졸업전 준비과정을 저명한 기성 디자이너들을 크리틱(비평) 교수로 임명하고, 디자인 현장과 실천이란 개념을 철저하게 접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5 개의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따라, 앤디 앤 뎁의 김석원과 윤원정과 바바 패션연구소의 오정화, Bon의 이정재, 디자이너 임선옥, 헥사 바이 구호의 정구호 선생님이 크리틱 교수로 참여, 학생들과 치열한 1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950년대의 올즈모빌 자동차의 디자인에서 50년대의 새로운 모더니티 양식이 빚어내는 화려함, 바로 글램이란 개념을 옷으로 형상화한 Glam Ride, 화가 마르크 샤갈의 그림 속 몽환적인 세계와 색채를 바탕으로 한 Marc Chagall, 성장과정에서 한번쯤 겪어야 하는 영혼의 성장통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준 Painful Memories and Healing 테마, 네번째는 디자이너 임선옥과 학생들이 함께 작업한 Emptiness에선 디자인의 기초적인 원리, 가감의 법칙을 선과 형태, 재료상의 가감을 넘어 물질적 존재인 인간의 외피로서, 옷에 적용해 보는 실험을 감행합니다. 마지막으로 정구호 디자이너와는 3가지 이상의 오래된 옷을 재활용하여 드레이핑을 통해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한 이미지를 재조명 했습니다.

 

 

각각의 테마들이 마음에 와 닿더군요. 1950년대 기업의 조직화 현상과 기계화, 유연적 포디즘이 미국사회의 영혼의 골격을 가지런히 하던 시절, 오늘날 우리가 Glamour란 단어의 원어인 Glam이 시작됩니다. 이 북유럽의 근간을 둔 언어에는 인간사회의 두 가치 측면, 빛과 어둠을 동시에 담아내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미술사에서 보는 회화작품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이중적인 '표현하기 힘든' 혹은 '말해지지 않았던' 것들 속에 담긴 슬픔을 외연적인 화려한과 찬연한 매력으로 채우던 시절입니다.

 

 

Painful Memories and Healing 테마가 개인적으로는 많이 와닿았습니다. 뭐랄까 신체, 영혼을 연결하는 고리, 혹은 담지자로서의 옷의 심리적 기능에 천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인지 유독 니트 작업도 눈에 들어오고, 디자이너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하며 이를 기록으로 응고시킨 작품도 보였습니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고통스런 기억을 대면하고, 기억을 응축시켜 담아내는 옷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의 역사를 써내려가려는 노력이 보인 작품도 눈에 띱니다.

 

현대철학은 결국 개념을 바루는 작업입니다. 개념이란 세상이란 복잡한 무대를 이해하게 해주는 일종의 시각적 아이콘인 셈인데, 디자이너들은 기술적인 장인의식과 더불어 이 아이콘들을 익혀야 할 필요가 있지요. 디자이너에게 철학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철학이란 디자이너로 일부로서 편입되어 살아가는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창이기 때문이며, 다른 일반인과 달리 그들은 자신의 망막속에 걸러진 개념을 옷이란 3차원의 실제로 재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회화나 다른 조형과 달리 의상은 3자, 바로 인간의 몸에 입혀짐으로써(이를 통해선 판매란 행위가 반드시 개입되어야 하지만) 최종적인 의미가 완성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실 디자이너들의 최고의 교육은 자신의 작품을 크리틱 하는 법을 배우고, 그 시선을 타인의 작품으로 돌려 작가 주체 조차도 간과할 수 있었던 의미들을 함께 복원해 보는 것입니다. 비평의 본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평의 본령은 결국 자신과 관계를 맺는 모든 사물들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아담에게 신의 정원에 난 산물들에게 이름을 짓고 이를 관리하도록 하는 책무를 주는 부분이 나옵니다. 목소리가 없어 발화할 수 없는 사물을 위해,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빚은 아담을 통해 대신 발화하도록 시킵니다. 사물에 내재된 신의 응축된 말씀을 보고 인간의 목소리로 통어하는 것. 이것이 피조물의 진정한 의무이지요.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사물과 인간의 관계가 흐트러질 때로 흐트러져있고, 사물과 인간이 껍질을 벗고 대화할 수 있는 신의 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닌, 인간이 일방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질된 지 오래입니다.

 

 

 옷을 만드는 행위도, 결국 신체를 매개로 한 인간의 영혼의 외피를 만드는 일입니다. 외피는 제2의 피부로서 기능하며 옷을 입은 인간을 보호하거나,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혹은 여린 감수성을 안아줍니다. 한 벌의 옷에 담긴 기억들이 인간의 기억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기에, 인간이 입는 순간부터 한 벌의 옷은 관계맺기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비평은 항상 위기의 시대에 빛을 발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을 둘러싼 패션 산업이 위기일 수록, 풍요 속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험을 해야 하는 시기일 수록 비평은 힘을 발해야 합니다.

 

독일어로 비평을 뜻하는 kritik는 위기 Krise와 떨어질 수 없는 언어적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패션비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 크리틱을 기반으로 디자인 프로세스 전반을 훓고 작업할 수 있었던 SADI 학생들의 1년 간의 준비기간은 앞으로, 그들의 작업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디자인 학교에 비해, 이 비평기능을 수업을 통해 충실히 복원하고 살리려는 SADI의 교육방침이 저로서는 참 마음에 들더군요.

 

 

 디자이너 임선옥 선생님과 함께 한 크리틱 수업도 매우 궁금합니다. 정말 가능하다면 옵저버로서, 학생들의 수업을 1년 간 쭉 살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디자이너에게 비어있음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텅빔'의 상태는 단순히 채우지 않음의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침묵은 단순히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표현할 수 없음이 아니라, 주체의 '의사적 거부행위'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디자이너에게 Emptiness는 상당히 심각한 고민일 것입니다. 모두 다 채우려고 안달하는 사회, 치장하고 장식하고, 덧달아 빛나려는 욕망에 눌린 사회에서, 뭔가를 덜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덜어낸다는 것은 최적의 형태와 미를 위해 때로는 '내려 놓아야 할 디자이너의 욕망'을 말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생들의 작품을 보는 날은 생각이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