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인큐베이터

패션 블라섬 인 서울-국제패션 콘테스트 심사 후기

패션 큐레이터 2012. 10. 18. 06:00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다녀왔습니다. 한국패션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울패션 신진인력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국제 패션 컨테스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사실 심사위원을 할 내적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학생들의 작업을 

간절히 보고 싶었고, 인큐베이터로서 작은 역할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본 심사, 즉 디자이너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분주하게 마네킨에

옷 작업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이번 컨테스트의 심사에 참여하신 분은

디자이너 곽현주 선생님, 코스모폴리탄지의 김현주 편집장님, 패션비즈의 문명선 부장님

디자이너 카알 이석태 선생님, 그리고 심사위원장은 카루소 장광효 디자이너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패션 블로섬 인 서울(Fashion Blossom In Seoul)은 차세대 패션 전문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발표의 장을 제공하고 대학간 공동 패션쇼를 주최하여 상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물론 인턴십 프로그램도 여기에는 포함되어 있죠.



1차 포트폴리오 심사를 통과한 후보들 중에서 실제 작품 제작 2벌과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시간입니다. 스타일화와 함께 인스퍼레이션 보드도 함께

보면서, 학생들이 본 콘테스트의 테마인 <Seoul Now>를 풀어내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번

테마는 지속가능성이란 단어를 화두로 냈습니다. 서울이란 국제도시, 이제 점차 국경의 흔적이 지워지고

세계관광의 축으로 부상하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문화적 지형도를 그리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순간으로서의 현재성, 이 현재를 미래와 연결시켜 의미를 산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옷을 통해 풀어내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온 학생도 있었고요. 리사 잉겔하트란 이름의 학생이었는데

현재 에스모드 서울을 다니고 있다고 하네요. 졸업 후 연세어학당에 들어가서 한국어와

문화를 더욱 깊게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이런 외국인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의 패션이 더 이상 우리만의 잔치가 아니라

해외의 재원들이 함께 출연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장치가 되어야겠죠.



지방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 부지런히 달려온 이들도 있었고요.

다들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부산합니다. 저는 사실 이번이 심사란 행위를 

해본 첫번째 경험입니다. 그렇다보니 전문으로 패션의 영역에서 일을 해오셨던 분들

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방식에 대해서도 보고 생각해봤습니다. 확실히 디자이너 분들은 작품의

소재와 실루엣, 내적인 디테일들을 명확하게 짚고, 시장성과 트랜드와 연결지어서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저는 작가다보니, 언어의 문제에 천착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다른 건 아니고, 학생들이 적어도 

실물로서의 옷을, 언어로 표현할 때, 자신이 주어진 테마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그것을 푸는 핵심어

그 단어들 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이뤄내서 언어로 만든 옷을 재현하고 있는지를 보고 싶었고요. 

프레젠테이션의 중요성이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걸 지적해주고 싶었어요.

짧은 시간안에, 자신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것이라, 효과적인 전달이 중요하니까요.



한국 전통기와의 무늬를 이용해,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접점을 찾는 

작품도 있고, 폐전선을 엮어서 리사클링으로 지속가능성을 풀어내는 학생도 있었고요.

그런데 학생들 작품 대부분이, 이 '지속가능성'이란 화두를 너무 친환경이나, 에코의 문제, 혹은 

리사이클이란 협소한 렌즈로 환원시켜 풀어낸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테마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대전제를 잃고, 극소적인 세부사항에 천착하다보니 생긴 문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생들이다 

보니 실험적인 표현도 많고 과장된 것도 많고,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하는 정서가 그대로 느껴질 때가 많죠. 

이런 모습 모두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로선 심사를 위해 쓴 5시간이 행복했습니다.



오늘 심사를 하면서 흔히 '학생들 작품'이란 뜻에 포함되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짚어내려면 한없이 비평을 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으로 

충만한 그들의 즐거운 실험에 대해, 굳이 기성이란 이름으로 잣대를 대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매일 패션을 통해 에세이를 씁니다. 그것이 일상에 나가는 우리들의 삶일 것입니다. 

철학자 파스칼이 지적하는 저 에세이에는 '실험한다'란 뜻이 담겨 있다고 하죠. 옷을 입는 것도

만드는 것도 하루하루를 실천하는 일종의 실험입니다. 그 실험의 결과가 꼭 오롯하고 

단아하며, 스타일로 충만한 것만은 아닐겁니다. 때로는 시대의 결을 거스르고

젊음으로 기성이 갖지 못한, 꿈을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판매되어야 하는 옷의 운명 상

반드시 가져야 할 미덕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을 읽되, 흥분하지

않고 균형의 감각을 갖기, 덕지 덕지 갖다붙이기 보다는 절제하기, 깔끔하게 풀어내되

마치 강화도 "화문석 장인들이 왕골을 짜서 끝단을 깔끔하게 처리하듯 디테일을 자랑하되 마무리

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이 말씀은 오늘 심사위원장이신 장광효 선생님의 말씀이셨어요. 마음에 들어서 제가 

이렇게 노트에 수기로 적어왔습니다. 말이 심사지, 저는 그 분들 이야기 하시는 것, 논평 하나하나 

제가 후보생들의 영감노트에 함께 적어가면서 저도 생각하고 느껴본 시간이었습니다.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옷에 대해 질문을 할 때, 던지는 날카로운 면모

를 보면서 저도 옷에 대해 공부를 더 깊이해야 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예전 대학시절 한 편의 영화를 읽고 분석하고, 감독의 의도를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배우던 그 때의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합니다. 한 편의 영화를 읽기 위해 초시계를

들고 개별 씬들을 초단위로 계산하고, 편집을 통해 스토리가 풀려가는 호흡과 맥박을 연구하고, 미장센을

읽으면서 화면 구성 전체의 미적인 효과를 읽듯, 한 벌의 옷을 제대로 지적하고, 논평하려면, 결국 

구조의 문제, 한땀한땀 봉제의 정확성,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실험을 했는지의 여부, 안감사용

옷에 입었을 때, 피트된 느낌의 문제, 트랜드와 소재, 색상이 현실계와의 조화문제 등

참 많은 걸 고려하고 한 눈에 볼 수 있는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케이팝의 유행과 더불어, 세계가 한국의 문화에 조금씩 눈떠가고 

관심을 보이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 문화의 첨병으로써 한국패션의 코드를 

만들어내고 이를 알려야 할 시기입니다. 물론 우리들 앞에 놓여진 현실적인 문제들과

묵정밭은 넓고 깊을 수 밖에 없지만, 이러한 제약요인들을 견뎌내며, 하나하나 문제를 잡아가다

보면 이것이야 말로 국제도시, 서울이란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정체성에 패션의 옷을 

입히고 그 속에서 패션이 한 송이의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진정한 블라섬 인

서울이 되지 않을까요?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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