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대구 가톨릭대학교 특강-멘토의 기준을 논하다

패션 큐레이터 2012. 10. 29. 06:00


올해 들어 많은 기업/기관 강의를 다녔습니다. 대학강의를 회피하다보니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이건 제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주 찾아보는 블로그를 만들고 싶었고, 일종의 정신의 플랫폼

이 되고 싶었던 욕망은 점차 기운을 잃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번

대구 가톨릭대학교 패션 디자인과 학생들과의 만남은 아주 참신하고 힘이 되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게 많은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었던 시간이죠.



서울 공화국이란 정신의 형틀이 우리들의 일상의 배면을 지배하는 나라에서

언제부터인가 왠지모를 열패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는 '지방'을 봅니다. 하나같이 서울로

몰려들어야 하고, 그곳에서의 성공만을 '성공'으로 치부하다보니, 지방은 매일 뜯기고 흡수당하죠.

지방 국립대조차도 서울 내 대학에 비해 열세한 것처럼 비춰지고 투영된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참 

웃기는 일입니다. 이럴땐 프랑스처럼 파리 1대학 2대학 이런 식으로 그냥 대학명을 바꿔버렸으면

생각할 때도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워낙 진지하게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이날 실수를 했는데

저도 모르게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버렸습니다. 절대로 제 개인

의 삶과 사연팔이를 하지 말자라는게 강의의 원칙인데요. 이걸 어겨버렸습니다. 



요즘 시대를 '멘토링의 시대'라고 부릅니다만, 저는 참 불만이 많습니다.

툭하면 사연팔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죠.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고, 한발 물러서면 인생이 보인다는 식의 말을 참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사람들. 저는 이런 이들이

싫습니다. 물론 긍정적이고 듣기 좋은 말이고 일종의 덕담일 수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이런 자기계발과

치유니 힐링이니 하는 말로 포장한 책들을 '종교'처럼 소비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런 소비자 집단을 볼 때 딱 떠올랐던 이들이 

대형교회를 다닐 때 만났던 한 부류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자칭 일주일을 교회에서 보내는 아이들이죠. 월요기도회

화요일은 연령기도회, 수요예배, 목요찬양, 금요철야, 토요성경공부에 참여하죠. 교회란 테우리를 넘어서지 

않는 이들이 교회의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제가 보기엔 이들은 '세상을 향해 나가길 두려워서 일상을 

유예한 자'들 같았습니다. 문제는 이 땅의 자기계발서가 이런 종교적 믿음을 텍스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심고 기도문을 외우듯, 자기계발서에 빠지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기업에 들어가서 찾아야 할 멘토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스스로 출발선이 다르다고 생각할 때 기업 내에서 '멋져 보이는 멘토'

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공의 열망이 강해질수록 비윤리적인 방식을 택해 

성공의 사다리를 타는 이들, 그렇게 효과를 본 이들이 멋져보이죠. 개인적인 사연보다, 역사를 통해 이야기 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저는 신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여기에서의 신화란 꼭 그리스/로마 신화를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신념의 구조, 믿음의 체계들이 사실은 매우 취약한 존립구조를 

가진 것들임을 드러내는 것이죠. 한국의 패션산업을 짊어지고 가야할 청춘들이 기가 죽어 

있는 걸 볼 때마다 우리를 둘러싼 '신화'의 틀을 박살내야 함을 통감합니다.


디자인이나 예술분야는 달란트를 가진 이들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는 곳입니다.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이것이 무조건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해외를 가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삶의 리듬과 시각을 배우는 것이 우리의 깊은 정신적 형틀을

깨는데 도움이 되지만, 이것이 곧 디자인 탤런트의 탄생을 보장하진 않죠. 그래서 교수님들께도 부탁을 드리고 

왔습니다. 저는 예술컬렉터로 살아가면서, 학생들의 2학년 작품들을 주의깊게 봐 왔습니다. 특히 드로잉.

선을 통해 사물을 포착하는 느낌을 보면 그의 향후가 조금 보였습니다. 외국에선 디자이너들을 

키울때 인사담당자들이 기업에 가서 학생들의 졸업작품전 이전에, 기초 조형과 디자인

감성을 평가하고 입도선매를 한답니다. 그만큼 디자인 탤런트를 키우기 위한 

투자를 하는 거죠.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성찰이 필요합니다.



교수님들과 한컷 찍었네요. 오른편의 교수님이 유태순 교수님은 이날 저를

동대구역에서 픽업해주셔서, 오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마케팅 이론의 맹점과 한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고 있는데요. 그렇다보니 관심을 

가진 분야가 인류학입니다. 인류학적인 접근법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글로벌 마케팅 시대인데, 우린 

매우 협소한 상품이론과 머천다이징 이론에 빠져있죠. 그런 의미에서 유태순 교수님이 80년도 중반에 번역하신 

<패션의 언어>같은 책은 재출간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미국의 앨리슨 루리란 저널리스트인 영문학자가 

쓴 책인데 옷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준 고전이자 기념비적인 저술이죠. 패션은 그 어느 분야보다 

융합과 학제간적인 연구가 활발할 수 있는 장(field)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능성을 못살리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통섭의 시대라면서, 정작 잘 살릴 수 있는 분야를 간과한거죠.



포스팅을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에 글이 하나 떳네요. 이번 대구경북디자인 센터

와의 콜라보 프로젝트에 여러 학교들이 응시를 했답니다. 이 중에서 대구 가톨릭 대학교 

패션 디자인과 학생들도 함께 한다는 소식이네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대구가 섬유도시의 전통에

기술과 과학의 힘을 입어 패션의 도시로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도록 후학들이 힘을 내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서울공화국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과 싸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같이 문화정책도

서울에서 입안된 밑그림을 지방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이 체계의 껍질을 깨고, 지방 특유의 

역사와 스토리에 디자인의 감성을 입혀야 합니다. 이것을 해낼 수 있는 독립군이 필요해요.



단풍잎 빛깔이 고운 가을 어느날, 서울패션위크와 겹친 힘든 상황이지만

학생들과 대화하고 나눔의 시간을 가진 것은 행복합니다. 요즘은 페북으로 학생들을

만납니다. 블로그보다 더 실시간 반응이 되어서 좋더라구요. 요즘 아이들이 스펙쌓기에 혈안

입니다. 스펙은 숫자입니다. 인간의 본질과 개성, 그 매력이 수치로 환원될 수 있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저는 마케팅을 통해 뻐져리게 배웠던 사람입니다. 진정한 강점은 자신의 컬러를 아는 것입니다. 영업방식도 

그렇고요. 멘토는 꿈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거짓 위로의 말을 던지기 보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 이 또한 그 꿈을 지키는 한 방식이 되겠죠. 아이들에게 약속하고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강요하는 사회의 껍질을 부수기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