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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비즈 인터뷰 후기-정보과잉사회에서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은

패션 큐레이터 2012. 10. 5. 21:09

 

 

큐레이터 과잉의 시대

 

2012년 패션 비즈 10월호에 인터뷰가 나왔습니다.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콘텐츠 큐레이터, 패션과 논다>란 제목의 기획 기사인데요. 저를 비롯해 패션정보사인 PFIN의 패션 블로그인 '스타일피쉬'와 ANDY'S ROOM 블로그를 운영하는 전정욱 대표, 스펙트럼 매거진의 편집장 홍석우씨, 롯데 백화점 MD 전략팀의 여병희씨의 블로그가 소개가 되었네요.

 

블로그가 1인 미디어가 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1인 1매체 시대라고 하죠. SNS로 패션의 소비와 트랜드의 향방을 읽는 과정이 수평적으로 변하고, 타인들의 입소문이 빛의 속도로 오가는 요즘 분명 1인 미디어를 만들고, 제 이름을 딴 '패션의 제국'을 만들게 된 것은 기쁜 일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부릴 수 있으니 더욱 좋은 일이죠.

 

그런데 오늘은 좀 쓴 소리를 해야겠습니다. 한국사회처럼 외국에서 뭐 하나 뜬다하면 이름 같다 붙이고 쓰는 거 좋아하는 곳도 없지요. 대표적인 직업이 큐레이터인데요. 사실 학예사란 공식명칭을 두고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중간에서 두 세계를 주유하는 듯 보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쉬크해보이는 이 큐레이터란 직업은 사실 미술계에서 쓰던 표현이었습니다.

 

최근 경영학을 하는 분들이 이 표현을 가지고 와서 '큐레이션의 시대' 어쩌고 하시던데요. 저 또한 마케팅 전략을 전공하고 지금껏 관련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솔직히 헛웃음 나는 말입니다. 15년 전에는 리엔지니어링이란 단어가, 그 이후에는 벤치마킹이란 단어가, 그 이후엔 가치혁신을 넘어 ERP. SOC니, 또 그 이후엔 블루오션이란 단어가 판을 쳤죠.

 


개나 소나 큐레이터인 세상에서 살아가기......

 

마케팅 분야의 자칭 전문가란 자들이 3음절로 신조어를 만들고, 시장을 만들며 장사를 해온 건 하루아침의 일은 아닙니다. 지금 패션계의 대세처럼 떠드는 스트리트 패션도 영국에선 이미 1980년대 중반에 뮤지엄에서 전시로 선보였던 것이었고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걸, 굉장한 걸 하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 만큼이나, 짜증나는 것은 없습니다. 패션 큐레이션은 철저하게 역사성에서 유리되지 않은 패션의 정신과 인류학, 그 역사를 다룹니다. 그저 현대의 소비자들을 위해 스타일링을 해주고 아이템을 골라 깔맞춤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란 것이죠.

 

콘텐츠가 어떻고 스토리가 어떻고, 되돌아보면 그냥 내용과 이야기란 표현으로 써도 될걸, 굳이 있어 보일려고 쓰는 것인지, 패션계의 이 지독한 영어강박증도 솔직히 싫습니다. 영어단어 패션에 해당하는 우리의 자생적 단어를 만들지 못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패션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해외브랜드에 의존해야 하기도 하고요. 요즘처럼 전시준비를 하며 힘들수록 이런 생각을 합니다. 큐레이션이란 특정 직업에만 쓰는 단어는 아닐 겁니다. 저 또한 이 단어가 미술을 포함한 예술계에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큐레이션이란 단어가 너무 함부로 오용되고, 남용되는 건 불쾌합니다.

 

정보과잉사회에서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것들


학예란 박물관에서 유물을 수집하고 그 연원과 역사를 연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유물의 정신을 새로 선보이기 위한 방식들을 기획하는 일을 합니다. 사실 업무적으로 보면 유물이란 단어를 패션으로, 혹은 가구나 화장품으로 바꾸어도 바뀔 건 없지요. 소비자들을 위한 방식을 연구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최근의 대세인 편집은 아닙니다. 편집샵들이 하도 판을 치다보니, 그저 멋있어 보일려고 큐레이팅 소비 어쩌고 하는데요. 결국 사회가 고도화 될수록 각 개인이 큐레이터로서 살아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 시대가 되면 특정 영역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큐레이터 이외에는, 더욱 큰 감식안을 갖는 사회가 될 거라고 추정해 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무슨 블로그를 쓰고, 자기만의 컨텐츠를 올린다고 다 큐레이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분들 대부분이 하우투(How to)에는 집착하지만, 왜(Why)에는 답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라는 질문은 그저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란 질문을 던지고 어떤 한 가지 질문에 답하기 까지 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앤디스 룸이란 블로그의 글은 마음에 듭니다. 저 또한 해외출장길, 시간을 아껴 디자이너들의 공방인 보테가를 가고, 상품을 사면서 글을 썼던 겁니다. 여기에 꼭 이론적인 채움을 위한 텍스트까지 왕성하게 소비를 했죠.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제 블로그는 다른 분들에 비해 요즘 오는 이들의 숫자가 많이 미약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쓰기만 했다하면 수만명이 넘나드는 제목들, '남자가 죽어라 싫어라 하는 여성꼴불견패션' 이런 제목의 글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항상 원천에 대한, 그 깊은 역사에 대한 천착과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뭘 말해주는지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멋진 해외전시를 선보이려 합니다. 이제서야 고백하네요. 기대하세요. 정말 여러분들의 깨알같은 편견들, 무참하게 부숴버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와서 저를 부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왠지 모를 답답함에 가슴이 으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