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창원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강의 만을 고집하다가 이번 창원의 성산 아트홀에서 일반 시민들을 위한 수요대학
을 연다고 해서 명사특강 차 내려간 것인데요. 재즈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님과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씨의 강의에 뒤이어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패션은 레고블럭이다>입니다.
이번 수요대학의 모토는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라>입니다. 인문학 강의들이
요즘 창궐하다보니 이런 식의 제목들은 어찌보면 식상할 수도 있고, 다소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저는 패션을 통해 자기계발이나 힐링과 같은 이야기를 해본적이 많지 않습니다. 할 거리가
없어서 안한 것이 아니라, 피해왔던 거죠. 주변의 요청은 많지만, 사실 대세랍시고 따르는 태도를
좋아하지도 않고요. 저는 그저 복식의 역사와 미학을 연구하는 인디 학자로서, 큐레이터로서
패션의 세계를 주유하며 배운 시대의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가 패션을 마치 건축물을
짓는 벽돌처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창원의 성산아트홀은 생각보다 규모가 아주 컸습니다.
중앙에는 백남준 선생님이 만드신 '창원의 봄'이란 설치 작품도 있었고요
400석 규모의 홀입니다. 처음엔 장소가 왜 이렇게 큰가 했는데요.
놀랍게도 빼곡히 강의를 위해 다 채워진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이 땅에서 패션을
소재로 강의하면서 가장 많은 인원을 상대로 해 본 것이 교원대 특강이었습니다. 당시 650명
정도 되는 분들이 대강당에 가득찼었는데요. 그 이후로 이렇게 많은 인원을 만나니 저로
서는 사실 큰 힘이 되고, 제 메시지가 이 분들에게 잘 전달되기만을 바라는 거죠.
이날 저의 강의 주제인 <패션은 레고블럭이다>의 피티화면을 틀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예전에 독일에 있는 레고랜드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저 또한
어른이 되도 레고를 조립하며 스트레스를 풀때가 있습니다. 레고는 아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죠
덴마크출신의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1949년에 내놓은 조립식 블록 완구 레고. 이 이름의 유래는
저는 마치 패션의 각 아이템이 이 레고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가 꿈꾸는 시대의 미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패션은 진정 '내가 되기'위한 선수작업이어야 하는데, 트랜드의 폭력에, 대중담론이
만드는 유행의 힘에 노출되며, 그 세계에 우리자신을 짜맞추어가며 살아가는 삶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패션이 나란 존재의 집을 짓기 위한 블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사실 레고블럭은 새로운 은유도 아닙니다. 학문의 체계에서 틀을 구성하는 주요한
개념틀을 Building Block, 토대로 부르는 것은 이와 비슷한 이치입니다.
레고의 뜻처럼, '내가 되기 위한' 패션의 논리를 찾는 것.
패션미학과 역사를 가르치며, 이 땅에는 이 두 영역이 너무나도
힘이 약하다는 점 그렇다보니 툭하면 연예인들의 패션이나 우리들의 정신상태를
공황으로 이끄는 공항패션만이 인터넷에 회자된다는 점일 겁니다. 여기엔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우리 스스로 패션을 단 한번도 진지하게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제가 요즘 부쩍 대중강의를 확장한 이유는 이런 작은 메세지의 힘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압축성장 속에서 진정 우리가 익혀야 할 패션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소중한 생각을 함께 나누어주신
창원 시민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내년 봄에도 다시 뵙자 하시는데
바쁘지않기만 바래야겠네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곧 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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