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제주의 돌과 바람, 그 색을 담은 옷-장현승의 제주옷에 대한 사유

패션 큐레이터 2012. 10. 14. 06:00

 

                                                                                                                                                                            

가을 어느 날, 서울의 햇살아래

 

가을햇살이 좋은 일요일, 전시장에 나갔습니다. 눈길을 끄는 전시제목이 있었습니다. <제주옷>전. 제주도의 특유의 옷은 어떤 것일까? 삼청동을 거쳐 인사동으로 내려오면서 우연히 들어간 전시였는데요. 자세히 보니 제주에서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천연염색가 장현승 선생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몇 년전 공예갤러리에서 옷을 처음 발견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 느낌이 또 새롭습니다.

 

제주도의 복식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봇의창옷과 소중기라 불리는 제주 특유의 옷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한국의 복식사 연구는 그 수준이 상당수준에 이르렀지만 사실 왕이 있는 서울중심이지, 실제로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색과 형, 풍토가 빚어낸 다양성은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섬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살아야 하는 갖난 아이들에게 입혔다는 삼베로 만든 봇듸창옷과 깊은 물속 자맥질하는 해녀의 몸을 감싸주었던 물옷, 소중기에 대한 내용은 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거친 삼베로 옷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입힘으로써, 피부가 단단해진다고 믿었다고 하지요. 봇은 엄마의 태중을 의미하는 말이랍니다. 문제는 사료가 부재하다보니, 60대 이상 부모 세대에게는 전승되고 있지만, 정확한 내역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이 봇듸창옷이란 게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이 숨어 있었습니다. 어른 저고리와 동일한 실루엣을 갖고 있지만, 뒷중심선과 솔기, 소매 옆 모두를 터 놓았습니다. 옷의 실루엣을 조형하는 바느질에도 철학이 있었습니다. 트임을 준다는 것은, 삶의 행보에서 막힘없이 술술 풀려나가라는 뜻이기도 했다지요. 요즘은 배냇저고리를 DIY 상품으로 구입해서 만들어 입히기도 합니다만, 그렇다 보니 이 봇듸창옷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여기에 해녀들이 입는 소중기는, 제주말로 속옷을 뜻한다고 합니다. 1930년대 중반 제주도에 상주하며 제주 지역문화를 연구했던 일본의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가 쓴 '제주도'에는 이 소중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여기에는 이 옷을 "남색 무명의 수영복으로 앞면은 유방까지 덮지만 뒷면은 노출되어 있고, 가느다란 천이 열심자로 하부에 붙어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후 고무로 만든 잠수복을 입게 되면서 해녀들은 예전보다 긴 시간을 바다에서 보낼 수 있었지만, 납벨트를 하고 들어가야 하는 탓에, 오히려 살이 짓물려야 했죠.


 

 

제주도는 한국이란 사회에서도 지역적 특수성을 갖고 발전되어 왔기에 그 복식문화도 남달랐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염색이란 과정을 거쳐, 복식의장을 하던 시절 각 지역들은 향토색어린 자신들의 색을 만들어왔죠. 제주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나주의 쪽염이 있듯, 제주는 거친 바람과 바다, 화산활동으로 빚어진 풍광의 색을 그대로 재현해 옷에 물들여왔죠.

 

자연의 색이란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측정하기 어려운 것임을 압니다. 전남 강진의 하늘빛과 제주의 하늘빛은 엄연히 다릅니다. 먼셀색상환에서 규정하느 블루의 전 범위를 들이대도, 동일한 색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죠. 일본에 도자기를 배우기 위해 떠난 장현승은 그곳에서 우연히 염색을 배우며, 그 아름다움에 눈 뜨게 됩니다.


 

감물과 먹물을 유독 사랑하는 작가는, 이 두 가지 염재의 색이 제주의 속살이자 화산섬인 제주의 전통을 잇는 색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천연염색은 각 지역의 재료를 이용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색 그대로를 옷에 옮기는 작업이지요. 문제는 이 염색을 위해 사용하는 염재가 지역마다 풍토에 따라, 동일한 수종이라도 성격이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커피도 힘든 토양에서 자란 열매들이 외려 더 진한 향을 내듯, 강한 바람과 염해를 견디며 자란 억새와 참나무는 그 짙은 향과 색을 냅니다. 여기에 뽕잎, 참나무잎, 애덕나무 등 제주 특유의 색이 가해지면 본향의 색이 나오는 것이죠. 가을햇살을 물레삼아 돌려 뽑아낸 실에, 염재를 더하고 순정의 바람의 애무를 받으며 말린 천에는 그 토양의 색이 사랑의 지문으로 남게 됩니다.

 

 

염색을 하다보면 자연이 나를 물들이는 것인지, 내가 자연속에 물드는 것인지,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스며드는 삶, 그렇게 작은 글로나마 누군가에게 행복한 삶의 색이 되고 싶은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