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할머니가 되는 법-쉬크한 시니어로 살아가기

패션 큐레이터 2012. 9. 7. 05:00



어제 삼성증권 VIP 고객 특강에 다녀왔다.

한달에 10여 차례가 넘는 강의 스케줄을 소화하기가

쉽진 않지만 항상 새로운 이들을 만나는 것은 내게 큰 힘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손 안에 들어오는, 만남을 통해 얻는 명함의 직급들이 올라간다

회사에서 해외마케팅 본부장을 하던 시절, 들어오던 명함들과 또 다른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 다양한 직군과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을 만나는 일이기에 새롭다. 조직 속에

갖혀 있기 쉬운 나를 '껍질' 밖으로 끄집어내고 새롭게 조형해주는 시간이다. 



패션의 인문학을 강의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패션을 접근하는 참신한 관점이란 말도 좋지만, 무엇보다 패션을 통해

철학과 역사, 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유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작업이기에 내 강의

는 항상 '패션'이란 너무나 익숙해서 진부할 수 있는 주제에 새로운 옷을 입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는 지금껏 해왔던 보편적인 패션의 역사를 넘어, 노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봤다.

중세 고딕 시대, 노화 개념의 탄생에서 부터 이를 받아들이기 까지의 역사다. 



최근에 출판사 편집장과 계속해서 번역 여부를 고민 중인 한 권의 책이 있다.

30대 스트리트 사진가, 아리 세스 코헨의 <어드밴스트 스타일 Advanced Style>이란 책이다.

2009년 우연하게 본 다큐멘터리에서 90세의 나이로 너무나 멋진 포즈와 연기를 보여준 배우, 미미 베델에게

반해,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패션 아이돌을 찾기 위해 원래 살던 시애틀을 떠나 뉴욕으로 왔다. 이 책은 그가 뉴욕의 

거리에서 멋진 시니어들,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사실 <사토리얼리스트>의 황혼판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이다. 하지만 스트리트 패션과 사진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실제 출판성적이 그리 좋지 않다.

그렇다 보니 텍스트 하나 없이 오로지 이미지에 기반한 이러한 책들을 내는데 출판사가 마뜩

찮아 하는 건 당연한 문제다. 원래 번역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던 건 나지만 

사실 내가 봐도 일절 텍스트 없이 뉴욕의 멋쟁이 할머니들의 사진만 모아놓은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이 책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건

사실 판매보다, 이 책과 그 속의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하나의 작은 메시지

때문이다. 세스 코헨의 책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은 이제 더 이상 현업에서 일하지 않는다. 직업도

없고, 잘 보여야 할 상사도 없다. 아이도 연인도 없다. 모든 걸 놓아버린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옷차림에는, 이제 철저하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향이 배어난다. 바로 

그 매력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담함'은 꽤 중요한 가치다.

패션은 항상 시대에 앞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용기와 대담함'을 요구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들을 자신에게 내뱉을 때가 있다.

'내 나이에 이제 어떻게 저렇게 옷을 입어?'라고 말이다. 여기엔 

항상 나이 중심적 사회가 만든 위계가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규율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패션은 원래 이런 기제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 

중세 카니발에선 항상 옷을 바꿔입고 신분사회의 계층을 역전시켰다. 물론 이는 한번의 

이벤트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답답함을 분출하고 사회의 질서를 지켜나갔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니어 계층을 볼 때마다 항상 안스럽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그 대접을 받는 일도, 혹은 하는 일도 익숙치 않다. 전쟁의 상흔을 겪고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자신을 버린 채, 그저 열심히 생활 전선에서 뛰어야 했던 세대 분들이다.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보다도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우리 사회의 시니어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물론 정치적 틀과 언론의 십자포화에 갖혀, 여전히 자신의 과거를 

지우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일거다. 



할머니들은 종종 이런 말들을 하신다. "늙은이가 무슨 그렇게 화려한 색을 입어"

라고. 나는 할머니에게 꼭 말씀드린다. 멋진 시니어이기에, 세상의 다양한 색을 입을 자격이

있는 건 아니냐고 말이다. 멋진 할머니,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패셔너블 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 안될까

나는 패션이 우리가 갖고 있는 '노년의 정의를 새롭게 해줄 수 있다'라고 믿는 쪽이다. 스스로 효율성

의 잣대에서 이제는 멀어진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색과 경험의 주름을 몸에 각인 시킨

멋진 사람들, 시니어의 얼굴주름은 그래서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들이 지금보다

좀더 쉬크 해지길 바란다. 이런 멋진 시니어들이 나올 수 있는 세상, 기업의 마케팅

노력 조차, 간과하고 있는 이 세력이, 다시 한번 힘을 얻고 세상 위에 나오길

바람하고 바람하며......나 또한 그렇게 늙어가야지 하고 속삭여본다.


책을 번역하게 되면 아주 긴 해제를 붙여야 할 듯 싶다. 에디터도

그 방식을 원하고. 문제는 번역서를 위해 그렇게 힘을 써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적어도 거리에서 포착된 할머니

들이 당찬 모습은 어떻게든 소개하고 싶다. 아름다운 그들의 표정을 나누고 싶으니.


Photography Courtesy by Ari Seth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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