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여름, 제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작년처럼 뉴욕 출장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과, 이로 인해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프라다와 스키아파렐리>전을 놓쳤다는 점일 것입니다. 부랴부랴 전시도록과 동영상은
구해서 봤고, 다양한 평론가들의 글을 읽어봤습니다. 두 디자이너 사이에 병존하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짚어내고, 디자이너의 세계를 한 시대의 좌표 속에서 병치시키려는 노력은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높은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본격적인
전시방식과 문법을 설정한 전시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초현실주의 패션을 1920년 후반부터 줄곳 선보였던 엘자 스키아파렐리와
1975년 프라다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은 이후로, 정치학도에서 패션의 영역으로 그
세계를 옮긴 미우치아 프라다 사이에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기하학적 패턴과 현대
예술에서 빌려온 상상력들을 패션에 결합시키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었죠. 올해 패션계의 대세는 역시
레트로였고, 그것은 10년이란 시간을 단위로, 바치 보표 위에 선율의 기호를 그리듯 한 시대의 템포와 정서적
거리를 그대로 투영합니다. 패션은 항상 앞서서 인간이 그리워하던 한 시대의 향수를 옷에 표현하지요.
돌체 앤 가바나가 17세기 절대왕정의 바로크적 세계를 보여줬다면 다른 브랜드들은 철저하게
현실이란 문맥 안에서 회고적 성격을 띠는 패턴이나 색상, 실루엣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2012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하나같이 1960년대의 벽지에서 모티브를
따온 현란한 패턴들로 가득합니다. 마치 1960년대 잭슨폴록의 전면회화 처럼요.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선면의 캔버스에는 동그라미와 세모, 직선과 나선. 교차되는 사선의
무늬들이 질서감을 무너뜨리지 올망졸망,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며 도열해있습니다.
1960년대는 풍요의 시대였습니다. 종전과 더불어 사회복구 프로젝트는
온 삶의 영역에 다시 한번 훈풍을 불어넣었죠. 착시 효과를 중심으로 하는 옵아트가
등장한 것도, 빛의 속도로 진화해가며 도시의 지평과 실루엣을 그려가는 과학문명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찬사였습니다. 1960년대는 그렇게 풍요로움을 맛본 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한 시대 안에 다양한 가치가 병존할 수 있음을 인간이 역사에서 확인한 첫 세대였죠.
이번 프라다의 컬렉션은 섬세한 극소의 질감을 가진 패턴들을
부조화 속에서 결합하려는 노력을 담습니다. 패턴과 텍스쳐는 사이즈에
따라, 혹은 색채의 범위와 디자인에 따라 각자 다른 성격을 드러내는 데요. 이는
하이엔드와 조악한 하류취향까지 모두를 담아냄으로 인해 컬렉션의 방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 답습니다.
옵아트는 추상미술과 달리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간의 관계, 원근법을
이용하여 사람의 눈에 착시를 일으켜 환상을 보이게 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추구
했습니다. 빛과 색, 형태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기존의 회화가 가진 평면성을 극복하고 역동적인
입체의 세계, 바로 그 미술작품이 생성되는 1960년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기존의 미술사는 이 옵아트를 과학적 요소를 기본으로 하고 사고와 정서를
배제한 계산된 예술로 밀어부쳤습니다. 타당한 측면도 있는 해석
입니다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왜 인위적으로 환각에 빠지려고 할까요?
1960년대는 정치적으로 어느 때보다 세대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커진 시대였습니다. 지금 바로 우리 시대의 정신적 자화상을 그대로 잉태시킨
일종의 모본과 같죠.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과 사람사이, 세대라는 것을 통해 가치관은
상당히 변화없이 받아들여지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이 되어졌다면 1960년대는 다양한 가치관들이
병존하는 사회가 된거죠. 청년운동이 일어나고 청년문화와 혁명이 일어난 건 바로 그런
이유였습니다. 윗 세대의 정신을 마냥 답습하기에는 사회의 변화진폭이 컸죠.
So don’t follow cliches, be brave and rock your style!
변화의 진폭이 커진 사회, 열망과 또 다른 형태의 열망이 충돌하고
세대간 정치적 변화를 둘러싼 첨예한 다툼이 예상되는 시대, 가치 중립을 지키기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마치 프라다의 1960년대 풍요속에 현란하게 펼쳐지는 무늬 속 벌집 무늬
는 최상의 가치를 찾아서 나름 정리를 해보지만 여전히 '부조화'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정신성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 합니다. 무늬의 현란함만큼, 정치적 언설의 종류도 많아지는 시대, 적어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저에겐, 프라다의 저 현란한 옵아트 스타일의 패턴들이 마냥 행복에 대한 오마주는 아닌 듯 보여서
씁쓸합니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죠. 프라다의 말처럼, 진부한 세계의 문법을 따르지 말고
용감하게, '당신의 스타일을 흔들어 재껴보는 것'도 방식일테니까요. 자 이제 흔들어봅시다
'Art & Fashion > 런웨이를 읽는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전복하는 톰보이들의 세계-2013 S/S 이석태 컬렉션 리뷰 (0) | 2012.11.04 |
---|---|
패션은 세상을 향한 창-2013 S/S 소울팟 컬렉션 리뷰 (0) | 2012.10.31 |
패션이 봄을 찬미하는 방식-보테가 베네타의 2013년 S/S 리뷰 (0) | 2012.10.08 |
펜디 2013년 S/S 컬렉션 리뷰-기하학적 사유를 푸는 미니멀리즘의 힘 (0) | 2012.10.04 |
색을 갖고 놀다, 최복호의 컨셉 코리아 컬렉션 리뷰 (0) | 2012.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