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패션은 세상을 향한 창-2013 S/S 소울팟 컬렉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10. 31. 06:00

 


나를 설레게 하는 디자이너, 소울팟의 김수진의 컬렉션 리뷰를 올려본다.

그녀를 안 것은 2년 전이다. 패션은 관념의 옷을 입히는 매개다. 그러나 그 관념이란

것이 실제로 런웨이에서 걷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들이 있다. 현 시장에서 인간의 욕망을 투영

할 수 있고, 매혹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오롯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가의 유무다.

그런 점에서 컨셉츄얼 패션 작업을 참 깔끔하게 하는 디자이너를 발견하게 된 것은

아주 기쁜 일이었다. 작년 여백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 보여준 것은 '창'이다.



디자이너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여유와 이상을 바탕으로 생성된 미적 

경외감을 컬렉션의 테마로 삼았다고 했다. 패션에도 치유의 힘이 있을 수 있음을

조형성을 통해 보여주는 디자이너, 김수진의 이번 작업은 우리네 전통 창호의 해체와 재구성을

명확하게 런웨이로 끌고 들어왔다. 빛과 바람의 순환이라는 추상적 관념의 경험을 옷을 

통해 드러내는 과정은 아스라하다. 창은 열고 닫힘을 통해, 인간을 받아들인다. 


 

우리네 전통 창호를 보자. 창호란 창과 문을 뜻한다. 우리 내 관념 속에서

창은 곧 세상을 향해 열리는 문이다. 열림과 닫힘은 끊임없는 변증법적인 긴장을 

만들어내는 요소다. 물론 서구적 개념이다. 우리의 전통 창호가 주는 문은 열림을 향해 더욱

여백의 기운을 품어주는 따스한 문이다. 서구처럼 유리란 절연체로 창을 막기 보단

하얀 달빛을 쓸어담을 수 있도록 반투명의 종이를 붙여, 기운을 안아냈다. 


 

전통 창호는 창의 살을 통해 다양한 무늬를 생성해왔다. 종류도 다양하다. 

완자무늬에 꽃살을 더하기도 하고, 동산 위에 달이 뜬 모양으로 만든 달아자살문도 

있고, 빗살불발기문이라 하여 마름모꼴의 무늬를 교차하여 짜낸 것도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창살무늬에는 자연을 받아들이는 마중물과 같은 경외감이 있다. 인간의 무늬가 자연에 

하나로 결합하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그럼 무늬들을 해체하여 옷으로 표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터. 무엇보다 겹겹으로 누적되고 반복되는 

창살무늬를 '자연의 순환'이라는 논리 아래 옷으로 표현했다. 


 

누적과 반복이란 창살무늬를 해체하기 위해 서구적 레이어드 개념을 

차용하여 우리 내 빗살무늬를 만들어낸다. 패치워크와 컷워크 작업도 사용했다.

소재적으로 오건디와 실크 쉬폰을 이용한 시 스루 룩과 실크와 린넨을 이용한 논 시스루룩

은 창이 가진 두개의 기능, 열림과 닫힘이라는 세계를 적요하게 그려내는 방식이다. 전통 창호가

가진 종이적 질료의 특성을 직물의 텍스쳐에 적용해 입혀낸 것도 인상적이다. 전통창호는 

인간에게 두 개의 기억을 가능케 한다. 겨울 창살에 차륵차륵 달라붙은 문지방 위로

흐르는 윤달의 차가운 기운과 그 속에서 따스한 밤을 굽는 화로의 기억이다. 

밖을 향한 보호와 내면을 향한 정감의 기억, 옷은 인간의 기억을 담는다.

 


전통창살을 해체하는 디자이너의 손길은 철저한 구조주의자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차용하되 매이지 않으며, 현대적인 감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하려는

마치 전통창살을 디자인하는 소목장의 손길처럼 말이다. 그래서 곱다. 



정크 아트 작가인 Aira-Choi와 함께 협업한 헤드피스도 인상적이다.

패션디자인과 금속조형이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공간에서 꽃으로 피어난 것. 

갓과 비녀, 족두리 같은 우리 네 복식의 요소를 금속으로 표현했다. 간결한 모더니티가 

느껴져서 좋았기도 하려니와, 구태스럽지 않은 재해석의 장을 만든 것 같아 좋다.



창은 옷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일종의 은유다.

옷은 여밈을 통해 외부로 부터 인간을 보호하지만, 또한 열림을

통해 외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투영한다. 새벽 어스름 창호 문틈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을 손에 담아보고 싶었던 어린 시절, 창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두려워

하는 나를 보호하는 이중의 갑옷이다. 환절기마다, 바람도 서두가 긴 행보로

인간의 몸을 떨게 할 때마다, 창살은 마치 늙은 엄마의 손 위로 그려진

성기성기 조여맨 혈관같다. 혈관은 마치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막는 

생의 작은 데님이 되어 우리 내 발목을 안아주지 않던가.



개념과 패션, 그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작가적 사유를 풀어내는 

디자이너 김수진의 작업에 항상 끌린다. 시장의 역동성과 시즌별로 드러나는

소비자들의 욕망 앞에서, 기죽기보다 패션이 가진 본질의 힘을 생각하고 표현하려는 

젊은 아티스트의 면모가 아름답다. 쇼가 시작하기전, 대구에서의 특강을 마치고 부랴부랴 갤러리

에 도착해 그녀의 백스테이지로 가서 인사를 나눴다. 나는 건강한 고집을 가진 디자이너를 좋아한다. 자신의 

런웨이에 연예인으로 채우는 디자이너 보다, 패션의 본질이 널려진 겨울 대청 마루에 쏟아지는 달빛을 

쓸어담는 옷이란 빗자루를 꺼낸 그녀가 좋다. 패션에 대한 깊이있는 담론을 생산하지 못해, 

결국 장바닥에서 스타일링 강의만 늘어놓는 요즘, 이런 작가주의적 디자이너의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그녀를 아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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