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색을 갖고 놀다, 최복호의 컨셉 코리아 컬렉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9. 6. 05:00

 


올 2013년 S/S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올해로 6번째 시즌을 맞이한 

뉴욕 컨셉 코리아 행사에는 5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했습니다. 이상봉 선생님과 

손정완, 최복호, 신인을 대표하는 김홍범, 계한희 디자이너등이 뉴욕시장에 도전합니다.

이번 포스팅에는 최복호 디자이너의 작품론을 한번 올려보려 합니다. 대구에 강의

를 나가면서 실제로 청도에 있는 패션연구소에 들러 디자이너와 많은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컨셉코리아에 나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복호 선생님은 사실 이상봉 선생님보다 4년 선배입니다.

한국의 현대복식사에서 꽤 긴 이력을 자랑하는 디자이너죠. 그가 대구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중앙과 끊임없는 교섭을 보여줬다는 점,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판매경로들을 개발하면서 '팔리는 옷'을 구상해온 디자이너란 점은 분명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 컨셉 코리아에 나온 작품들은 디자이너의 실험성과 묵혀둔 생각들이 표면으로 튀어

나온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컬렉션은 오랜동안 디자이너가 색을

만지면서 고민해온 값을 내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페이스 북으로 디자이너 최복호 선생님과 꽤 오랜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색에 대한 생각들은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고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네이버 블로거에 페이스북에 올린 제 글을 인용해서 정리해 놓으셨더라구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을 들어보면 결국 "전통을 고수하면 유물이 될 수 있고, 서구화하면 모방이 된다" 결국 이러한 딜레마를 

관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이도 저도 아닌 문화적 담론의 독립군이 되는 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가 청도라는 맑은 산골에 패션 연구소를 차린 점

인류학적으로 패션이란 사회현상이 도시라는 매개변수를 중심으로 태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이러한 생각은 처음부터 패션에 대한 개념에 도전하는 것이고 

기존의 개념의 얼개를 해체하고 풍토와 자연의 색을 감싸안으려는 

노력의 일부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의 오롯한 생각이죠.



그는 패션계의 선배지만, 그렇다고 늙은 노땅의 정서를 부리며 옹알이를 하는 

선배는 아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색에 대한 그의 생각이 이를 반영합니다. 그의 삶의 

모토에서 패션을 창조하는 정서의 모토가 된 펀 앤 락 Fun & Rock, 창조되는 모든 것은 사물과 

사람, 환경의 만남과 떨림, 그 속살의 응축된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즐겁게 만나고 감싸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내부에 강렬한 떨림을 생성합니다. 색은 바로 그 즐거움을 표현하는 원초적인 지표입니다.

우리는 항상 전통의 현대화를 외치지만, 사실 이 부분은 현대 디자이너들을 사로잡은 딜레마이자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서구를 극복하고 변화를 수용하는 문제는 말처럼 쉬운 수사

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이국화, 즉 우리의 것을 돋을새김하는 능력은 말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받아들이는 견고한 미의 생각들을 부숴야 하기 때문이죠. 



이번 작품은 우리의 색 오방색(빨강, 파랑, 노랑, 흰색, 검정) 중 하나를 

골라 무대 뒤의 배경으로 쓰고, 다양한 컬러와 패턴,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한꺼번에

담았습니다. 전주 비빔밥의 고명을 얹는 원칙과 닮아있죠. 아니나 다를까 디자이너는 한국적 

미를 배출하는 방식을 비빔밥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제목만

강남이지, 전혀 럭셔리 하지가 않아서 그 모순된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비빔밥도 마찬가지다" 라고 주장

합니다. 비빔밥의 원칙은 단순한 뒤섞음, 패스티시적 미학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5가지의 색은 반드시 통일성

을 갖고 붉은 고추장의 색과 어우러지며 보색대비를 이뤄내야 하거든요. 석학이신 이어령 선생님은 

한국 음식의 미학을 논하면서 '한국음식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라고 말씀

하시죠. Becoming 되어가는 현재의 과정 속에 놓여진 음식. 이것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 

것이 바로 고명과 양념입니다. 고명에는 단순한 덧붙임이 아닌, 의미의 위계와

시각적 환영과 문법을 만들며 적층되는 어머니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블로그에 남긴 디자이너의 작품론을 읽어봅니다. 색에 대한 

치열한 생각이 오롯하게 드러납니다. 색에 대한 생각을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직조하는 그 생각의 소이와 그릇의 둥그런 표현이 참 곱고 소중합니다. 

"나는 작업을 통해 나의 삶의 팩트를 입힌다. 입힌 것을 다시 그린다. 때론 투박하게, 질박

하게도 그려 입힌다. 정형화를 버리고 자유하게 그려 입히고 싶다. 색을 칠한다. 나의 따뜻한 영혼의 

색을 칠한다. 색은 유혹이며 암호이며 영혼이다. 색을 비빈다. 생에 간을 맞춘다. 나의 삶의 

팩트를 가지고 오색으로 색을 비빈다" 오색은 비빔밥의 고명이 되어 생의 실루엣을 

담아내는 그릇에 영혼의 화석이 되어 담깁니다. 적층된 고명의 주름들 속에 

하나 하나 곱게 접은 우리의 열망과 기억을 소중하게 채워내는 것이죠.

 


살아가며 색에 홀리고, 끌리고, 쏠립니다. 색은 욕망으로서

우리의 지치고 비루한 생을 받치고 이끌며, 앞으로 추돌시키는 힘을 가진

일종의 스프링 같습니다. 색을 먹고 색을 입고, 색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방색이란 

존재가 언제부터인가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저 전통이라 하면 오방색과 단청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이 땅에서 전통의 현대화란 주제를 풀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작품을 한 마디로

미술사적 용어로 풀어쓴다면 맥시멀리즘(Maximalism)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냥 맥시멀리즘이란 단어로

번역없이 사용해서, 읽는 순간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요. 쉽게 말해 반대말로 쓰는 미니멀리즘을 떠올려보면 그 의미를 충실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맥시멀리즘이란 공공연히 너무 화려한 패턴과 색상을 배치함으로써 잉여의 느낌을 발산하는 

트랜드를 말합니다. 이것은 곧 겉으로는 화려함의 극을 행해 달리는 사회의 정신적 경향과 맞물려 있죠. 다양한 

색이 쓰일수록, 사실은 그 사회의 내면은 빈천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사회적 내면에 대한 반동으로써

극복을 위한 움직임으로 색의 찬란한 놀이를 보여주는 것이죠. 찬란함과 그 속에 숨은 내면의 빈약함

이 두 가지의 힘이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사회의 상처를, 우리 자신의 현실을 선연하게 

드러냅니다. 뉴욕에서 그의 작품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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