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세상을 전복하는 톰보이들의 세계-2013 S/S 이석태 컬렉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11. 4. 06:00

 


 

서울패션위크가 끝난지 정확하게 일주일이 지났다.

런웨이 공간에서 만나는 옷들의 현란한 유희들이 머리 속에 그나마

간직되어 있는 순간을 응고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옷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런웨이와 연극 무대를 비롯한 연희양식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런웨이란 연출 양식에 한해서다. 그만큼 순간에 명멸하는 옷들을 지켜보는 일은 은근히

에너지를 빼았는다. 모델이 옷을 입고 걷는 그 순간, 디테일과 전체적인 실루엣

인간의 몸에 착장된 상태의 스타일링, 걸을 때 드러나는 옷과 인간의

바스락거림, 설명하기 힘든 정서적 교류가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감각을 총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칼 이석태, 그는 언제부터인가 한국패션이 기대할 수 있는 든든한

기호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으로 친구가 된 이후, 블라섬 인 서울 콘테스트

의 심사위원으로 그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이 컸다. 평소에 좋아하는 디자인의 면모를

보고 싶기도 했고, 그의 말투와 어조, 목소리의 톤과 질감, 위원들끼리 생각을 나누는 자리에서

혹은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후보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의 종류와 내용, 이런 것들이 궁금

했다. 인콰이어지는 그가 추구하는 패션의 미학을 '구조적 아방가르드'라고 규정

했다. 이 말은 두 개의 층위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데 첫번째는 옷을

디자인하는 방식일 것이고 두번째는 삶과 인간을 대하는 태도다.


 

패션은 끊임없이 일반 소비재보다 시즌을 앞서간다. 누군가

걸어야 할 궤적보다 앞서 세상의 풍경과, 마름질된 실루엣의 형상을 엿본다.

패션은 소비재 중, 진도가 가장 빠르다. 그만큼 타인의 시간과 격자구조를 넘어 우리에게

가져야 할 어떤 것에 대해 '논의하는' 정신의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때 아방가르드는 단순히

전위부대란 본 뜻을 넘어, 척후병이 된 디자이너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그의 옷에는 정결한

일련의 구조가 입혀져야 한다는 뜻이리라. 디자이너에게 구조란 인간을 매개로한

염결에 가까운 형태의 재현이며, 이는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파리의상조합

에서 정교한 패턴재단을 익힌 재원답게, 그의 옷은 철저한 피트감이

살아있다. 그의 옷에 반한지는 3년 쯤 된다. 사실 이번에도


]

 

케이 패션 영문판을 쓰면서 10대 디자이너로 그를 쓰고 싶었다.

해외 출판사와의 계약이 원만할 듯 하여 다음 기회에 더욱 깊게 그를 쓰고

싶은 욕망이 생겼기에 차기로 미루었다, 동시대 디자이너들 조차도 그의 정확한 피트감

과 구조적인 안정성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파리 의상조합을 졸업한 후, 스튜디오 베르소에서 

공부했다. 철저한 구조 위에 철학적인 사유의 몫을 더한 것이다. 전위성을 강조하는 학교에서

디자이너는 자신이 사랑하는 세계들을 한땀한땀 정신의 아교로 붙여낸다. 그 세계는

장인의식과 스트리트 패션의 결합으로, 서구와 아시아적 연상관계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힘을 실어내는 부분과 균형감일 것이다.


 

작년 봄/여름 컬렉션의 테마는 Water from Water였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색면 덩어리와 비대칭에 있었다. 기하학적인 생각, 그래픽처리, 그 위로 촘촘하게

접혀들어가는 믹스 앤 매치의 느낌. 화이트와 블랙, 밝은 블루가 다양한 색의 그늘 위에서 편안한

호흡을 취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오간자와 새틴소재로 표현한 낭만주의의 정조와 록앤롤이 정서가 깔끔하게

하나로 뭉쳐들었다. 이번 봄/여름의 테마는 White Boy다. 하얀 소년은 무슨 뜻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화이트를 주조색으로 사용하되 강렬한 원색들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하고

색면이 조화되도록 한 노력들이 놀라왔다. 1920년대 톰보이들 탄생한 플래퍼의 시대를

떠올려봤다. 어느 시대나 젠더의 문제는 중요했다. 우리가 흔히 여성성/남성성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시대별로 강조점이 달랐다. 1920년대는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공식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남성의 삶과 문법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던 시대다. 여인들의 머리는 짧아졌고 샤넬은

이 시대를 찬미하며 남성복 소재로 쓰던 저지를 이용해 톰보이룩을 선보였다.


 

어느 시대나 삶의 조건 속에서 여성의 삶은 다양한 도전과 맞부딪친다

저 화이트의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생각해본다. 햇빛의 경우 가시광선에서

여러가지 색의 빛이 혼합될 때, 백색이 된다. 빛의 삼원색이 더해졌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백색광이다. 결국 화이트는 모든 빛이 더해진 상태의 표면이다. 런웨이를 흐르는 하얀달빛

같은 세상, 그 위로 자연스럽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활보하는 모델들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사선으로 비딱하게 기울어진 캡을 쓴 모델들이 화이트와 블랙

삼원색이 여백의 공간 위에서 균질하게 배열된 옷을 걷는 시간.

다시 한번 타고난 균형감각을 가진 디자이너를 발견한다.


 

부분과 부분이 연결된 옷의 관절들은 이음새없이 미니멀리즘의

매력을 한껏 토해낸다. 후쿠시아 관목의 붉은 자홍빛이 백색 가득한 세상을

캔버스 삼아 주변부에 피어난 모습은 인상깊다. 세상의 빛을 흡수하는 당당한 여인들의

세계 위로 피어나는 꽃처럼, 톰보이가 된 여인들의 어깨는 그 어느때보다 힘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