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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기고를 마치고-우리가 써야 할 올바른 모자는 무엇인가

패션 큐레이터 2012. 8. 15. 23:42

 

모자는 맛있다

 

이번 주 시사 주간지 <시사 IN>에 모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기고했다. 다름아닌 런던 올림픽 때, 인기(?)를 끈 MBC 방송국의 양승은 아나운서의 모자 패션에 관한 글이었다. 딤섬 찜통 모자에서 메론 모자에 이르는 그녀의 런던발 17개의 모자 컬렉션이 왜 대중들의 시니컬한 반응을 이끌 수 밖에 없었을까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봤다.

 

모자의 역사에서 부터 현상학,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표현의 매개로서의 모자에 대한 다양한 표정을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처음 시사인의 문화부분을 책임지는 고재열 기자에게 문자를 받았다. 양승은의 모자에 대해서 글을 써주면 어떻겠는가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는 패션에 대해 글을 쓰지만 연예인들의 옷차림, 혹은 우리들을 항상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버리는 공항패션, 누구의 스타일링 따위의 제목이 들어가는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쓸줄 몰라서 안쓰는 게 아니고, 이런 글들이야 말로, 누적되는 텍스트로서의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패션이 그저 누군가의 옷차림에 대한 소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패션은 세상을 읽는 렌즈로서, 혹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표현의 도구로서, 혹은 개인의 정체성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거울로서 설명하기란 정말이지 어렵다. 하나같이 패션 칼럼니스트란 자들은 '연예인 누구를 잘 안다더라' '그 언니의 생리일이 언제라더라' 이 따위 소리나 방송에 나와서 떠들고 있다. 최근의 경향은 오히려 패션과 예술을 넘어, 패션을 사회를 읽는 일종의 정신적 나침반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이 나라에서 패션이란 그저 한담거리, 혹은 트랜드에 대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짧은 단평들이 다다.

 

 

이번 양승은 아나운서의 모자패션이 불러 일으킨 화두는 무엇보다 그녀의 말처럼 '영국문화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를 이야기 한 그녀의 관점이 왜 틀렸는지, 틀렸다면 어떤 맥락에서 틀렸는지를 밝히는데 최선을 다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리이시와 관련된 내용들도 포함시켰다. 그가 만든 모자가 사회 속에서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어떤 매력을 발산하는지, 또한 이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의 시선은 어떤지도 알아야 할 듯 싶다. 

 

 

런던발 모자 패션이 우리 사회에 울려주는 목소리는 무엇일까? 어찌보면 MBC의 지난한 언론투쟁의 시간들이 그 속에는 앙금처럼 담겨있는게 아닐까? 왜 영국의 상층부가 쓰는 저 패서네이터와 아름다운 깃털 모자를 쓴 한국여인에게, 네티즌들은 공분과 비아냥을 보낸 것일까? 스타일링 상의 문제였을까? 아닐 것이다. 역사 앞에서 부채의식을 갖기 보다, 자신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빛낼 목적으로 부채를 소품처럼 들고 다닌 그녀의 정신성이 문제였을 것이다.

 

 

양승은의 모자 패션에 대한 다른 언론사들의 글을 읽어봤다. 하나같이 모자를 둘러싼 사회적 공분의 뿌리를 밝히느라 바빠서, 모자가 가진, 혹은 그것을 착용하는 집단과 역사에 대해서는 말하는 걸 못봤다. 그러니 복식사가인 내겐 이러한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 거다. 우리는 한 벌의 옷을 통해, 시대의 정신적 단층을 읽는다. 단층이란 연결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그러나 시간의 흐름을 설명해주는 땅의 형상일 터. 패션은 한 줌의 흙처럼 누적되며 시대의 표정을 담는다. 양승은 아나운서의 패션 또한 그렇다. 그녀의 주장과 달리, 영국적 전통에 대한 그녀의 오해와 '돋보이려는' 그녀의 욕망 사이엔 애꿎은 모자란 소품에 대한 폄하의 감정만 생겨날 까 두렵다. 우리 조선은 모자의 나라였다. 실내와 실외, 야외에 따라 정말 많은 종류의 모자를 쓴 민족이다. 그러니 우리가 '모자가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이란 모 기자의 표현은 좀 틀렸다고 봐야지 싶다.

 

 

패션 테러리즘이니 하는 식의 표현들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그저 모자에 담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늘어놓았다기 보다, 모자에 대한 다양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모자를 쓰는 일도 한 벌의 옷을 입는 일에 포함되는 일종의 제의이기에, 이것 또한 쌓이면 우리의 역사가 되고, 타자들의 역사가 되기에 말이다. 왕조역사를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그들의 지난 시절 식민주의의 역사에 오마주를 보내는 그녀. 양승은의 모자가 일종의 테러를 가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우리에게 올바른 모자, 이성의 자리를 감싸안는 모자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져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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