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영화 <오래된 인력거>의 이성규 감독을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2. 8. 15. 18:03

 

 

그의 때묻은 인력거, 내게로 오다

 

이번 주는 부산함의 연속이었다. 자유예술캠프의 <패션, 영화에 홀릭하다>가 시즌 3을 맞아 종강을 했다. 오랜동안 함께 해준 이들과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누적된 글쓰기는 내 안에서 광폭한 상처들을 남긴 탓인지, 요즘 내 몸이 말이 아니다. 피부약을 먹고나면 정신이 몽롱해질정도로, 대상포진 초기의 약은 강도가 세다. 몸을 추스리고 감독님을 뵈러 갔다. 이성규 감독님께서 지난 5월, 내가 제작해서 올린 연극 <서정가>를 관람하기 위해 혜화동의 극장으로 오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이 있어 이후의 교감과 교류가 이어졌으나 실제로 뵙고 이야기를 해본 건 어제가 처음이다. 최근 이성규 감독님의 새로운 도전을 보고 싶었다. 그가 착수한 첫 극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의 준비과정을 담기 위한 미팅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다. 말 그대로 극의 구조를 가진 영화여야 한다. 다큐가 가진 성찰의 힘보다도, 관객을 흡인할 수 있는 장치를 삽입하고 당장 마케팅과 배급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구조로 바뀐다는 뜻이다.

 

배우들의 리딩이 이어지고 있는 오피스텔로 들어가, 그들의 대사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대본 내용에 대한 개괄적인 부분만 알고 있을 뿐, 실제 내용을 모르다보니, 배우들의 목소리를 열심히 경청할 수 밖에. 이번 장편 극영화를 위해 혜화동의 많은 무대를 뒤지고 다녔을터다. 선정된 배우들의 면모는 일일이 다 알수 없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그들의 리딩을 들으면 된다.

 


자칭 연극무대 경험이 10년이 어떻고 이력이 어떻고를 이야기하는 배우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발성 안되는 친구들이 부지기수고, 어줍짢은 선배 따라하기와 모방연기가 판을 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마냥 연극배우 출신임을 들먹이는 배우들을 좋아하지만은 않는 건 이런 이유다. 대학로 연극판에서, 연기자로 돋을새김될 수 있는 배우들의 가능성은 그만큼 좁고 치열하다. 감독님께서 최선을 다해 픽업한 배우들이라 믿고 그들의 대사 속에서 감정선을 따라 가봤다. 나쁘진 않다. 게다가 블로킹 선도 잡히지 않은 말 그대로 초연상태의 대사들이 아니던가? 날것의 세계 속에서 참신함을 찾아내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무엇보다 영화 <오래된 인력거>를 통해 믿음이 생긴 감독님이 아니던가? 비록 한 편의 영화를 봤지만, 한 편에는 그가 살아온 온 생이 담긴다.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의 운명이다. 내가 기억하는 이성규 감독님의 영화는, 적어도 날것들의 세계가 통찰력으로 변모되는 무대다. 가슴뛰게 만드는 치열한 생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의 텍스트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극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제작한 연극을 보신 탓에, 연극 무대와 패션을 통합하는 구조로 뭔가를 보여주려는 프로젝트란 '얼개'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였다.

 


의상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게 될 공산이 커졌다. 가난하고 열악한 독립영화 제작 환경을 모르지 않는다. 물론 내 인생의 이력은 운좋게도 이런 걱정을 다소 덜어내고 시작하는 극영화로 시작되었지만, 항상 응시의 시선은 힘들게 작업하는 이들에게 가있었다. 음악을 맡아준 가수 하림을 비롯, 이 영화를 돕는 손길들의 면모가 의외로 괜찮다. 나 또한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의 포문을 연 첫 만남. <시바, 인생을 던져>는 여행을 통해 성장해가는 이들의 이야기일 듯 싶다.

 

배우들의 특징과 캐릭터를 끌어내는데 작은 목소리라도 내면 좋을 듯 하고. 연극과 패션 퍼포먼스까지 연결된 작업으로 발전한다니, 할수 있는 부분을 끄집어내어 도움을 드려야지 싶다. 다큐멘터리와 달리 극영화는 의외의 복병들이 많다. 일단 신인배우들을 기용할 경우,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부분들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 특히 연극배우들을 기용할 경우 연극조가 최대한 없어진다고 해도, 실제로 가보면 아닌 경우도 많다. 특히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여서, 현지촬영을 하며 힘든 일도 부지기수일텐데. 보조역을 자청해 도움을 드리기로 했다. 지금으로선 의상과 이후에 계획할 패션 퍼포먼스와 연극 부분에서 조금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듯 보인다.

 

그저 좋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기쁨을 얻는 것이 중요하겠지. 배우 캐릭터로 고심해야 할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쉽지는 않아 보인다.
 밀린 월세며, 함께 하는 영화가족들을 챙기시느라 너무 힘들고 쉽지 않을 이성규 감독님께 박수를 보내며, 우선은 열심히 뛰어보기로 한다. 더불어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가 단지 세상에 대한 푸념거리와 욕지기로서의 시바가 아닌, 인도의 신 시바의 은유답게, 그 깊고 긴 터우리 속에서 우리가 함께 성장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시바, 세상에 한번 나를 던져보자고 그렇게 자문하고 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