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나전칠기, 현대예술을 만나다-슈어홀릭을 위한 마법을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2. 7. 19. 23:31

 


최근 열심히 발품을 팔며 전시를 보고 있습니다.

덥다고 맨날 사무실에만 앉아있을 수도 없는 일이구요.

화요일에는 프랑스 대표 그림책 작가전을 봤습니다. 요즘 신사의

품격이란 드라마에서 한창 소개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 작가의 그림을

눈에 담고 왔지요. 오늘 소개할 전시는 패션 큐레이터로서, 아주 흡족한, 마음에 드는 전시

인데요. 바로 부티크 모나코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부티크 BMM>전입니다. 



이 전시는 원래 패션과 건축, 디자인을 한 자리에 결합시켜 

전시의 방식을 통해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부티크 모나코 뮤지엄의

존재론을 말해주는 그런 전시였습니다. 통영에서 활동하고 계신 나전칠기의 장인

김종량 선생님과 함께 자개를 이용해 현대적 관점의 재해석에 도전한 6인의 현대작가들의 

작업이 선보였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이번에 <톤 온 톤>이란 주제로 작업을 한 구두 디자이너

이겸비씨고요. 원래 친한 디자이너이고 지인이라 바로 전시장으로 갔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이신우 선생님도 모시고 가서, 작업들을 봤습니다. 전시에 앞서서 작가들이 자신이

자개를 어떻게 해석해서 표현하려 했는지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는데요. 갑자기

겸비씨가 울컥 우는 거에요. 어찌보면 이신우 선생님의 제자 중의 한 분

인데, 선생님이 전시를 보러오셔서, 더욱 그 마음이 진했을터에요.


작은 여담인데, 이날 제가 이신우(CINU) 선생님 모시고

단 둘이 저녁식사를 했답니다. 선생님도 이겸비씨를 워낙 아끼세요.

"사실은 예전에 에스모드 졸업하고 바로 이신우 브랜드에 들어와서 잡화를 맡았어요

여성복을 전공했는데, 잡화를 시켜서 사실은 속으로 미안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되집어보면

그때 잡화팀을 맡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한국에서 자랑할 만한 수제화 디자이너, 구두 디자이너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신우 선생님의 멋진 디렉터십이 없었다면 이건 어려웠을 일입니다. 제가

요즘 책을 쓰는 문제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다니는데요. 이신우 선생님처럼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은 참 만나기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전칠기 장인 김종량 선생님이 재현한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작품도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전칠기의 기술을 현대 작가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개란 우리의 전통기술과 미학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것을 변용하는

일입니다. 결국 오랜 시간의 누적 속에서 자연이 빚은 조개의 빛깔, 그 찬란하고 유연한 빛감이 

자연스레 토해내는 질감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산물이니까요. 서양 또한 귀갑이라 해서 

거북이의 등껍질을 이용해 자개로 썼습니다. 그 가치는 동 서양이 동시에 알았죠.



이런 자개기술을 적용해서 보석과 디자인,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선보여서, 보는 저로서는 눈이 크게 호강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삼웅 작가님의 보석함 작업이 좋았고요. 이 분은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

과도 작업을 자주 하셨던 분이라 더욱 눈에 들어왔던 거 같습니다. 이외에도 아이큐브랩이 디자인한

시계도 인상적이었고요. 부산 사투리를 구수하게 사용하던 김은학 작가님의 작품도 좋았어요. 

500년의 역사를 가진 통영의 나전칠기는 고려시대의 섬세하고 화려한 귀족적인 디테일과

조선시대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순수하게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지요. 그만큼 우리

시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장식공예의 핵심이며, 귀한 역사입니다. 



이 작품이 바로 이삼웅 작가님의 보석함이고요.

 



제가 좋아하는 겸비씨의 작업입니다. 투명 크리스털 안에 

레이스를 함께 삽입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예술적 오브제로 변모한 구두의 

실루엣을 찍느라 카메라 셔터를 꽤 오랜동안 눌렀습니다. 발은 가장 비루한 곳에서 인간의 삶을 

탱하고 움직이며, 살아있음을 숨쉬게 합니다. 그 발을 위한 성소, 신발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오롯하게 

담아내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그릇이지요. 이번엔 투명한 톤과 톤, 마치 의상의 레이어드 룩처럼

겹쳐입기로 표현된 맑은 자개들의 현란한 빛감은, 한 차례 시각적인 놀이를 눈앞에서 

펼칩니다. 아름답지요. 저도 이 작품은 소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개 조각을 붙여서 보석처럼 박아 넣었죠. 신발이 아닌 보석 그 자체로 보입니다.



이 작품이 아이큐브 랩이란 디자인 공방에서 내 놓은 것이에요.

시계의 중심부, 표면의 배색구조로 되어 있는 부분이 바로 자개를 이용한 

것이랍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자개 특유의 윤택함과 빛깔의 활성이 아주 잘 드러나요. 

디자인 상품으로 개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런 의중을 갖고 이번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니 차후의 마케팅은 뮤지엄에서 프로젝트 차원으로 끌고 가겠죠. 



이번 전시를 보면서 마음이 한편 기뻤던 것은 이제서야 우리가

전통의 텍스쳐, 무늬, 기술을 어떻게 변용하는가, 어떤 방식이 과거의 

단순한 차용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변주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괜찮은

시도와 답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미진합니다. 사실 작업 중 일부는 냉철한 크리틱을

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수부처 쳐줘야 할 때란 생각이 들어요.



6개월 넘게 작업한 자신의 아이들을 설명해 주시는 겸비씨.

언제봐도 참 구두쟁이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지요. 그래서 제가 좋아해요.

자개란 결국 조개가 자기치유를 위해 분비하는 액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진주, 그 산고의 과정에서

견고해지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갖게 된 조개의 껍질을, 제 2의 피부를 이용해 만드는 예술입니다. 어느 예술이나

모두 그렇듯, 상처없이, 극복하려는 용기 없이 새로운 것들은 만들어지지 않죠. 그래서 이런 시도가 처음엔

조악하고 다소 부족해보일지 몰라도, 자꾸 진행하고 누적되다 보면 멋진 빛깔을 가지게 될 것이란

것 저는 항상 확신하고 살아갑니다. 저 또한 한국의 공예기술을 프로모션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정영양 박사님께서 재단을 설립하신 이유도 사실 공예의 부흥이란 

목표에 계셨고요. 저 또한 그 뜻을 열심히 도와드려야 합니다. 할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진 우리 자신의 찬란함을 찾을 때까지요. 

우리에겐 넘지 못할 산이 없습니다. 그걸 믿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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