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오프닝에서-여인과 잇백은 하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2. 8. 1. 06:08


뒤늦은 전시관 오프닝 후기를 쓰는 시간. 이번 가로수 길에 개관한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오프닝 행사에 다녀왔다. 나로서는 한국에도 테마형 패션 박물관이 생겼다는 자부심과

즐거움이 컸고, 또한 이 곳에서 일하게 될 큐레이터도 블로그를 통해 만나 오랜 동안 함께 이야기 하며 

꿈을 키워온 친구이기에 더욱 기뻤다. 예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있는 <핸드백 지갑 박물관>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개인 소장품으로 이뤄진 공간이지만, 핸드백과 지갑이라는 주요한 

패션의 소품을 통해, 여인들의 삶과 역사를 관통해내는 시각이 새로왔다. 



이번 핸드백 박물관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와 명품 업체와 함께 

파트너로 일하는 가방전문기업 시몬느가 3년여의 시간에 걸쳐, 크리스티와 소더비와

같은 굴지의 경매장과 개인 컬렉터들을 설득해 모은 350여점의 역사적인 핸드백들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패션 큐레이터이자 복식사가이며, 영국의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에서 

패션 큐레이션 과정을 가르치는 주디스 클락이다. 나 또한 이 분야에 꿈을 키우며 그녀의 책과 

전시 논리를 철저하게 공부했다. 특히 현대복식을 다루는 그녀의 관점은 항상 새로왔다. 

이번 오프닝 때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나 또한 답례로 내가 쓴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선물로 주었다. 나 또한 그녀의 책에 싸인을 받았다.



가로수 길에 핸드백의 실루엣을 딴 멋진 건물, 백 스테이지에 바로 

오늘 소개하는 핸드백 박물관이 자리한다. 원래 백 스테이지란 연극에서 

배우들이 무대에 나서기전, 분장을 비롯한 준비를 하는 장소다. 관객과 전면으로 

만나는 프론트와 그 후면의 무대는, 어찌보면 인간의 삶과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의 인상과 표정을 관리한다. 패션 또한 이러한 인상관리 체계의 일환이기도 하다.

16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핸드백은 여인의 착장을 완성시키고

방점을 찍어주는 역할을 하는 불가결의 소품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핸드백 박물관

은 단순하게 역사적 유물의 보존소가 아닌, 역사를 통해 현대의 디자인까지 접목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장소가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패션을 도와주는 후면의 기능

이번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의 개관이 갖는 첫번째 의의가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들과 협업한 특별 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이름하야 <이탈리아의 회전목마>다. 펜디와 프라다, 구찌, 에밀리오 푸치, 미소니와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와 같은 브랜드를 통해 이태리의 역사와 전통을 표현하는 색깔을

그들의 브랜드와 제품에 어떻게 반영시켰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아주 중요한 브랜드의 과제다.

브랜드 중심 사회에서, 단순히 유연한 자본축적의 첨병으로서의 브랜드가 아니라, 인간의 

소비문화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빚어내는 무기로서, 브랜드가 역사를 통해 어떻게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그들의 미감을 조율해왔는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지상 1층에 들어설 0914 매장은 25년간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와 디자이너 브랜드에

핸드백을 납품해온 시몬드의 자체 브랜드다. 시몬느가 파트너로 일하는 회사의 이름을 일일히

거론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가령 레베카 민코프, 마이클 코어즈,  밀리를 비롯하여 셀린느, 코치, 겐조

지방시, 마크 제이콥스, 로에베 등 이외에도 더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 브랜드 핸드백은 사실 한국이 만든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몰랐던 것이다. 우리가 가진 가죽기술, 충무를 비롯한 지역에서 가죽 공정을 유지

하며 우리가 독창적으로 발전시켜왔던 피혁문화의 제조기술에 대해 말이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예전부터 이 문제를 

심도깊게 지적하며, 이 땅의 장인정신과 현대의 패션 브랜드가 함께 협업을 해야 한다고 이곳에서 주장해왔던 

나로서는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들이, 내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잉태되는 걸 보면서 작은 기쁨을 느낀다.



패션 아카이브가 있어야 하는 이유, 전문 패션 박물관이 한국에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블로그를 통해 수십차례 목이 터지도록

이야기 해왔다. 작금의 한국 시장에서, 패션에 대한 깊이있는 안목 대신 해외 유명 

브랜드에 우리자신이 끌리고, 스스로 우리를 무시하고 우리가 가진 장인기술을 더욱 멸시하는

정신적 천박함의 배후에는, 우리 스스로가 역사에 대해 엄정한 지혜를 갖지 못해서다. 



이번 행사 오프닝에서, 박은관 회장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본다.

그는 이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이 "핸드백을 디자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아이디어를 쇼핑해갈 수 있는, 그렇게 가방에 담아갈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이 말에 공감한다. 



우린 여전히 역사를 왜 공부하는지 모른다. 이것은 스타일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양과목 배우듯, 한 학기 교양수업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이 땅의

의상학과 교육 내의 복식사 과목을 보면서, 참담했다. 왜 서양에서 6학기를 가르치는지 이제

이곳에서 설명하기도 귀찮다. 우리가 이런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우리는 철학과 미학, 역사에 대한 이해를

패션에 접목하기 보다는 그저 바느질 잘하고 재단 잘하는 기능인만 열심히 키워냈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더 높은 지식은 유학가서 배우라고 뻔뻔스레 말하는 교수들이 있다. 이것이

이땅에서 답답해하는 의상학도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실제적인 현실이다.



시간을 내어 350여개의 컬렉션을 하나씩 다 살펴볼 생각이다.

물론 역사적인 핸드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탄탄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이번 뮤지엄의 개관과 더불어 편찬된 도록은 제품에 대한 깊이있는 해석까지 갖추어서

더욱 읽을 힘이 난다. 이런 멋진 경험을 하게 해준 박물관 측에 고마울 뿐이다. 이런 경향들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반증으로, 모 지방에서 패션 관련 박물관을 설립하려고 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패션관을 만들고

여기 들어갈 내용에 대해 자문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는다. 언제든 이러한 꿈을 위해서 달리는 일은 

지치지 않는다. 블로그로 소통하기 시작한 12년의 시간, 드디어 속살을 찢고 잉태되는 행복한

꿈의 흔적들이, 아름다운 실의 자수를 입기 시작한 셈이다. 열심히 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