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우리가 가져야 할 옳은 몸은 무엇인가

패션 큐레이터 2012. 8. 8. 04:38

 

 

패션, 인간의 몸을 가두다

지난 일요일 오후,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 다녀왔다. 성교육 담당교사들을 상대로 <패션과 자아>란 제목의 특강을 했다. 역사에 따라 변해온 인간의 이상형과 스타일, 그 방식에 따라 착장의 문법을 바꿔온 것이 패션의 역사다. 타인을 향한 자신의 긍정과 그들로부터의 인정투쟁의 장을 만드는 것도 패션이다. 이 영역의 숙명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주조된 몸'의 이미지를 갖기 원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늘었다는 점일거다. 패션의 역사는 결국 인간이 자신의 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발전하게 되는 역사다. 중세 말기 패션 개념의 탄생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탐미의 시대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치며 서양은 화려한 패션의 문법을 탄생시켜왔다. 자신의 몸에 대한 자각은 항상 큰 역할을 했다. 위대한 시대, 발흥하는 식민주의의 시대, 서양은 자신의 몸에 패드를 넣어 더욱 커보이려는 시각적 환영을 만들려고 했다.

 

최근 www.facethejury.com 같은 사이트의 시각적 공간에서 10대 청소년들은 자기 사진을 올려놓고 다른 사용자들이 1에서 10점 척도 사이의 점수를 매긴다. 조작사진이지만 아이들은 이곳에서 섹시함을 추종하며 스스로에게 주조해낸 멋과 운을 시험한다. 아이들은 실제 연령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게 옷을 입고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현상, 바로 나이압축(age compression)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유아용 브래지어에서 아기용 스틸레토 힐을 파는 곳도 있다. 우리시대의 패션은 이런 풍조에 따라, 더욱 인간의 몸을 압착하고 길고 마른 몸을 조형하느라 정신이 없다. 사실 다이어트가 여성들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건 이미 1930년대 부터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코르셋에서 해방된 여인들은 스포츠 활동에 참가하면서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한 선탠에 빠져들었다. 이때 햇살에 탄 구리빛 피부를 가진 여인들이 추앙되었고 그들을 위해 패션은 백색 의상들이 시장에 속속 인기를 끌며 나타났다.

 

네 몸은 잘못이 없어, 이제 그만 아프거라

최근 체질량 지수(BMI, Body Mass Index)가 다이어트의 기준인양 추앙된다. 사실 이 지수는 실제 몸의 비대함을 표현하는 지수가 아니다. 이걸 만들어낸 19세기의 플랑드르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통계학자다. 보험회사에서 피보험인들을 분류하는 기준에서 만들어낸 수치가 왜 우리들을 이렇게 괴롭히는지는 곰곰히 물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와 패션 잡지, 영상 미디어가 주조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디지털 기술을 통해, 실제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가상의 이미지들이 많다. 아이들은 이것을 자신들이 따라잡아야 할 실제의 몸으로 착각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치룬다. 세상은 나의 몸과 타인의 몸이 함께 만드는 창조적 공간이다.

 

이번 강의에서 몸과 섹슈얼리티, 패션 이미지의 변천사와 그 이유, 유행하는 옷과 패션이 몸과 의식에 미치는 영향, 이외에도 자기표현과 이미지 연출 도구로서의 패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법에 대한 강의를 했다. 일반적인 내용 같지만, 사실 꼭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지 않고도, 패션의 역사와 심리학을 통해서 재구성해볼 수 있는 영역이고 의미는 아주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시대는 신체의 불안정성을 토대로 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신체에는 각각의 문화적 지령들이 각인되어 있고 모델과 셀러브리티, 걸그룹과 같은 획일화된 몸의 형상이, 이상형이 되어 이 땅의 우리들이 그들의 몸을 사본 뜨듯 각자의 몸에 입히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아니 전쟁을 벌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시대일 수록 청소년들에게 옳은 몸에 대한 생각, 감각이 살아있는 몸을 갖기 위해 패션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옳은 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항상 몸틀을 만들고 산다. 틀이란 결국 마치 용해된 금속을 넣어서 칼을 만들어내는 거푸집과 같다. 새로운 시대는 항상 새로운 몸의 거푸집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유와 행동, 사랑의 기억 등 다양한 몸의 기억을 그 틀 속에 넣어서 우리 자신의 몸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공부를 위한 몸의 틀만을 만들면서 산다. 이성과 감성, 이것들을 응축시킨 감각의 몸을 만들지 못한 채, 머리속에 뭔가를 지속적으로 압축하고 외우느라, 몸을 이용해 외우는 버릇을 들이지도 못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세상이 그들에게 그런 몸을 강요했다고 봐야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몸, 감각적인 느낌을 갖지 못하는 몸을 갖고 사는 인생은 행복하지 않다. 아름다움 앞에서 떨림을 표현할 수 있는 몸을 갖는 일. 이 땅의 청소년들이 진정 가져야 할 몸이다. 난 패션이 이런 몸을 갖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패션은 우리에게 '이런 몸을 만들어서 이 옷을 입어야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너의 몸이 어떻든, 옷을 통해 타인들이 너를 향한 인정과 시선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 그것이 패션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패션의 진정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