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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영화 '내가 사는 피부'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1. 19. 05:54

 

 

우리들의 삶은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나는 이상하게 거미라는 소재 혹은 제목이 들어가는 작품에 끌린다. 마누엘 푸익이 쓴 <거미여인의 키스> 영향이 크다. 작년 여름 뉴욕에 다녀와 우연히 서점에서 고른 에리히 종케의 <독거미>. 거미는 패션과 텍스타일의 역사와 미학을 공부하는 내게는 일종의 상징 같은 곤충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몸을 먹어야 하고 이를 위해 촘촘한 은폐막을 치는 존재. 거미줄에 걸리면 표면의 끈적거리는 촉수에 무차별 당한다. 왠만한 말벌이나 곤충들 모두. 스페인 출신의 영화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내가 사는 피부>란 영화의 원작으로 <독거미>를 삼았다. 거미줄에 포박된 각각의 생들은 서로 얽히고 때로는 각혈하고 증오하고 또 사랑에 빠진다. 정신없이 다층적인 의미의 망으로 엮인 스릴러 소설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 앞에서 영사를 통해 강독될 때, 각각의 등장인물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치열한 심리전을 살펴보는 재미가 탁월했다.  개인적으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광팬이다. 그의 모든 필모그라피를 꿰차고 있다고 자부하는 내겐, 이번 영화는 그의 영화 중 가장 잔혹한 방점을 찍는다. 교통사고로 인한 화상으로 아내가 죽은 후 저명한 성형외과 의사인 로버트 박사는 12년간 그만의 비밀실험실에서 완벽한 인공피부를 만드는 데 집착한다. 그의 은밀한 실험대상인 베라는 박사의 대저택 안에 감금되어 자신을 보호해주는 바디슈트만을 입은 채 생활한다. 그녀는 프랑스의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으로, 은폐된 자신의 운명을 달랜다. 부르주아의 작품 중 대표작인 <마망>은 리움 미술관의 파사드에서도 볼 수 있다. 바로 거미조각이다.

 

물론 영화 속에선 부르주아의 후기작들, 대부분 여성성을 강조하며, 환희와 열망,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언뜻 언뜻 지나간다.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루이즈 부르주아를 영화상의 소품으로 사용했을까? 그건 부르주아가 말년에 자신의 성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부르주아의 조각상을 그대로 흉내내어 만든 조각에 껍질을 하나씩 붙이는 장면을 감독은 꽤 여러번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심어놓았다.

 

부르주아는 어머니, 그리고 부르주아 형제들의 영어 가정교사이자 아버지의 정부인 세이디(Sadie), 성적(性的)으로 문란한 언니 앙리에뜨(Henrietta), 그리고 사디스틱한 성격의 남동생 피에르(Pierre)와 함께 살았다. 1960년대, 70년대의 부르주아의 조각들은 신체의 성적(性的) 이미지들, 특히 남녀의 섹슈얼리티가 통합된 양성(兩性) 이미지들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했다. 형태면으로는 1940년대, 50년대의 기하학적, 추상적인 경향으로부터 사실적, 유기적인 경향으로의 이행을 보이면서 보다 상징적인 서술성을 띠게 된다. 그녀는 인간, 특히 여성의 성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부르주아의 예술세계에서 발견되는 양면성을 조각을 통해 표현해왔다. 즉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 폭력과 에로틱함, 가학대증과 피학대증, 그리고 내부와 외부라는 이원적 범주 나누기는  부르주아 조각에서 자주 자웅동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동시다발적으로 던진다. 그녀가 입고 있는 바디슈트는 '제2의 피부'로서 패션을 고민하는 내게 많은 생각의 타래를 던진다. 방에 갖힌 여자는 왜 남자를 증오하면서도 그에게 매달려 사랑을 갈구하는 것일까? 스톡홀름 신드롬이란게 있다. 포로로 잡힌 이들이 그들을 감금한 자들을 오히려 동정하게 되는 심리를 말한다. 과연 창조자는 피조물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일까의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과 가라테의 이야기처럼, 성형외과 전문의인 로버트는 베라를 만든 장본인이고, 그녀를 저주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 사랑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감추어져있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통합된다. 만만치 않은 이야기 구조다. 결말도 충격이고. 더 이상은 말하지 못하겠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뮤즈인 페넬로페 크루즈를 빼어닮은 엘레나 아나야의 연기,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절제된 연기, 둘 다 합격점이다. 영화평을 쓰면서 이렇게 주저해보긴 처음이다. 알모도바르......그는 정녕 귀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