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오래된 연애의 미래는 무엇인가-영화<미래는 고양이처럼>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6. 11. 21:55

 

 

 

오래된 연애의 미래는 무엇인가>

 

분주하게 보낸 지난 주말이었다. 두 개의 사진전과 한 개의 가구전을 봤고, 가로수길에 들러 브런치를 먹었다. 이후엔 다시 광화문 시네큐브로 직행. '보암직한' 작품이라 찍어놓고선 결심이 서지 않았던 영화 <미래는 고양이처럼>을 봤다. 칸 영화제와 선댄스에서 특유의 영화언어를 선보이며 극찬을 받았던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작품이란 점도 한몫했다. '두 남녀의 예측불허 미래가 시작된다'는 카피문구에서 고양이를 등장시킨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영화를 보는 일도 향수를 뿌리는 일과 같아서 처음엔 느낌만 강렬할 뿐, 그 실체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며 내 몸의 향과 하나가 되며 영화의 의미들은 내 안의 경험과 만나게 된다. 마냥 새롭지만 않은 설정, LA의 작은 아파트에서 4년째 동거 중인 제이슨과 소피, 이 오래된 연인들이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에게도 첫 만남의 설렘이 있겠지만 만남의 강도란 세월 속에 마모되고 '서로에 대한 알아감'이란 과정속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으로 화하듯, 영화의 첫 시작은 서로에게 관심없는 일상의 한 부분을 돋을새김함으로써 시작한다.

 

 

소피는 무용센터에서 춤을 가르친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깡총깡총'을 가르치며 진부하기 짝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막춤을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 일만회가 넘었다며 자랑하는 무용센터 리셉셔니스트. 그녀의 자랑질 속에서 소피는 기가 죽고 왠지 모를 답답함에 사로잡힌다. 웹사이트의 기술담당을 맡아 근근히 생활을 꾸려가는 남자친구 제이슨과의 동거는 변화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물론 남자친구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동물보호센터에서 고양이를 입양해 키워보기로 한다. 동물을 키우다보면 작은 일상의 설렘이나 변화가 생길 것이고, 이로 인해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조금은 일어날 터. 막중한 책임감을 껴안긴 싫었던 때문인지 수명이 6개월 남은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심. 일명 꾹꾹이. 입양을 기다리는 길고양이다. 꾹꾹이는 애묘인들에겐 통상적인 애칭이다. 좋아하는 주인들에게 마치 안마하듯 앞발로 꾸욱 누른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피가 꾹꾹이의 나레이터를 맡아, 두 사람의 내면상태를 짐작케하는 대사들을 던진다. 발 한쪽을 다쳤는지 왼반에 붕대를 한 고양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만 극장을 채운다.

 

열정은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처럼 고양이는 수명이 6개월 남은 것이 아니라, 잘 보살펴주면 5년 이상 살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고양이의 치료를 기다리는 한달 동안, 다가올 책임을 감내하기 위해 마지막 '한달간의 자유'를 만끽해보기로 결심한다. 소피는 인터넷을 끊고 유튜브의 대박을 가져올 창작무용 동영상을 올려보기로 한다. 반면 남자친구 제이슨은 지구 온난화 방지에 동참하기 위해 Tree by Tree란 단체에 가입, 뭔가 멋진 사회적 대의를 이뤄보려는 욕망을 점화시킨다. 타인들의 인정을 얻고 싶은 소피의 욕망은 사실 제이슨을 통해 채워지지 못하는 욕망일 것이다. 하여튼 두 사람의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당췌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선택한 작은 변화는 작은 미래의 틈새를 여는 법. 우연히 미술관에 들렀다 그림 뒤에 적혀진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 만나게 된 화가와 소피, 둘은 생각지 않게 사랑에 빠진다.

 

 

오래된 사랑의 제국이 허물어질때

 

한달간의 일탈은 결코 일탈이 아니었다. 진부해진 정신의 습속에서 내 안의 때를 벗기는 데 필요한 시간치곤 짧기만 하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점차 미래로 나가고 싶은 여자와, 안정적인 과거로 돌아오고 싶은 남자의 욕망은 충돌한다. 영화의 원제는 말 그대로 The Future 미래다. 자의적인 선택을 통해 구축하고 싶었던 그들의 미래는 조금씩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남자는 시간을 멈추고 싶어하고 여자는 그 곳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다. 제이슨이 나무 기부를 받기 위해 들른 한 집에서 여느때처럼 거절을 당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어린시절 만화 속에서 보던 한 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건물은 폭파 전 가장 극적인 고요의 시간을 갖는다는 제이슨의 말이었다. 균열은 서서히 일어날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한방의 충격으로 균열이 시작되기 전 과거의 시간을 송두리째 지우는 것이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를 떠난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처음엔 불쾌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속 장면들이 나와 동일시되곤 한다. 아 그래......내겐 오래된 연인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안도하면서, 다시 불안해진다. '내게 다가올 연애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란 질문과 더불어 말이다. 그래, 사랑은 쉽지 않다. 그래도 기다려봐야지 하며 잠자리에 든다. 나의 꾹꾹이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