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신세계 그룹 공채 특강을 마치고-누군가의 발걸음이 된다는 것

패션 큐레이터 2012. 3. 20. 20:37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오늘 신세계 그룹 백화점 부문 공채 연수특강에 다녀왔다. 출발 전 페이스북에도 약간의 소회를 남겼지만, 정말 오늘은 기분이 묘했다. 내 인생의 공식적인 이력이 시작된 곳이 신세계 그룹이다. 이곳에서 나는 유통의 문법을 배웠고, 많은 이들을 만났으며, 패션 바잉에 대한 논리를 익힐 수 있었다. 다른 이들과는 항상 달랐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듯, 나의 결과값은 바로 지금 전혀 다른 영역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사실상 신세계에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복식사와 패션미학에 대한 책을 쓸 용기를 얻진 못했을거 같다. 입사 면접에서 연수원 경험까지, 다른 이들보다 참 유별나긴 했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항상 후일담을 경험할 수 있는 '웃음거리'를 제공하며 산 것 같다. 남대문 메사 빌딩 21층에 있는 지식발전소란 곳에서 연수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서 그곳으로 아침 일찍 발걸음을 옮겼다. 간 김에 친구들 얼굴도 봤다.

 

의상학과 출신이 아니어서, 패션 구매를 하면서 매일 독학을 했다. 다행히 아마존이란 온라인 서점이 생기면서 용기를 얻었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갖가지 패션 책들을 월급을 털어 사서 읽었다. 기성복 분석 방식에서, 패션구매를 위한 수학, 소재를 선정하고 디자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비평하는 언어들을 익혔다. 물론 복식사와 문화적인 레퍼런스를 찾는 법도 이때 생겼다. 초기, 아동복을 구매하면서 다양한 캐릭터 비즈니스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나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을, 제3자의 참여관찰법을 시연하는 연구자처럼, 항상 객관적인 척도와 시선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리고 내가 배운 일들을 매일 매일 텍스트를 통해 재구성하고 해체하고, 글로 써본다.

 

항상 시즌 때에 국한하지 않고 매일 들러 컬렉션을 보고, 소재를 만져보고 그러면서 살았다. 다 지나간 과거일 뿐이지만, 재미나게 살았던 한 시절을 떠올리며 후배들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쓸모없이 말이 길었다. 강의시간도 점심시간을 많이 축냈다. 현대패션 부분을 제대로 말도 못했고, 하지만 중요한 건 역사 속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법, 지혜를 얻어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준 것 같다. 유통업에 들어오는 순간, 그는 유통의 언어를 배워야 하고 안경을 써야 한다. 어쩔수 없는 숙명같은 거다. 이후 제조업도 경험하면서 유통과 제조업의 인터페이스랄까, 어떻게 연결되는지, 서로가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봤다. 입장의 안경이 바뀐 것이다. 모두 다 흥미로왔다. 제조업에선 명품의 기준과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 무얼 투여해야 하는지, 어떻게 제조를 위한 조직을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하는지, 해외를 상대로 어떻게 문화체화형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스펙이란 단어로 짜증나게 익혀야 했다. 유통에선 피 말리는 판매현장에서 고객들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고객이 사줄 상품을 대행 구매하려면 어떤 감성을 익혀야 하는지도 알아야 했다. 어디를 가든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어차피 회사를 떠나면 그 회사와는 인연이 끊어지는 거지만, 유독 대학시절 친구보다 사회에서 만난 회사 친구들이 더 나를 잘 알고 이해해주고, 여전히 지금도 그 만남을 유지하는 나로서는, 본사빌딩에 갈때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참 좋았다. 누가 그랬다. 내가 참 복이 많은 케이스라고. 하긴 사회적 관계에서 만나는 동료란 건, 사실 계약이 말소되는 순간 (그 계약이 자발적이건 혹은 비자발적이건 간에) 관계는 멀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렇게 신세계 회사 친구들이 고맙고 좋은지. 지금도 힘들면 전화하게 되는 멋진 친구들이다. 살며 사랑하며 배운다. 내가 만난 이들도 항상 고마왔고. 그래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