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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트인스티튜트 특강 후기-명품 브랜드가 가져야 할 기본은 무엇일까

패션 큐레이터 2012. 3. 22. 02:22

 


 

 

루이비통의 2012 S/S 컬렉션 중에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읽는 시간

 

오늘은 에이트 인스티튜트에서 명품 브랜드의 매니저들을 상대로 '패션의 콜라보레이션'에 관해 특강을 했다. 에이트 인스티튜트는 대한민국 미술경매사 1호이신 박혜경 대표님이 세운 학교다.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들을 위한 다양한 강의가 펼쳐진다. 지난 해에 이어 두번 째 강의다. 브랜드 매니저들이 주 오디언스다보니, 이번엔 콜라보레이션의 역사와 전개방향 같은 내용에 더욱 관심을 두고 강의를 했다. 바로크 시대의 루이 14세 부터 시작되는 콜라보레이션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기란 참 쉽지 않다. 더구나 사례 연구 중심이 아닌, 관리자들을 위한 '태도' 교육에 더욱 신경을 썼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즈니스 사례를 포함한 각종 사례연구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례 연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례들은 실제로는 포장되어 있기가 일쑤다.

 

외국에서 경영대학원을 다니면서 200여개의 경영사례를 배웠다. 사례만큼 현장감있는 지식과 담론을 학생들에게 무장시키기에 좋은 방법은 없다. 단,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사례를 면밀히 읽으면서, 사례 안에서 다룬 외부 환경 요소에만 맞추어서 사례를 읽어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케이스는 무슨 일종의 성경처럼 모든 경영대학원은 이 사례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교수들은 사례를 만들기 위해 최소 6개월을 실제 회사에 취업을 해서 참여관찰을 하고 살펴본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사례들이다. 그러니 생동감도 있고 메시지나 문제의식도 곱씹어볼 만 하다. 단, 글을 읽다보면 이 사례는 마치 교과서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수업 시간에 토론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개별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스토리를 배우기 위해 잔가지들을 줄줄 외우는 걸 보게 된다. 이건 완전히 공부의 방식을 잘못한 것이다. 손가락이 가르키는 곳을 보지 않고, 손가락 끝을 보는 셈이다.

 

패션과 브랜딩, 그 중간의 지점

 

프랑스발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의 패션 시장을 거의 장악해버린 지금, 답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시장 내부에서 보여주는 성과와 방식, 접근태도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와 장인의식을 배경으로 한 유럽발 명품 브랜드와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미국산 명품 브랜드의 철학은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세계에 이름을 떨칠 명품을 만들고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서. 브랜딩에 관해서는 그들과 나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 나 또한 소비재 산업에 몸을 담고 소비자 행동과 온라인 상에서의 작은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인문학적인 성찰을 해보는 것도 좋지만 사실 현업의 매니저들이 이 모든 걸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매니저들에게 현대미술과 패션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상호간의 상상력을 빌리고 있는지, 이 과정과 배후의 문화적 레퍼런스를 발혀주면서 '결을 거슬러 읽는 독해'를 시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직장 이미지를 견고하게 혹은 망쳐놓는 것은 뭘까? 바로 텔레비전 드라마다. 명품 수트입고 업무시간에도 언제나 자유롭게 애인을 만나거나 직원들에게 갖은 굿 매너를 보여주는 실장님들의 세계. 현실은 다르다. 드라마가 투영시킨 환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대표적인 직종이 바로 미술관 큐레이터, 금융사 애널리스트,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매니저 등이다. 많은 여학생들이 브랜드 매니저를 꿈꾼다. 멋있어 보인단다. 하나 빠뜨렸다. 패션 에디터도 있다. 최근 시작한 드라마 '패션왕'도 이 직업과 연관이 되니 재현의 방식을 살펴보면 재밌을 듯 하다. 각설하고 난 마케팅 매니저와 브랜드 매니저 사이의 차이점을 모르는 이들을 꽤 만난다. 물론 둘 다 개별 브랜드와 소비재 시장 상황을 살피고 수요관리도 하지만, 후자는 전자에 비해, '혼, 창, 통'이란 논리가 들어간다. 브랜드의 핵심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수호해야 하고, 때로는 일탈을 부릴 때도 있지만 항상 지켜보면서 호흡을 고르게 지켜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들, 혼과 창, 통

 

외국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을 볼 때마다 그들의 프로젝트가 가진 성향이나 결과, 혹은 내용물에 대해 상당히 매력을 느낀다. 잘하는 건 잘하는 거다. 칭찬해야 옳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쪽으로 가서 우리의 내셔널 브랜드들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 물어야 한다. 그리고 평가와 측정에서 얼마나 감성적인 측면들과 브랜드를 다른 은유를 써서 표현하는 일을 잘 했는지도 살펴야 된다. 외국 브랜드의 콜라보는 이런 매력이 충분히 느껴지는 반면, 우리는 상당 부분 급조되고 깊이없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중요한 건 깊이와 정서를 갖기 위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 '어떤 은유구조를 써서 브랜드의 옷을 입히는가'다. 쉽사리 답이 잘 안나온다. 오랜동안 브랜드의 역사나 스토리텔링, 미적인 부분들을 연구한다고 하루 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다. 이번 강의는 이런 답답함을 그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의를 들은 분들이 꽤 있었다. 그 덕에 루이비통 매니저 분과도 인사도 했고. 올해도 정말 바쁜 나날들이 될 것 같다. 마냥 달리기만 하기엔 지치기 쉽다. 나야말로 단순하게 휴식이 아닌 전략적인 쉼과 충전, 한해의 초기부터 넘어지지 않기 위한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