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패션사가가 보는 나꼼수'비키니 시위'논쟁-시위녀를 옹호함

패션 큐레이터 2012. 2. 6. 08:31

 

패션의 역사가가 보는 나꼼수 비키니 논쟁

 

최근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는 점차 확산일로다. 꺼질줄 알았다. 시위의 주체인 여성이 '진보의 치어리더'를 운운한 사람을 고소한다고 했고 나꼼수에게 사과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던 차,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으로 지정된 한국의 1.5세대 페미니스트 남윤인순이 자신의 생각을 거들었다. "진보남의 마초주의"를 운운한다.

 

내가 남윤인순을 알게 된 건 28살때였지 아마. 이프란 페미니즘 저널에서 독자로 시작해 필자로 글을 쓰던 시절, 그 당시 위원이란 자격으로 와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남윤인순과 꽤 긴 시간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의 주장대로 나꼼수의 김총수가 진보남의 마초주의라면, 내가 보기엔 남윤인순은 "진보녀의 꼴페주의"에 불과하다.

 

이데올로기는 상처와 피해의식 위에서 하나의 집을 짓는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인식은 상처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 집단들은 하위집단을 구성하며 모여들었고, 자신의 피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그들을 자신의 성적 피해의식 위에서 페미니즘이란 담론의 집을 지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건 정치세력화였고 그런 점에서 남윤인순의 정치권 입성은 성공을 말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리라.

 

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자기와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여자들에게 '의식적으로 깨지 못헤 남성의 인형노릇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 점에서 가부장적이다. 자신들은 여자들을 향해 말한다 각성하라'고. 이러한 정신적 태도에는 항상 자신이 '다른 여성들(스스로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다)을 일깨워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전도자 의식이 감춰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밥천국 불신지옥이 교조적 선교 방식을 비웃는 패러디이듯, 페미니즘은 똑같은 논리로 세상에 응수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의한 열혈 종교다. 개독이라 폄하되는 기독교의 단면처럼 광기 가득한 종교다. 실제로 이들은 매거진에서 페미니즘은 나의 종교다라고 고백하곤 했다.나꼼수 비키니 논쟁의 주인공은 자기가 괜찮다고 했다. 대부분의 여성단체도 여성의 자발성을 들어 별 주장을 안했다.

 

패션의 정치적 힘에 대하여

 

패션은 항상 정치적 발언을 한다. 왕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장식을 했고, 초상화를 통해 자신들의 위엄을 드러낸다. 한편 패션은 국민들을 계도하는 선전도구가 되기도 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모노에 전쟁에 관련된 모티브를 새겨 여인들에게 입게했다. 전쟁에 대해 국민들을 준비시키려는 전략이었다. 한편 옷은 저항의 무기가 된다. 이때 저항이란 약자가 강자에게 드러내는 상처의 은유가 된다. 스코틀랜드가 대영제국에 저항 할 때, 자신들의 킬트를 입거나, 혹은 체크 무늬를 사용하는 이유다.

 

꼰대기질 가득한 여성단체연합의 남윤인순은 그들을 '전도'해야 하기에 또 참질 못하고 (어찌보면 이렇게 해서 정치 초년생으로써 언론에 얼굴 비치려는 수작이겠지만) 얼굴을 들이민다. 이 분을 추회하며 떠올리는 것은 젊은 여성운동가들을 가리켜 "요즘 젊은 년들은"이라고 말하던 것이다. 이 땅에서 페미니즘은 진보의 척도인양 말하지만, 자신이 속해있는 계층의 여성을 위해 일할 뿐이다. 여성과 남성은 그들의 시선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옷을 벗으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남자가 가해자가 되고, 여자가 벗는 걸 남자가 보면 '성적 대상화'를 시킨 주체가 되어 남성이 가해자가 된다. 어디에도 여성이 가해자가 되는 일은 없다. 진보의 언어사용이 문제라고 하는데, 이따위 시선 아래서 어떤 언어를 써도 통할 것 같지 않다. 시위주체가 괜찮다고 했는데, 여성의견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은 '남성에게 예속된 여성의 미숙한 생각' 일뿐. 교조적 페미니즘으로 인해, 진보진영은 거리로 나가 패션을 통해 저항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공지영과 남윤인순 같은 찌질이 언니들 때문이다.

 

 

이들은 툭하면 '우리 여성들은' 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들 계층 여성의 경험이 모든 여성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이프에는 웃기지도 않은 고해성사 글이 판을 쳤다. 아빠는 졸지에 습관적으로 밥상을 뒤엎는 마초가 되었고, 대학과 유학까지 다녀와선, 딸년이라 교육을 못받았으며, 식탁에서 식사하던 어머니는 부엌 구석에서 식은 밥을 먹는 존재가 되었다. 그 세대를 이해한다. 여자여서 포기해야 했던 꿈이 산적했으니. 그러나 이런 피해의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럼에도 환상 속에서 상처를 만든다. 있지도 않은 상처를. 거의 정신병 중증에 가깝다. 교회의 방언기도 같다. 현실의 옷을 입지 못한 이론이 되어간다.

 

나꼼수를 까면 진보처럼 보인다 착각 하는지, 진보언론은 말을 돌려가며 다른 논점을 펼쳐낸다. 이들이야 말로 논쟁을 확산하는 자들이다. 청취자들이 동조하지 않자 이들이 꺼내든 열쇠말은 소통이다. 진부하다. 한겨레 신문 이유진의 글은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못해 안달떠는 느낌만 준다. 팬덤에서 심급론까지 별게 다 나온다. 그들의 소통이란 '저네의 잔소리를, 야....이렇게 프로그램 만들란 말야'라는 말을 들어줘야 끝날 것 같다. 김어준은 여성운동을 대선이후로 미루자는 심급론 같은 건 말하지도 않았다. 배운대로 지껄이지 말것. 하지도 않은 말로 추론하면 안된다. 공중파란 미명하에 온갖 걸그룹 아이들 하의실종 패션에 눈쌀 찌푸리는 거나 제대로 비판해봐라. 어디 논평 내놓는 꼴 제대로 못봤다. 성폭행당하고 대기업을 상대로 홀로 투쟁하는 여자분한테 가서 '빌딩주가 나가래요'를 떠드는 여성부와 그곳에서 자문위원을 했던 남윤인순도 한번 이야기 해보고. 함부로 여성의 권리를 운운하지 말것. 역겹다. 정말.

 

페미니즘 저널 이프의 모토는 <웃자 놀자 뒤집자>였다. 나꼼수 비키니 시위의 원형도 그때 이미 했다. 자궁을 찬양하고 종묘에서 옷을 벗고 퍼포먼스 하지 않았나? 그건 괜찮고 이 사안은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라. 그녀들에게 군대란 없애야 하는 것이지만, 없앨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선 궁색했다. 정치권에 입성한 또 하나의 정치꾼, 남윤인순의 얄팍한 과거가 보인다. 불쾌하다. 시위녀는 빨리 공지영과 진보의 치어리더를 운운하던 회원과 남윤인순을 고소하라. 찌질이 언니 세대에 경고조치로서, 조속한 법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녀를 응원한다. 시위의 주체인 그녀의 생각은 간데 없고,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 사이에서 그녀의 퍼포먼스는 빵셔틀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소신을 위해 비키니를 입었다. 그녀는 너희들의 빵셔틀이 아니다. 너네야 말로 왜 그녀를 소비하며 희희낙낙하나. 너네가 무슨 학교폭력 일진도 아니고. 너네는 그러더라. 이미 그녀의 비키니건은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라고. 왜 그럴까? 너네는 그녀를 빵셔틀 삼아 너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 욕망이 더욱 첨예한 곡선을 긋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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