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1. 10. 8. 02:09

 

 

장 밥티스트 그뢰즈 <술에 취한 구두수선공>

1780년, 75.2 cm * 92.4 cm, 캔버스에 유채, 포틀랜드 미술관

 

술 권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

 

백분토론을 봤습니다. 시장을 선택하는 기준과 후보에 대한 건강한 토론을 기대하며 텔레비전 채널을 고정했지요. 신지호 의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송 도중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언변에 취기가 배어났기 때문이지요. 연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기본 발성에도 관심이 많아서, 대본을 리딩하는 상태나 목소리의 결을 듣기만 해도, 출연자의 신체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신문에 방송 전 신 의원이 폭탄주 8잔을 마신 것이 밝혀져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네요.  선거가 궤도에 오른 시점에서, 기자 응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음주란 점 이해합니다.

 

On Air 사인이 들어오면 방송인들은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립니다. 긴장을 풀기 위한 수단을 동원하긴 합니다만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것이 '음주'입니다. 방송국 내규에 따라 처벌 및 감봉 대상이 되고 외부 인사의 경우 출연제재를 받습니다. 특히 공중파 방송의 경우 영화나 기타 공연예술 단체의 출연자와 달리, 전파라는 공공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효익이 미치는 범위를 고려하여 철저한 윤리강령을 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지호 의원의 '취중 출연'은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신지호 의원의 폭탄주 사건에 관해 글을 쓰다 떠 오른 한 장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풍속화가 장 밥티스트 그뢰즈의 <술 취한 구두수선공>입니다.

 

그뢰즈가 그린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암울한 이면들

 

화가 장 밥티스트 그뢰즈는 당시의 풍속을 재치있게 그려 미술사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린 작가입니다. 그림 속 오른 쪽에 술에 얼근하게 취해 들어온 구두 수선공이 보입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를 만류하는 두 아들과 화가 치민 아내가 잔소리를 늘어놓는 모습, 개 조차도 주인을 향해 짖는 모습이 보이지요. 당시 미술계는 아카데미란 존재를 떠나서는 '훌륭한' 화가로 취급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그 근간은 바로크 시대 루이 14세 때부터 지속되어온 아카데미의 역사에서 시작되지요. 아카데미에선 정치와 역사를 다루는 그림을 가장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뢰즈는 고전적인 화풍과 소재를 버리고 당시 일상 속 서민들의 모습을 다룹니다.

 

빛과 어둠이 적절하게 배치된 그의 그림은 고전적 회화기법을 체득한 명장의 실력을 보여주지요. 그의 작품이 가진 장점은 등장인물의 성격화에 있습니다. 가난에 찌들린 서민들의 표정 속에 시대의 이면을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로코코 시대 말기, 귀족은 흥청망청, 자본가 계급은 서민들의 노동력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하고 소외시키던 시절. 구두 수선공의 삶은 척박했을겁니다. 술 권하는 사회였죠. 하루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그는 영국산 에일 맥주을 마셨을겁니다. 풍속사를 보면 에일맥주가 서민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이였으니까요. 1805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지만, 서민들에겐 도움이 못되었죠. 나폴레옹 독재로 이어지고 지식인들은 자연 속으로 침잠해버렸으니까요. 루브르에게 가난 속에 생을 마쳐야 했던 그뢰즈에게 생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아내는 재산을 갖고 도주했고, 사기사건에 휘말려 재산을 탕진했으니까요. 더 재미있는 건 사람들의 삶이 곤고할 수록 서민층을 상대로 한 사기사건이 더 많았다는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는 반복된 궤적을 보여주네요.

 

신지호 의원님, 취중 방송은 안됩니다

 

저는 사실 그림 속 구두 수선공의 삶이 이해가 갑니다. 닮은 구두 뒤축을 고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당시 힐은 지금과 달라서 한번에 깎아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층층이 쌓인 구두 뒤축 구조는 1800년대 후반에야 등장합니다. 주문량도 적고 공 치는 날이 많았을 터. 그림 완성시기를 보니, 농산물 가격은 점차 오르고 서민의 삶 자체가 위험수준에 이를 때였네요. 혁명의 기운은 아니어도 불만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던 구 체제의 절정기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구두 수선공에게 술 권하는 사회에서, 잠시라도 취해 현실의 곤궁을 잊고 싶었을겁니다. 사람들은 말할 지 모릅니다. '무책임한 가장이다'라고요. 하지만 한 개인이 사회구조의 모순 속에서 '자신의 역량으로 뭘 해볼 길이 없을 때' 인간은 자기 파괴와 탐닉에 빠집니다.

 

시름을 잊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인지적으로 힘이 덜 들기 때문이죠.  그림 속 주인공에 비하면 신지호 의원님께선 기득권이 아니신지요. 말로는 툭하면 서민을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서민의 삶을 체험하지 않은 분께서, 왜 상실한 자들이 세상을 잊는 방식을 취하신 걸까요. 그것도 전파란 공공재를 사용해, 가장 객관적인 자세를 지향해야 할 방송에서 말입니다. 자신의 파트너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동은, 대변인으로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서울이란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를 혁신하고 육성할 시장을 뽑는 선거입니다. 그만큼 서울시장 선거에 주어진 기대지평이 높습니다. '술을 먹고 실수를 했다면 모를까 실수하지 않은 이상 문제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음주운전을 했어도, 경찰에게 안 걸리고 사고 없이 집에 돌아오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요? 행위 자체에 대해 금하고 있는 것을 결과론을 들어 회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변명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는 없길 바랍니다. 주말입니다. 코발트 블루빛 하늘이 곱습니다. 의원님께 선물로 한곡 올립니다. 바이브의 <술이야>......

 

 

 

사과문 반말로 올려주셨네요......이게 바로 나경원 선거캠프에서 주장하는 낮은 자세로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인가요? 행실을 낮추는 게 아니라 말은 낮추고 짧게 하는 것. 아주 불쾌하기 그지 없군요.

 

 

 

42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