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월스트리트에서 보낸 한철-그들의 현실은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패션 큐레이터 2011. 12. 4. 02:19

 

 

 

이번 뉴욕 여행을 하면서 만난 두 개의 놀라움 중에 하나는 패션의 거리 핍스 애버뉴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임대료를 내고 당당히 자리한 유니클로 매장을 본 것, 두번째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시위대를 만나 생생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패션은 빈자와 부자를 나누고, 그 둘의 지갑을 열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캠페인이란 미명의 전략을 세운다. 한쪽에서는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약탈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명품홀릭'이 사회의 한 축을, 또 다른 한쪽에선 99퍼센트의 인간을 바라보라고 외치는 함성이 내 귀에 들린다.

 

11월 7일 저녁 어스름이 짙어가는 월스트리트 거리의 한복판에는 '99퍼센트를 위한 나라'를 꿈꾸는 이들의 저항이 지속되고 있었다. 패션전시를 기획하는 나로서는 사실상 월스트리트는 감성적으로 먼 장소가 아니다. 공공미술품의 대부분을 사들이는 금융권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물론 딜러가 아니기에 사업적인 측면에서 만날 일은 없다. 금융계의 큰손이라 불리는 이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에 진정성을 부여하려고 안달인 요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의 시위장면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CNN을 비롯한 매체에서 주로 다룬 화두는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두 가지다. 오바마의 교육개혁과 바로 월스트리트 시위의 확산 속도에 대한 것들이다.

 

 

 

초국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탄생지인 미국에서 바로 반자본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이 움직임이 단속적인 일회성 시위가 아닌, 미국 전역, 작은 읍내에까지도 서서히 퍼지고 있다는 것. 이러한 확산의 속도가 가진 정치적 함의를 분석하느라 신문들은 지면들을 할여했다. 외신을 통해 처음 월스트리트의 시위대 소식을 듣고 미국 출장 때 꼭 육안으로 확인해보리라 생각했다.

 

 

언론이 스스로의 자정역할을 포기한 한국에서, <동아일보>에 발표한 아무개 교육학자의 촛불시위에 대한 교육적 '충고질'이 오늘 기사를 쓰는 동력이 되었다. 기독교 단체인걸 애써 감추려고 하는 교육학자의 꼼수가 쉽게 읽여졌다. 촛불시위에 아이들을 데려온 것을 한물간 '백지이론(아이들의 뇌가 백지와 같다는 것)'을 들먹이며 상처와 트라우마를 입혔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월스트리트에 나온 '월스트리트 베이비'는 성장기를 거쳐 '잠 못 이루며 폭력적이 되고, 사회적 부적응자'가 될 판이다. 하지만 사진 속 아이는 너무나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시위와 주장하는 내용은 오늘, 바로 국회에서 자행된 '한미FTA 비준 강행처리'와 맞물려 내 마음속에 멍울로 남는다.

 

 

 

시위 현장은 어느때보다 평화적이다. 미국 내에서도 보수매체들은 시위대가 내란에 빠져있고 폭력에 얼룩져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싶어하지만 PBS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이래서 외신의 성격만 보고 '사안을 평가'하는 일을 중지한 내 자신이 고마웠던 거다. 뭐든 현장은 달려가야 하고 직접 보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평화가 쓰인 반지와 팔찌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자발적인 기부를 받고 있었다.

 

 

 

턱없이 높은 의료 서비스 비용, 오로지 기업의 이윤을 위해 국가는 그들의 위험을 사회 전반에 전가하고 '그들만의 자본 독식'을 위한 첨병역할을 하는 서비스 기관이자 용역깡패로 전략한 미국. 이번 한미FTA의 졸속적인 비준이 가져다줄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 그저 환호하는 자들은 '재벌'들이다. 그들의 사고는 하나같이 기업 실패로 이어질 경우, 관련이 없는 다른 국민들이 빚을 떠안아주어야 하고, 이것이 그들만의 '혁신'을 만든다고 자부한다.

 

 

 

말로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치지만, 여전히 수사적 구호에 머문 기득권들은 이번 한미 FTA의 졸속적인 승인을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미국이란 거대자본의 일부로 편입될 운명일 뿐이란 걸 곧 알게 될지 모르겠다. 어차피 초국적인 움직임을 가진 자본이지만, 결국 자국의 이윤을 위해 힘없는 나라가 경제적인 침탈을 당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일 테니. 웃는 자와 우는 자, 그 사이에서 시위를 봤다. 그들의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미국 내 보수언론들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이 운동은 지금 미국의 작은 카운티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치계급과 여기에 기식하는 언론인들은 대중의 정치참여를 극도로 경계한다.

 

 

 

"국민들이 혁명세력이 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혁명에 참여하게 될 때 치뤄야 할 사회적 대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란 말에 동의한다. 쉽게 혁명으로 번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월스트리트의 감성은 이미 '병든 자본주의'가 변곡점을 넘었다는 것이다. 그걸 본 것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경찰력에 의해 해체되었지만 차가운 칼날의 겨울을 지낸 후, 다시 찬연한 연두빛 봄과 함께 부활할 것이다. 그들또한 그렇게 입장을 발표했고. 이 시위가 단순하게 월스트리트란 공간을 점유한 것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자본주의의 첨병이 시작되고, 유태계의 자본이 미국의 정치인을 매수하며 1퍼센트의 기득권을 위해 99퍼센트를 희생해도 된다는 저 예전의 '약탈문화'의 흔적이 본격적으로 지워지는 순간이기에 그렇다.

 

반 FTA 시위가 확산일로다. 비준 이후의 우리의 삶은 월스트리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의 정서를 뼈저리게 닮게 되리라.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발생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일어난 것처럼 말한다'라고. 세상에는 추세선이란 것이 있다. 자칭 우파라 주장하는 이들의 무개념은 세상이 '힘의 흐름'으로 충만한 곳임을 모르는 데서 나온다. 우리가 시장의 역동성과 행동의 변화와 추이를 읽어낼 수 있는 건, 이런 힘의 바람을 계산할 수 있는 최소의 지혜 때문이다. FTA는 그저 단순하게 계산할 수 있는 바람이 아니다. 극복하기엔 너무나 잔혹한 바람이기에. 그들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겨울의 나목처럼 발가벗겨진 이후의 세상에서 분노의 활 시위를 당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